[테마읽기] 달리기 … 람세스 2세가 대관식 때 뛴 까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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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러닝, 한 편의 세계사
토르 고타스 지음
석기용 옮김, 책세상
744쪽, 3만2000원

‘달리기에 관한 거의 모든 이야기’이다. 역사를 중심으로 과학, 경제에 걸쳐 시시콜콜한 것부터 흥미로운 사실까지 담았다.

 기원전 1278년부터 66년 동안 이집트 파라오의 권좌를 지켰던 람세스 2세는 자신이 왕좌에 앉을 자격이 있음을 증명하기 위해 대관식 전에 150야드(약 140미터)를 달려야 했다. 뿐만 아니다. 즉위 30년 후에도 여전히 통치능력을 유지하고 있음을 보여주려 백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같은 거리를 달렸다.

 17세기 중반 영국에서는 “순전히 자연의 힘으로” 2~3마일(약 3000~5000미터)을 달리는 경주가 유행했다. 나체경주를 이렇게 표현했다. 이는 당시 금욕을 강조하던 청교도주의에 대한 반발로 시작된 것이었다. 시계를 이용해 달리기의 기록을 재기 시작한 것도 영국인들이었다.

 단거리 육상경기에서 손으로 땅을 짚고 엉덩이를 치켜올린 자세로 있다가 출발하는 것은 1887년 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 주자인 바비 맥도널드가 ‘발명’했다. 추위를 타는 그가 우연히 바람을 피하려 웅크렸다가 출발했더니 가속이 붙어 성적이 좋았던 데서 착안한 것이다.

 휴먼 스토리도 등장한다. 1952년 헬싱키 올림픽에서 5000미터·1만 미터·마라톤을 제패한 체코의 ‘인간 기관차’ 에밀 자토펙, 1936년 베를린 올림픽에서 게르만 선민주의를 신봉했던 히틀러의 코를 납작하게 만든 흑인 영웅 제시 오언스 등의 드라마틱한 이야기가 그것이다.

 베를린 올림픽과 관련해선 뒷이야기가 훨씬 흥미롭다. 육상에서 유색인종에게 뒤지자 한 영국 의사는 흑인은 고릴라, 백인은 침팬지, 몽고족은 오랑우탄에서 진화했다고 주장했다. 침팬지가 유인원 중에 가장 지적이란 이유로 백인의 지능이 뛰어나다는 논리를 끌어내 위안을 삼으려는 의도였다.

 적지 않은 생물학자와 인류학자들은 달리기가 인간을 인간답게 만들었다고 주장한다. 200만 년 전 아프리카에서 짐승을 사냥하던 인간의 조상들은 기후 변화로 삼림지대가 사바나로 바뀌자 ‘달릴 수 있는 능력’이 중요한 생존조건이 되었고 이를 갖춘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종이 ‘인간’으로 변하는 첫 단계가 되었다는 내용이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요쉬카 피셔의 『나는 달린다』의 독자들에게 권한다.

김성희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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