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오롱 ‘3년 섬유소송’ 빛이 보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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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6면

방탄복 소재인 ‘아라미드 섬유’를 놓고 코오롱과 세계적인 화학기업 듀폰이 3년째 벌이고 있는 독과점 싸움에서 코오롱이 일단 한숨을 돌렸다. 미국 항소법원이 최근 코오롱이 듀폰을 상대로 제기한 아라미드 섬유시장의 독점 금지 소송에서 이를 기각한 원심을 파기한 것이다.

 20일 블룸버그 통신에 따르면 항소법원(미 버지니아주 리치먼드 소재)은 판결에서 “지방법원(1심 재판부)이 듀폰 측 변호사의 일방적인 발언에만 의존해 소송을 기각한 건 잘못했다. 기초관계를 더 조사하라”며 사건을 지방법원으로 돌려보냈다.

 아라미드 섬유는 방탄복과 방탄 헬멧의 소재다. 이 첨단 섬유를 놓고 코오롱과 듀폰은 2009년부터 3년째 싸움을 벌이고 있다. 2005년 코오롱이 이 섬유를 개발한 것이 계기였다. 이후 코오롱은 ‘헤라크론’이란 이름으로 미국 수출을 타진했다. 미국에서는 듀폰의 ‘케블라’가, 유럽에서는 일본 데이진의 ‘트와론’이 시장을 점령하고 있을 때였다. 듀폰은 소송으로 코오롱의 움직임에 제동을 걸었다. 미국 연방법원에 기업비밀 유출 혐의로 코오롱을 제소한 것이다. 듀폰 측은 “코오롱이 듀폰의 전직 직원과 컨설팅 계약을 맺고 듀폰의 첨단 섬유기술을 훔쳐갔다”고 주장했다. 결국 코오롱이 영입한 전 듀폰 직원은 법원으로부터 18개월 징역형을 받았다. 코오롱은 “독자 기술로 아라미드 섬유를 개발했고, 직원과 계약할 당시 듀폰의 기술은 필요하지 않다는 서약서를 쓸 정도로 무관한 일”이라고 반박했다.

 이어 코오롱의 반격이 시작됐다. 코오롱은 2009년 4월 버지니아 지방법원에 듀폰을 상대로 “아라미드 섬유시장을 독점하고 있다”며 소송을 제기했다. 듀폰이 물건을 팔면서 “우리 물건을 80~100% 사야 계약을 맺어 주겠다”며 독과점 행사를 했다는 내용이다. 하지만 지방법원은 이를 기각했다. 법원은 ‘시장의 범위’를 미국이 아닌, 전 세계로 해석했다. 전 세계적으로 일본 데이진 등 아라미드 섬유를 개발하는 다른 회사들도 있으니 듀폰의 독과점을 인정할 수 없다고 했다. 하지만 항소법원은 이번 판결에서 “듀폰은 미국에서 판매된 아라미드 섬유의 70% 이상을 판매해 미국 아라미드 섬유시장에서 의문의 여지가 없는 주도적 사업자”라고 밝혔다.

한은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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