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즈 기량 되찾았으면 좋겠다, 내가 이기기 힘들겠지만”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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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호 20면

마르틴 카이머가 12일(한국시간) 미국 플로리다주 도럴에서 열린 PGA 캐딜락 챔피언십 2라운드에서 샷을 하고 있다. 카이머는 4언더파로 공동 24위에 올랐다. [중앙포토]

“타이거 우즈가 원래의 컨디션을 되찾는다면 그것은 분명 환상적인 일이 될 것이다.”
추락한 골프 황제 타이거 우즈(미국)의 기량 회복을 강력히 바라는 사람이 있다.
마르틴 카이머(27·독일)다. 그는 남자골프 ‘세계 뉴 넘버원’이다. 리 웨스트우드(영국)가 지난해 11월 1일 5년간 세계랭킹 1위를 지키던 우즈를 끌어내렸고, 카이머는 웨스트우드로부터 지난달 28일 왕관을 빼앗았다.

프로 데뷔 6년 만에 ‘넘버원 골퍼’ 오른 마르틴 카이머

2005년 프로 데뷔 이후 6년 만이다. 1986년부터 남자골프 세계랭킹 집계 이후 두 번째로 어린 나이다. 최연소 기록은 21세이던 97년 1위에 오른 우즈가 갖고 있다. 독일인으로는 86년 마스터스 우승으로 3주간 랭킹 1위에 올랐던 베른하르트 랑거에 이어 두 번째다.

3주간 1위 자리를 지키고 있는 이 골퍼에게 주목하는 것은 그가 경솔하지 않다는 점이다. 그는 유럽의 다른 선수와는 품격이 다르다.

20대 영건의 선두주자 로리 매킬로이(22·북아일랜드)는 지난해 “우즈는 그저 평범한 선수”라고 폄하했다. 웨스트우드는 올해 트위터를 통해 “우즈, 이언 폴터를 너무 존경한 나머지 머리를 갈색으로 염색하고 페라리를 구입했다는 게 사실이야?”라고 조롱했다.

카이머는 우즈를 향해 매킬로이처럼 치기어린 표현을 하지도 않았고, 웨스트우드처럼 대놓고 놀려먹지도 않았다.

“우즈가 2000년과 똑같은 수준의 플레이를 펼친다면 내가 어려움을 겪게 될 것이다. 그래도 도전의 기회를 갖는다는 것은 멋진 일이다.”

그는 현재의 넘버원 자리에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고 있다. “솔직히 내게 큰 변화는 없다. 세계랭킹 1위가 그렇게 큰 의미가 있다고는 보지 않는다. 특히 지금은 아주 경쟁이 치열한 상황이다. 대회에 참가하는 선수 누구나 우승할 수 있고 순위는 매주 바뀔 수 있다.”

카이머는 겸손하게 말했지만 미국 뉴욕 데일리뉴스는 ‘카이머의 시대가 오고 있다’고 평가했다. 미국 NBC방송과 골프채널의 해설가인 게리 코치는 카이머가 독일의 골프 영웅 랑거와 많이 닮았다며 대성 가능성을 높게 봤다. “그는 여러 면에서 랑거를 연상시키며, 코스에서 랑거와 같은 강인한 정신력을 보여준다. 그는 마음의 움직임을 전혀 보여주는 법이 없다. 랑거에게 실례되는 말이긴 하지만 카이머의 재능이 더 뛰어나다.”

그가 이처럼 침착하다는 평가를 받고 짧은 시간에 세계 정상에 오른 이유는 뭘까. 카이머 스스로 답을 내놓았다. “나는 우리 독일 사람들이 매우 조직적인 사람들이라고 생각한다. 골프에선 조직적인 사람이 침착한 플레이를 할 수 있다.”

그에게서는 1925년에 처음 시판된 독일제 라이카(Leica) 카메라처럼 투박하지만 정확하고 엄격하며 기계적 완벽성을 추구하는 ‘독일 정신’이 느껴진다. 그는 제어력이 매우 뛰어나며 어떤 클럽을 쥐든 높은 일관성을 보여준다. 카이머는 4월 시즌 첫 메이저대회인 마스터스의 강력한 우승후보로 꼽히고 있다. 그는 “많은 사람이 내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일 거라고 말한다. 물론 만족스럽고 행복하다. 하지만 나에겐 무언가 아직 이루지 못한 게 있다. 앞으로 열두 달 동안 나는 그것을 찾아나서게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가 찾아나서게 될 그 무엇은 ‘황제’ 우즈와의 대결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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