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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할 수 있는 원전 사고, 모두 실험하고 있습니다”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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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호 14면

일본 후쿠시마에서 핵 발전소 사고 수습이 한창 진행 중이던 지난 17일 우리나라 원자력 연구개발의 산실인 대전의 한국원자력연구원을 찾았다. 북대전 보덕봉 기슭 140만㎡(약 42만 평) 부지에 자리한 연구원엔 긴장감이 흘렀다. 특히 원자로 안전 부문을 맡은 임직원들은 지난 11일 일본 핵 발전소 사고 이후부터 휴일도 없이 나와 일본 측 현황 파악과 분석에 분주했다.

한국원자력연구원 르포

백원필 원자력안전연구본부장은 “후쿠시마 핵 발전소 사고에 대한 정보가 너무 제한적이어서 분석을 하는 데 어려움이 많다”면서도 “상상을 초월하는 재난 탓이긴 하지만, 기본적으로 1세대 원자로의 후진적 설계 탓도 크다”고 말했다. 우리나라 가압형 경수로는 3세대, 3.5세대 원자로로, 전원이 완전 차단된 상태에서도 원자로 냉각 기능이 상실되지 않도록 하는 안전시스템을 갖추고 있다는 게 연구원 측 설명이다. 일본과 달리 지진으로부터 비교적 안전한 지대에 있는 것도 유리한 점이다. 그렇다고 한국 원전은 안전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할 수는 없다. 원자력연구원의 주된 임무 중 하나가 핵 발전의 안전, 즉 사고나 고장에 관한 연구다.

연구원 부지 왼쪽에 있는 35m 높이의 종합엔지니어링 실험동을 찾았다. 천장이 높은 큰 공장 같은 건물 안으로 들어서니 좌우로 거대한 실험장치들이 설치돼 있었다. 이 실험동의 대표선수는 30m 높이의 거대 실험장치 ‘아틀라스(ATLAS·사진)’다. 세계 3대 원자력 모의사고 종합실험장치인 아틀라스는 핵연료봉 대신 전기를 통해 증기를 생산하는 것을 제외하고는 원자로와 똑같은 구조를 가진 장치다. 기존 경수로의 280분의 1 크기지만, 온도와 압력·속도는 기존 원자로와 똑같다. 설계기준 내에서 일어날 수 있는 사고나 고장을 모두 실제로 일으켜본다. 곳곳에 붙어있는 1200개의 계측기를 통해 실험 데이터를 수집한다. 아틀라스는 2006년 준공됐다. 그 이전에는 부분별로 사고실험을 할 수밖에 없어 실제 상황과 유사한 종합적인 정보를 얻기가 어려웠다.

송철화 열수력안전연구부장은 “기존 3세대 원자로와 3.5세대 원자로에서 발생할 수 있는 사고는 모두 아틀라스를 통해 실험해보면서 안전성을 점검할 수 있다”며 “원자로 연구와 개발을 위한 필수 시설”이라고 말했다.

종합시험동 바로 옆 ‘노심용융물 냉각실험동’으로 이동했다. 실험동 한가운데 소형 원자로 모습의 장치가 놓여 있다. 원자로 내 핵연료봉이 녹는 중대 사고에 대한 모의실험을 하는 곳이다. 모의 원자로 안에서 섭씨 2700도의 온도로 방사선이 나오지 않는 ‘감손 우라늄(depleted uranium)’을 녹여 실제 노심이 녹는 사고와 같은 환경을 만들어보는 곳이다. 핵연료봉이 녹는 심각한 사고가 발생했을 때 원자로에 어떤 손상을 입히는지를 실제상황과 같은 실험을 통해 알아보는 장치다.

원자력연구소는 안전성도 뛰어나고 효율도 높은 4세대 원전도 개발 중이다. 소듐냉각고속로와 초고온가스로가 그것이다. 소듐냉각고속로는 경수로와 달리 물 대신 소듐(나트륨)을 냉각재 및 열 전도체로 쓰는 원자로다. 가장 큰 장점은 안전성이다. 전력이 공급되지 않는 상태에서도 냉각 기능이 계속 유지되는 시스템이어서 후쿠시마 원전과 같은 사고는 일어날 수 없다. 경제성도 뛰어나다. 고속중성자를 이용해 사용후 핵연료를 증식해 다시 쓸 수 있기 때문에 기존 원자로보다 우라늄 자원활용률이 100배 이상 뛰어나다. 핵연료를 계속 사용하다 보면 방사성 독성도 기존의 1000분의 1까지 줄어든다는 장점도 있다.

김영일 고속로 기술개발부장은 “1997년부터 개발을 해왔다. 아직 가야 할 길이 멀지만 2028년이면 첫 소듐냉각고속로를 내놓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초고온가스로는 석유 대신 수소를 주 에너지원으로 쓰는 ‘수소경제 시대’를 준비하는 원자로다. 섭씨 900도 이상의 높은 열을 이용해 청정 에너지라 불리는 수소를 대량으로 생산할 수 있다. 안정성이 높은 헬륨을 냉각재로 쓰기 때문에 중대사고가 일어나도 안전하다는 것이 강점이다. 원자력연구소는 2020년 첫 초고온가스로를 완공하고, 2025년에는 상용화한다는 목표를 세우고 있다.

김용완 수소생산원자로 기술개발부장은 “수소 생산은 천연자원이 거의 없는 우리나라에서 기술만으로도 에너지 자립을 이룰 수 있는 길”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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