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이영아의 여론女論

관동대지진과 한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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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이영아
건국대 몸문화연구소
연구원

80여 년 전에도 일본에선 큰 지진이 있었다. 1923년 9월 1일 간토(關東)지방에서 발생한 이 지진은 진도(震度) 8에 육박했고 지진과 화재로 인한 사망자가 14만 명이 넘었던 끔찍한 재난이었다. 그런데 이 지진은 일본인뿐 아니라 한국인들에게도 크나큰 상처를 남긴 사건(관동대학살)이었다.

 “그 화재는 바로 ‘불령선인(不逞鮮人)’들이 방화한 것이오. 그래 격분한 군중은 조센징을 쳐 죽이라고 사방에서 벌떼같이 일어났소!”(중략) “우리도 어젯밤에 ‘조센징’을 죽였소. 어제 낮에는 조선 노동자들이 떼를 지어서 몰려다니는 것을 붙잡아다가 새끼줄로 한데 엮어서 다마가와 강물에다 집어 처넣었소. 그놈들이 물 위로 떠서 헤엄쳐 나오려는 것을 손도끼를 들고 뛰어들어서 놈들의 대갈통을 모조리 까 죽였소. 강물이 시뻘겋게 피에 물들도록….” 너무도 끔찍한 소리였다. 창복이는 그 자들의 말을 듣고 모골이 송연하여 견딜 수 없었다. (이기영, 『두만강』, 1961)

 당시 도쿄 유학 중이던 이기영이 실제 목격한 것을 토대로 쓴 소설 『두만강』의 위 대목과 같이, 일본은 지진으로 동요한 민심을 수습하기 위해 조선인을 희생양으로 삼았다. 조선인들이 지진을 틈타 방화·폭동을 일으켰다는 유언비어를 유포했던 것이다. 이 때문에 6000명이 넘는 무고한 재일조선인이 학살당했다. 일본인이 자신들의 고통을 조선인에게 전가하며 행했던 저 무자비한 만행은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할 그들의 과오다.

 그러나 이번 도호쿠(東北)지진에서 한국인들은 과거의 상처를 떠올리기보다는, 가장 가까운 이웃나라에 닥친 현재의 비극을 진심으로 가슴 아파하고 있다. 기부금·구호품·구조대 등을 보내기도 하고, 일본에서 벌어지고 있는 재난을 내 나라 일처럼 주시하고 있다. 심지어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조차 19년 동안 계속해 오던 정기 수요시위를 이번 지진 피해자들을 위한 추모집회 형태로 진행했다고 한다. 과거사를 ‘청산’하는 문제와 인간에 대한 ‘예의’의 문제는 별개인 것이다. 일부 종교인의 편협한 발언이나 저속한 시장주의자들의 제 잇속 챙기기와 사뭇 대조적이다.

 지난 역사의 상처를 치유하는 첫걸음은 그 상처를 제대로 말하고, 인정하고, 사죄와 용서를 하는 것이다. 그 다음은 새로운 화해의 역사를 씀으로써 그간의 앙금을 털어내는 것이리라. 지금 한국인들이 일본을 걱정하는 모습은, 옛 상처들을 떠올리게 하는 상황에도 불구하고 우러나온 순수한 인류애일 것이다. 순서는 다소 바뀐 셈이지만, 이번 일을 계기로 일본이 지난 과오를 제대로 청산하고, 한·일 관계사에 있어서도 한 걸음 더 진전된 역사를 쓸 수 있게 되기를 바라 본다.

이영아 건국대 몸문화연구소 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