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현씨 아버지 이성대씨 “한국인 모두 나서 일본 도와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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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대씨

일본 도쿄의 전철역에서 선로에 추락한 일본인을 구하다 숨진 한국인 유학생 이수현씨의 선행은 아직도 일본인의 가슴을 적신다. 이씨의 아버지 이성대(72)씨는 “지금은 한국인 전체가 나서 일본인과 아픔을 같이하고 위로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일본 동북부를 덮친 지진과 쓰나미의 참상을 보고 이씨는 가슴이 먹먹해졌다. 그는 “만약 수현이가 살아 있었다면 일본인을 돕겠다고 뛰어나갔을 것”이라며 “이제는 수현이 같은 개인이 아니라 한국인 전체가 일본인 돕기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14일 오후 부산시 해운대 자택 근처의 한 식당에서 만난 그는 “방금 지하철 타고 올 때 옆자리 승객이 ‘고소하다’는 투로 말하는 것을 듣고 거북했다”며 말문을 열었다.

 “우리를 우습게 보는 일본인들이 많은 게 현실이죠. 하지만 이번에 진정으로 도와준다면 일본인들이 오랫동안 우리를 기억하지 않을까요.”

고 이수현씨

 그는 아들의 희생을 계기로 일본인의 한국관이 크게 바뀌고 ‘한류 붐’의 바탕이 됐다는 도쿄(東京)신문의 기사를 언급했다. 이 기사는 올 초 수현씨의 10주기 때 신문에 게재됐다. 이씨는 “수현이 한 명의 희생에도 일본인들이 감동을 받는데 우리나라 국민 모두가 도와준다면 앞으로 한·일 관계도 크게 개선될 것”이라고 말했다. 수현씨가 숨진 뒤 10년간 1만여 명의 일본인은 ‘이수현 아시아 장학회’에 기부금을 내고 있다. 대부분 일반시민과 회사원 등 평범한 일본인들이다. 지난 한 해 동안 768만 엔(약 1억400만원)의 기부가 답지했다. 장학회는 매년 일본에 유학 중인 아시아 출신 학생 50~100명에게 1인당 10만∼15만 엔씩 장학금을 준다.

 “나에게 잘못한 사람이 아플 때 도와주면 더 고마워하는 법이죠.”

 그는 과거 식민지 시절의 앙금만 생각하고 일본의 지진피해를 외면하는 것은 옹졸하다고 지적했다. 과거를 잊어서도 안 되지만 과거에 집착해서도 안 된다는 뜻이다.

 “적은 금액이라도 보낼 생각입니다. 여유가 있는 사람은 성금을 보내고, 그렇지 못한 사람은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위로를 보내는 게 인간의 도리죠.”

 해운대 아파트에 살고 있는 이씨는 뉴스를 통해 일본 지진피해를 접하면서 일본을 도와야 하는 이유를 더 발견했다고 했다. 지정학적으로 일본 국토가 방파제 역할을 하지 않았다면 쓰나미가 영화 ‘해운대’처럼 한국 해안가를 덮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3·11 동일본 대지진 이후 그동안 장학회를 도와준 일본인들과 통화가 안 돼 걱정이라고 했다. 수현씨 추모비가 있는 시로이시(白石)시 피해도 궁금하지만 아무 정보가 없어 답답하단다. 추모비는 일본인 독지가가 기부한 땅에 세워져 있다. 이씨는 “도와주신 분들이 모두 무사하길 기원한다”면서 “이번 일본 지진피해 돕기를 계기로 한·일이 사이 좋은 이웃 나라 관계로 발전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번 기회에 아이들에게 이웃을 돕는 정신도 가르쳐야 한다고 강조했다. “누가 시킨다고 수현이처럼 지하철에 뛰어들까요. 자녀를 경쟁 속으로만 몰아넣지 말고 따뜻한 마음을 갖도록 가르치는 게 필요합니다.”

부산 글=김상진 기자, 사진=송봉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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