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김종수의 세상읽기

일본경제 부활의 기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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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김종수
논설위원
경제부문 선임기자

미증유의 대지진과 쓰나미의 습격으로 일본경제가 속절없이 무너지고 있다. 인명 피해와 재산 손실은 파악조차 하기 어려울 만큼 참혹하다. 도로가 끊기고, 공항과 항구가 폐쇄됐으며, 공장은 멈춰 섰다. 전기와 식수 공급이 중단되고, 통신망은 두절됐다. 대자연의 재앙이 밀어닥친 일본 동북부의 경제는 마비 상태다. 여기다 원전 폭발로 인한 방사능 누출의 위험이 점증하면서 일본 열도 전역이 공포감에 휩싸였다. 일본 증시는 연일 대폭락세를 보이고 있다.

 일본의 경제 거점이 몰려 있는 도쿄 이남 서남부는 피해를 거의 보지 않았다고 하지만 동북부 대지진의 여파는 서서히 일본경제를 잠식해 들어가고 있다. 사정이 급한 동북지역에 전기를 돌리느라 다른 지역에 전기 공급을 제한하면서 여타 지역의 공장과 상점, 가정에도 대지진의 후유증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공장의 조업 단축은 물론 생필품 품귀 현상이 빚어지면서 경제활동 전반이 위축되고 있는 것이다. 과연 일본경제는 이대로 주저앉고 말 것인가.

 당장 겉으로 드러난 모습만 봐서는 일본경제의 침체는 불가피할 것 같다. 대지진으로 인한 직접적 경제 손실액은 1000억 달러에서 최대 3000억 달러에 이를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1995년 고베 대지진의 피해 규모는 100조 엔(현재 가치로 약 1200억 달러)이었다. 이번 대지진으로 초토화된 동북부 지역의 인프라와 기초 생활기반을 복구하는 데만 1800억~2500억 달러가 필요할 것으로 예상된다. 막대한 국가부채와 재정적자에 시달리는 일본 정부로서는 감당하기 벅찬 액수가 아닐 수 없다. 일본은행은 “지진 피해가 확산됨에 따라 앞으로 당분간 생산이 줄어드는 것은 물론 기업과 가계의 심리도 위축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메릴린치는 이번 대지진이 올해 일본의 성장률을 0.2~0.3%포인트 잠식할 것으로 분석했다. 물론 이 수치는 앞으로 피해가 더 발생하지 않는다는 가정하에 나온 것이다. 새로운 지진이 덮치거나 원전 폭발 피해가 확산될 경우 경제손실 규모와 복구 소요비용은 더욱 늘어날 것이고, 경제성장률은 더 떨어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자연재해로 인한 피해가 반드시 경제를 침체로 이끄는 것은 아니다. 물론 이미 벌어진 인명 피해와 재산 손실은 안타깝지만 되돌릴 수 없다. 하지만 피해복구와 재건노력이 얼마나 잘 이뤄지느냐에 따라 경제는 얼마든지 살아날 여지가 많다. 즉 과거에 축적된 부(富)는 줄어들겠지만, 복구작업이 신속하게 이뤄진다면 올 한 해의 경제는 더욱 빠르게 성장할 수 있다는 얘기다. 예컨대 복구 및 재건 수요에 힘입어 피해를 보지 않은 지역의 생산활동이 훨씬 더 활발해지면 지진 피해로 인한 생산 감소를 상쇄하고도 남을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일본 정부가 부담이라고 생각하는 막대한 복구비용은 뒤집어 보면 엄청난 투자 수요나 다름없다. 그동안 일본경제가 안고 있던 만성적 고질병인 내수 부족 문제를 일거에 해결할 수 있을 정도의 신규 수요가 생긴 것이다.

 위기는 기회라고 했던가. 잔인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일본을 엄습한 참혹한 자연재해도 잘만 활용하면 일본경제를 살리는 계기로 삼을 수 있다는 얘기다. 실제로 1995년 고베 대지진 이후 복구과정을 통해 일본의 국내총생산(GDP)은 2% 이상 늘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몇 년 전 한 일본 고위 관료가 “일본경제에 필요한 것은 (당장 약발이 듣는) 아주 좋은 지진”이라는 발언을 했다고 소개했다. 의도적으로 극단적 표현을 동원했지만 여기에는 일본경제가 침체에서 벗어나 활력을 찾기 위해서는 무언가 획기적 자극이 필요하다는 절실함이 배어 있다. 실제로 그가 지진이 일어나기를 바라기야 했을까마는 어떻게 해서든지 내수를 부양하고, 이완된 국민의 의욕을 결집할 촉매제가 필요하다는 의도만큼은 분명하다.

 어쨌든 전혀 원치 않았지만 대지진은 일어나고야 말았다. 일본은 이를 부활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적자재정을 두려워하지 말고 신속한 복구와 재건에 나서겠다는 결단이 필요하다. 나라 빚이 조금 더 늘어나겠지만 과거 낭비적 재정지출 행태와 비교하면 피해 복구와 경제 재건에 쓰이는 돈은 생산적이기 그지없다. 이를 통해 일본의 경제체질을 내수 중심으로 전환할 수 있다면 금상첨화(錦上添花)다.

 일본 국민은 이번 대지진의 참화 속에서도 극도의 절제와 질서의식을 보여줌으로써 재기의 가능성을 입증했다. 이를 일본경제 부활의 원동력으로 삼을 수 있느냐는 전적으로 간 나오토 총리의 리더십에 달려 있다. 만일 그가 제2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 최악의 위기라는 동일본 대지진을 일본경제 재건의 기회로 바꿀 수 있다면 그 자체만으로도 대단한 업적일뿐더러 자신의 취약한 정치기반을 딛고 위대한 지도자로 도약하는 발판이 될 것이다.

김종수 논설위원·경제부문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