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국에서 재능 펼쳐보고 싶었죠 … 친부모·언니도 찾았으니 행운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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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둥이 자매는 태어난 지 석 달 만에 한국을 떠났다. 지구 반대편 덴마크에는 그들을 기다리는 푸른 눈의 부모가 있었다. 아이가 없던 부부는 정성으로 자매를 길렀고 동생은 요리사가, 언니는 아빠의 뒤를 이어 공학도가 됐다.

독일에서 대학원을 마치고 덴마크로 돌아가 현지 연구소를 다니던 언니는 세계 2대 에너지인증 기관으로 꼽히는 독일 프라운호퍼연구소의 스카웃 제의를 받았다. 이어 한국 파견 연구원 공모에 지원했다. 입양된 지 27년 만에 한국에 돌아오게 된 것이다. “태어난 곳에서 재능을 펼쳐보고 싶다”는 게 그녀의 소망이었다.

 22일 건국대-프라운호퍼 차세대태양전지연구소에서 만난 조일경(28·여·사진)씨는 현미경 앞에 앉아 다양한 크기의 태양전지들을 검사하고 있었다.

검은 눈에 검은 머리, 긴 홑꺼풀 눈매가 영락없는 한국인이지만 연구소 동료들은 조씨를 “카트리네”라고 부른다. 조씨의 덴마크 이름은 카트리네 플라업 옌슨(Katrine Flarup Jensen)이다. 조씨는 이곳에서 일년 중 절반을 보내는 프라운호퍼 연구소의 파견 근무자 3명 중 하나로 선발돼 지난 18일 한국에 들어왔다.

 “한국도 원자력 공포에서 자유롭지 못한 나라잖아요. 태양광과 같은 대체에너지 개발이 중요하죠.”

 조씨는 이곳에서 염료감응형 태양전지 개발을 담당하고 있다. 실리콘판과 같은 고체 수광부 대신 액체 형태의 특수염료를 이용해 태양광을 전기 에너지로 바꾸는 신기술이다. 염료감응형 전지는 기존 태양광 전지와 달리 액체 형태고, 빛이 투과할 수 있어 건축물에 다양한 응용이 가능하다. "일본 원전 사태를 계기로 한국인들과 정부가 대체 에너지에 관심을 가지게 된 점은 긍정적인 측면이라고 봅니다.”

 태양광 에너지 공동연구를 진행하는 건국대-프라운호퍼 연구소는 서울시의 재정 지원을 받아 2009년 개소했다.

조씨는 인터뷰 내내 “행복하다”는 말을 반복했다. “전 정말 행운아죠. 이렇게 좋은 기회를 얻어 한국에서 일하게 됐고, 친부모님과 친언니 세 명도 모두 찾았으니까요.” 그녀는 요즘 일주일에 두 시간씩 무료 한국어 강습을 받는다. “고맙습니다.” 영어만 쓰던 그가 서툰 한국말로 인사를 했다.

글·사진=심새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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