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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me&] 텃밭 하나 들여 놓으시죠 베란다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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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22면

서울 고덕동 이영숙씨 집 베란다 텃밭. 남향 아파트 8층이라 햇빛이 충분히 확보된다. 아직 날이 차 채소 잎이 작고 얇지만 이웃에게 나눠줄 만큼 수확량은 충분하다.


인간의 ‘경작 본능’은 여러모로 유용하다. 채소값이 오를 때 든든하고, 농약 걱정에서도 자유로워진다. ‘푸드 마일리지(농산물이 생산·운송·유통 단계를 거쳐 식탁에 오르기까지 소요된 거리)’를 줄여 환경보호에 기여한다는 뿌듯함도 크다. 자라는 생명을 보살피고 지켜보는 과정에서 얻는 정서적 만족감도 귀하다. 새 봄 파종기를 맞아 내 먹을거리를 직접 길러 먹는 경작법을 알아본다.

글=이지영 기자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도움말=이복자 귀농운동본부 도시농부학교 교사, 허윤경 까사스쿨 플라워팀장, 유다경 네이버블로그 ‘올빼미화원’ 운영자

베란다 텃밭 … 햇빛과 바람을 잡아라

2 지렁이 분변토. 음식물 쓰레기까지 줄이는 친환경 비료다. 1, 3, 4 이영숙씨 베란다 텃밭에서 자라는 배추·미나리·상추. 잎을 실컷 따먹은 배추엔 꽃대가 올라와 노란 꽃을 피웠다. 더이상 거둘 게 없어진 상태지만, 보기가 좋아 그냥 두고 즐긴다.


주부 이영숙(41·서울 고덕동)씨는 5년차 ‘베란다 농부’다. 열세 살, 열한 살인 두 딸이 고기 반찬만 좋아해 채소와 가깝게 해줄 요량으로 농사를 시작했다. 6.6㎡(두 평) 남짓한 거실 앞 베란다에 화분을 놓고 상추·배추·참나물·열무·미나리·실파 등을 빼곡히 심었다. 이제 날이 따뜻해지면 이씨가 키우는 작물은 더욱 늘어날 터다. 4월 중순께 쑥갓 씨를 뿌리고 고추와 파프리카 모종을 사 심을 계획이다. 유난히 한파가 극성을 부렸던 지난 겨울에도 이씨의 베란다 텃밭은 무사했다. 이씨는 “밤마다 세탁소에서 주는 얇은 비닐로 화분을 덮어뒀던 게 효과가 있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이씨는 직접 키운 채소로 비빔밥을 자주 해먹는다. 두 딸의 편식 습관도 없어졌다.

베란다 텃밭 농사의 성패를 가르는 건 햇빛과 바람이다. 하루 최소 6시간 정도는 햇빛을 받을 수 있는 환경이라야 작물을 키울 수 있다. 햇빛이 부족하면 키만 훌쩍 웃자라고, 바람을 쐬어주는 걸 등한시하면 병충해에 시달리게 된다.

로즈마리·레몬밤·민트 등의 허브는 거친 환경에서도 비교적 잘 자라는 식물이라 베란다 텃밭에서 시도해 볼 만하다. 허브는 물을 많이 주면 향기가 약해지고 뿌리가 쉽게 썩으니 약간 건조한 상태를 유지해야 한다. 흙 표면을 만져봐 건조해졌을 때만 물을 준다.

대파와 미나리는 사먹고 남은 부분을 이용해 농사를 시작할 수 있다. 뿌리가 달린 대파를 사서 잎을 잘라 먹고 아래쪽 하얀 뿌리 부분을 흙에 심어두기만 하면 된다. 윗부분을 잘라 먹으면 금세 또 자란다. 대파도 흙이 습하면 뿌리가 쉽게 썩으므로 깊이가 깊은 화분과 물이 잘 빠지는 흙을 이용해 키워야 한다. 미나리는 수경재배가 가능하다. 미나리 줄기 부분은 먹고 뿌리 부분만 물에 씻은 뒤 깊이가 깊은 컵이나 그릇에 빽빽하게 꽂아준다. 뿌리가 잠길 정도로 물을 붓고 햇빛이 잘 드는 곳에 두면 줄기 부분이 다시 자라 올라온다. 물은 처음 높이에 맞춰 수시로 주면 된다.

주말농장·도시텃밭 … 서리를 피해라

작물의 작황을 고려한다면 어떻게든 노지 텃밭을 구하는 게 좋다. 2003년부터 주말농장 농사를 지어온 유다경(43) 네이버 블로그 ‘올빼미화원’ 운영자는 “일단 밖으로 나가면 실내에서 기르는 것에 비해 2배에서 10배까지 작황이 좋아진다”며 “사방에서 하루종일 햇빛과 바람을 쐴 수 있다는 게 그만큼 중요하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개인이나 지자체가 분양하는 주말농장은 대부분 4월 초 문을 열지만 교통이 편리한 서울 근교 주말농장을 구하려면 연초부터 서둘러야 한다. 인터넷 사이트 ‘주말농장(www.weeknfarm.co.kr)’ ‘주말농장닷컴(www.jumalnongjang.com)’ 등을 이용하면 전국의 주말농장 현황과 분양 정보를 한눈에 알 수 있다. 1년 이용료는 16.5㎡(5평) 기준 5만~10만원 선.

서울 강동구와 도봉구 등 지자체에서는 지역 내 자투리땅을 ‘도시 텃밭’으로 분양하기도 한다. 주민들 입장에선 집과 가까워 이용하기 편리해 인기도 높다. 16㎡ 규모 텃밭 830계좌를 분양한 강동구의 경우, 신청 첫날인 지난 8일 1시간 만에 분양이 완료됐다.

노지 농사에선 서리에 가장 신경써야 한다. 봄 마지막 서리가 내린 뒤 모종을 심어야 하고, 늦가을 첫서리가 내리기 전에 수확을 해야 한다. 서리에 대한 정보는 각 지역 농업기술센터에 전화해 보면 알 수 있다. 중부지방의 경우 5월 초까지 서리가 내리는데, 그 전에 성급히 모종을 심어버리면 웬만한 작물은 죽어버린다.

주말농장을 처음 시작했다면 손이 덜 가는 작물을 심는다. 감자·고구마·땅콩 등이다. 감자는 3~4월에 씨감자를 심어 6월에 수확하고, 고구마와 땅콩은 5월 초 모종을 심어 10월에 수확한다. ‘상추를 너무 많이 심지 말 것’도 초보 농사꾼이 기억해야 할 점이다. 쌈 채소는 저장이 안 돼 처치 곤란이 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천연 농약, 천연 비료 … 계란·오줌·지렁이 활용

수경재배 미나리. [사진=까사스쿨]

작물에 가장 좋은 천연 비료는 인분 비료다. 인분에 낙엽을 태워 얻은 하얀 재를 섞어 검정 비닐에 넣고 햇볕이 잘 드는 곳에 한 달 정도 뒀다 사용하면 된다. 인분 비료는 냄새 때문에 실내에서 만들기 어려운 게 사실이다. 반면 오줌 비료는 일반 가정에서도 시도해 볼 만하다. 오줌은 실온에 2주 정도만 두면 발효를 해 우수한 질소 비료가 된다. 오줌을 페트병에 넣어 뚜껑을 꼭 닫은 뒤 2주 정도 화장실 등 실내에 놔두면 된다. 이렇게 만든 오줌비료에 물을 섞어 웃거름으로 준다. 오줌비료와 물의 비율은 1대 5가 적당하다. 오줌비료는 고추·오이·호박 등 열매채소에 좋다. 상추·쑥갓 등 잎채소에는 주지 않는다.

지렁이를 활용해 음식물 찌꺼기 비료를 만드는 방법도 간단하다. 뚜껑이 있는 플라스틱 통에 흙과 지렁이를 담고 음식물 찌꺼기를 넣으면 지렁이가 이를 먹고 배설물 비료를 만들어낸다. 통 뚜껑에 작은 구멍을 뚫어 공기가 들어갈 수 있게 한다. 집어넣는 음식물 찌꺼기에 소금기가 있으면 안 된다. 먹고 남은 찌꺼기보다는 음식 준비 과정에서 나오는 쓰레기를 사용하는 게 좋다. 특히 과일 껍질은 지렁이가 좋아하는 먹이다.

달걀 껍질과 현미식초를 이용해 만든 칼슘 비료도 작물을 튼튼하게 만드는 영양제다. 달걀 껍데기를 씻어 바짝 말린 뒤 현미식초에 넣는다. 식초의 양은 달걀 껍데기 무게의 10배 정도가 적당하다. 하루 이상 놔뒀다 이를 물에 500배 정도 희석해 사용한다. 달걀 껍데기 대신 사골을 이용하면 칼슘과 인산이 풍부한 천연비료가 된다. 사골은 깨끗이 씻어 바짝 말린 다음 갈아서 사용하는 것이 좋다. 이들 식초 비료는 분무기를 이용해 잎에 직접 뿌려준다.

농약은 비료보다 ‘천연’을 고집하기가 어렵다. 병해충이 기승을 부린 뒤엔 천연 농약으론 한계가 있다. 해충의 초기 접근을 막는 게 중요하다. 난황유는 해충의 호흡과 지방대사를 방해해 번식을 막는 천연 농약이다. 계란 노른자 1개에 식용유 60mL를 넣어 믹서로 간 뒤 이를 물 20L에 희석해 만든다. 난황유는 특히 진딧물과 응애류 등 작은 해충에 효과적이다.

병해충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비료 양을 적당하게 조절하는 것도 중요하다. 질소질 비료를 과다 사용하면 병원균과 해충이 늘어날 우려가 커진다.

스티로폼 상자, 화분 … 뭐든 좋아요

땅 한 뼘이 귀한 세상. 밭으로 일굴 틈을 찾기가 쉽지 않다. 이럴 땐 상자 텃밭이 대안이다. 옥상이든, 베란다든, 대문 앞이든 햇빛이 잘 드는 곳에 갖다 놓기만 하면 된다. 상자 텃밭 만드는 법을 안철환 귀농운동본부 텃밭보급소장에게 배워봤다.

 텃밭용 상자로 이용하기 좋은 재료는 스티로폼이다. 과일·생선 등을 담았던 스티로폼 상자를 재활용하면 된다. 보온 기능이 있어 시중에서 파는 플라스틱 화분보다 낫다. 외부 온도 변화에 덜 영향을 받으니 냉해를 당할 위험도 적다.

 상자 크기는 키울 작물의 종류에 따라 달리해야 한다. 고추·토마토는 깊이 35㎝ 이상, 감자·배추는 깊이 25㎝ 이상, 상추는 깊이 15㎝ 이상인 상자가 필요하다. 상자를 구했으면 바닥에 물 빠짐 구멍을 뚫는다. 구멍 지름은 손가락 굵기 정도가 적당하다. 물 빠짐 구멍으로 흙이 빠져나가지 않게 쳇불(체의 그물)도 깐다. 부직포나 양파망·스타킹 등을 잘라 쓰면 된다.

 화초를 키우는 화분이라면 화분 바닥에 자갈을 먼저 깔고 그 위에 흙을 넣지만, 농사를 지을 상자 텃밭엔 그냥 곧바로 배양토를 넣어준다. 배양토는 일반 흙과 경량토를 섞어 만든다. 경량토에는 피트모스(이끼가 탄화된 것)·펄라이트(화산석을 고온에서 팽창시켜 만든 인공토양)·버미큐라이트(질석) 등이 있는데, 물빠짐이 좋게 하기 위해 꼭 필요하다. 섞을 때는 일반 흙과 피트모스, 펄라이트, 버미큐라이트의 부피 비율이 각각 2:2:1:1이 되도록 한다. 흙은 산의 흙처럼 오염되지 않은 흙을 사용하면 되는데, 진흙끼보다 모래끼가 조금 더 섞여 있는 사양토가 좋다. 흙을 아무 데서나 퍼올 수 없어 구하기 힘들다면 화원이나 종묘상에서 ‘황토’나 ‘마사토’를 사서 쓴다. 황토는 일반 흙과 같은 비율로 넣어주면 되고, 마사토는 그 절반만 넣어준다.

 거름은 흙 전체 무게의 10% 이내로 섞는다. 완전히 발효된 거름이라면 배양토와 섞은 뒤 바로 씨를 뿌리거나 모종을 심어도 되지만 발효가 끝나지 않은 거름은 흙과 섞은 다음 열흘 이상 기다린다. 거름이 발효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열과 가스가 작물의 발아와 성장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완전히 발효되지 않은 거름을 주고 바로 씨를 뿌리거나 모종을 심어야 할 상황이라면 거름이 작물에 바로 닿지 않도록 한다. 상자 귀퉁이에 구멍을 파고 거름을 넣은 뒤 그 위를 흙으로 덮어 놓는다.

 상자 텃밭은 지력(地力)이 약하기 때문에 해마다 분갈이를 해줘야 한다. 새 배양토를 만들어 기존 상자 텃밭의 흙과 1대 1로 섞어 다시 상자를 채우면 된다.

실외 텃밭 경작 일정

3~4월     씨감자 파종

3월~4월 초   쌈 채소, 열무, 봄무, 얼갈이 배추, 토란, 시금치, 쑥갓, 대파, 아욱, 근대, 부추 파종

4월 중순    호박, 박, 수세미, 잎들깨 파종

5월 초     고추, 가지, 오이, 토마토, 토란, 고구마, 야콘, 옥수수, 브로콜리, 봄배추, 땅콩 모종 심기

4월 초~7월 초 서리태, 백태 파종

6월 말     감자 수확 시작

7월 중순    당근 파종

8월 말     김장배추 모종 심기

9월 초     돌산갓, 시금치, 무, 순무, 쪽파 파종

10월      고구마, 토란, 야콘, 땅콩 수확

11월      농사 마무리

자료=도시농부 올빼미의 텃밭 가이드(시골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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