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r&] 류정한 … 스크린 두드리는 뮤지컬 순정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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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7면

뮤지컬 배우 류정한(40). 그가 변했다. 1997년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로 데뷔한 이후 15년째 오롯이 뮤지컬만 고집해 온 그가 올여름 영화 촬영에 들어간다. 지금껏 영화나 드라마에서 수 차례 러브콜이 있었음에도, 주변 동료들이 스크린으로 달려갈 때에도 한사코 무대를 지켜오던 그가 아니던가.

이젠 뮤지컬이 심심해졌나. 아님 연기 스타일의 변화?

지난달 27일, ‘지킬 앤 하이드’ 공연이 끝난 뒤 그는 “오늘이 지킬로 무대에 서는 마지막 날”라고 선언했다. 2004년 초연 때부터 조승우와 함께 ‘지킬 앤 하이드’가 한국의 대표 뮤지컬로 자리잡게 한 일등공신의 갑작스러운 퇴장에 팬들은 어리둥절해 했다.

류정한 하면 순혈주의를 지켜온, 한국 뮤지컬계 적자(嫡子)로 꼽힌다. 근데 왜 마흔을 넘긴 나이에 변신을 꾀하는 것일까. 그 이유가 궁금해 그를 만났다. 정작 본인은 “이젠 좀 저를 놓고 싶어지네요”라며 시치미를 뚝 뗐다.

많은 대작 뮤지컬에서 강렬한 인물을 연기해 왔고, 음색은 고급스러워 쉽게 다가가기 힘들다는 인상이 짙었던 류정한. 하지만 이 배우, 더없이 솔직했다. 지나치게 소탈해 ‘너무 망가지는 거 아냐’란 생각마저 들었다. 도도한 기존 이미지를 훌훌 털어낸 듯 보였다.

숨겨진 하이드를 끄집어내듯, 또 다른 자신을 찾기 위한 모험을 시작하고 있었다.

글=최민우 기자,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뮤지컬 무대만으로 유명해지고 싶었죠

그런데 15년 하니 뭔가 내려놓을 때가 된 것 같아요

영화·드라마 제안 그간 여러번 받았지만 ‘기적’은 특별했어요

테너 배재철씨 이야기인데, 다큐를 보며 눈이 벌개졌어요

이 사람을 널리 알릴수 있다는 생각만해도 가슴이 벅찹니다

뮤지컬 배우 류정한은 3개월간의 ‘지킬 앤 하이드’ 공연을 마치고, 현재 서울 충무아트홀 ‘몬테크리스토’에 출연 중이다. 지난해 초연에 이은 두 번째 무대다. 무대를 장악하는 힘, 풍성한 성량 등은 그와 딱 맞는 배역이란 느낌마저 들었다. 하지만 인터뷰는 뮤지컬 데뷔 15년 만에 처음 도전하는 영화 얘기부터 시작했다. 그는 느릿하지만 조심스럽게 자신의 얘기를 풀어놓았다.



-갑작스러운 영화 출연이다.

“김정권 감독의 ‘기적’이란 영화다. 지금껏 영화나 드라마 제안이 여러 번 있었지만, 이번은 특별했다. 주인공 배재철씨가 나오는 일본 NHK에서 찍은 다큐멘터리를 보고 나도 눈이 벌개졌다. 다음 날 바로 감독님에게 연락해 출연하고 싶다고 했다.”

-무엇이 마음을 움직였나.

“그저 관객의 한 명으로서 보자면, 최근 한국 영화가 너무 잔인하다는 인상을 받았다. 희망을, 따뜻함을 주는 영화를 하고 싶었다. 그러다 배재철이라는 인물을 알게 된 것이다. 배재철씨는 국내에서 성악을 전공하다 유럽에 진출해 유럽 오페라 무대를 정복한 분이다. 100년에 한 명 나올까 말까 한 테너라는 극찬을 받았다.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하다 갑상선 암 선고를 받았고, 수술 중 성대 신경이 끊어지고 말았다. 오페라 가수로는 사실상 끝난 셈이다. 하지만 그 고통을 이겨내 2008년 복귀 공연을 했다. 물론 목소리 자체는 과거와 다르지만, 난 다큐멘터리를 보면서 그리고 그 분이 직접 무대에 선 공연을 보면서 무엇이 진정한 아름다움인지, 감동인지, 삶인지 새삼 돌아보게 됐다. ‘이 사람을 연기해 내가 많은 분께 배재철을 알릴 수만 있다면’이라는 마음만으로도 가슴이 벅차 올랐다.”

-서울대 성악과 출신이다. 클래식에 대한 미련, 고마움, 빚졌다는 생각 등등이 영화 출연에 작용했나.

“그런 면이 분명히 있다. 내게 고향 같은 클래식을, 내가 못 이룬 꿈을 영화를 통해서나마 간접적으로 표현하고 담아낼 수 있다는 사실에 솔직히 요즘 행복하다. 물론 뮤지컬을 하면서 늘 클래식을 돋보이게 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일까도 고민했는데, 이번에 기회가 다가왔다.”

-그동안 왜 영화 등을 거부했나.

“1998년으로 기억된다. 연극 한 편 하고 있었다. 방송국 PD님이 단막극에 출연하자고 했다. 난 싫다고 했다. 왜 그러느냐고 묻기에 ‘전 무대만 서서 유명해지고 싶어요’라고 했다. 어찌 보면 세상 물정 모르고, 외골수였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런 자존심이랄까, 무대에 대한 경외심이 현재의 나를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나도 이제 마흔이다. 뭔가 내려놓을 때가 됐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7년간 해온 ‘지킬 앤 하이드’도 내려올 결심을 한 것이다. 그간 꺼려왔던 영화 출연에도 선뜻 나설 생각을 하게 된 게 아닌가 싶다. 무언가를 움켜쥐기보다 살포시 펴서 주변의 누군가와 나눌 때가 됐다.”

류정한은 “내가 원칙처럼 지켜온 게 어찌 보면 주변을 참 불편하게 할 수도 있겠구나”란 생각을 자주 한다고 했다. 15년째 무대에 서지만 그는 지금도 공연이 있는 날이면 꼭 4시간 전에는 극장에 가야 마음이 놓인다고 했다. “안 되는 일에 욕심 부리는 게 부질없다는 걸 어렴풋이 느꼈다. 마흔이 되면서 훨씬 삶이 편안해지고 부드러워졌다. 이젠 결혼도 진짜 하고 싶다”고 했다.

-‘스위니 토드’ ‘지킬 앤 하이드’ ‘맨 오브 라만차’, 그리고 현재 공연 중인 ‘몬테크리스토’까지 대형 작품에서 선 굵은 연기만 해왔다.

“억울하다. ‘쓰릴 미’ ‘클로저 댄 에버’ ‘이블 데드’ 등 작고 컬트적인 작품도 많이 했다. 이런 것들이 부각이 덜 됐을 뿐이다. 나 역시 일상적인 느낌의 뮤지컬을 하고 싶지만 팬들이 갖는 고정관념을 벗어내기란 쉽지 않은 것 같다. 개인적으로 가장 애착이 가는 건 ‘스위니 토드’다. 손드하임의 난해한 음악이라는 점도 도전 의식을 일깨워주었고, 지나치게 멜로나 역사물 위주로 가는 한국 뮤지컬 시장의 편향성을 덜어준다는 점에서도 의미 깊었다. 꼭 다시 한번 해보고 싶다.”

-“류정한은 왕자병이다”란 소리도 있다.

“반쯤 오해고, 반쯤 진실이라고 해야 할까. 지금은 그래도 많이 약해졌지만 데뷔할 때만 해도 ‘서울대 출신의 엘리트’라는 선입견이 이 바닥에 강했다. 하지만 배우란 어찌 보면 다 왕자병, 공주병 걸려 있어야 하지 않나. 이기적이어야 한다는 게 아니라 ‘내가 최고다’란 자신감이 있어야 자신이 서는 무대 역시 빛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연기가 딱딱하다, 패턴화돼 있다라는 지적에 대해선.

“인정한다. 하지만 난 자연스러운 연기에 대해선 반대하는 입장이다. 경직돼선 안 되지만, 너무 풀어지면 관객이 왜 공연장을 찾을까. TV나 영화와 다른, 무대만의 긴장감을 보여 드려야 한다. 난 분명 스펙트럼이 넓은 연기자는 아니다. 하지만 송강호라도 최민식이라도 결국은 다양한 연기를 해도 송강호·최민식이 보인다. 나 역시 류정한만의 색깔로 관객에게 다가가고 싶다.”

-앞으로 계속 영화를 할 계획인가.

“이번 한번만이라고 말할 자신은 없다. 하지만 결국 난 무대 연기자다. 뿌리는 언제나 뿌리다. 무대에 섰던 어느 순간, 머리가 하얘지는 그 먹먹한 느낌을 잊을 수 없다. 잘 했는지는 몰라도 누구보다도 열심히 했다는 것만은 자신할 수 있다

글=최민우 기자,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시시콜콜] 류정한의 지난 날들

노래 연습 석달하고 서울대 성악과 합격 … 2년간 학교에 거의 안 나가 학사경고 2번

류정한은 1남3녀 중 셋째다. 고급스러운 음색으로 유명하다. “누구에게서 피를 물려받은 거 같은가”라고 물었더니 “어머니가 목청은 좋았다”라고 답했다.

그는 초등학교 때부터 성가대 활동을 열심히 했다. 노래도 곧잘 했다고 한다. 당시 초등학생 노래 경연대회로 최고 인기를 누리던 KBS ‘누가 누가 잘하나’에도 나갔지만 예선 탈락했다고 한다. “무대 공포증이 심했다. 중·고교 동창들은 내가 무대에 서는 걸 아직도 믿질 않는다. 아직 무대 공포증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냥 없는 척, 연기를 할 뿐이다. 첫 장면은 늘 힘들다”고 했다.

어린 시절 소년 류정한은 유복했다. 하지만 사업을 하던 아버지가 고등학교 때 위암으로 돌아가시면서 집안은 급속히 기울었다. 방 한 칸에 다섯 식구가 살아야 했다. 그는 아버지의 유지를 이어받아 연세대 상경계열에 지원했지만 떨어졌고, 재수도 실패했다. 삼수를 하는데 도저히 대학에 들어갈 자신이 없었다. 너무 힘들어 새벽기도에 나갔다 하소연하듯이 펑펑 울었다.

그 모습을 뒷자리에서 물끄러미 본 성가대 지휘자가 “그동안 널 볼 때마다 네 목소리가 아까웠다. 돈 안 받고 내가 레슨 해줄 테니 성악을 해보자”라고 권유했다. 입시에 지친 그로선 도피하듯 음악을 택했다. 그렇게 3개월 연습해 서울대에 원서를 냈다. “솔직히 붙을 자신은 전혀 없었고, 그래도 서울대 보다 떨어지면 덜 창피할 것 같아 지원”했는데 덜컥 합격했다고 한다.

예고 출신도 아니고, 고교 시절 딱히 활동 경력이 없었음에도 서울대 성악과에 입학하자 좋지 않은 소문이 많이 났다. 예체능계 권위적인 선후배 문화도 그로선 쉽지 않았다고 한다. 2년간 학교에 거의 안 나가 학사 경고도 두 번 받았단다. 그러다 1990년대 중반 지휘자 정명훈의 형인 정명근(‘미스사이공’ 제작자)씨를 소개받아 뮤지컬을 접하게 되면서 청년 류정한의 방황도 끝날 수 있었다.

최민우 기자

류정한

1971년 1월 10일생

서울 보성고-서울대 성악과

주요작

1997년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2001년 오페라의 유령

2004년 지킬 앤 하이드

2005년 맨 오브 라만차

2007년 스위니 토드, 쓰릴미

2009년 영웅

2010년 몬테크리스토

수상 경력

2007년 한국뮤지컬대상 남우주연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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