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od&talk] (1) 발레리나 김주원의 김치볶음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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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22면

food&이 새 기획 ‘food&talk’을 시작합니다. 2주일에 한 번씩 사회 각계각층에 있는 저명인사가 자신의 옛 추억이 서린 음식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어렸을 때 먹었던 빵 한 조각부터 어머니가 해 주셨던 맨밥 한 그릇까지 자신을 여태 키우고 살찌운 음식에 관한 사연을 진솔한 육성으로 들려줍니다. food&talk은 푸드라이프스타일 채널 ‘올리브’와 함께 진행하는 연중 기획입니다. 올리브 채널은 연말까지 도네이션 캠페인 ‘100인의 푸드톡’을 통해 미혼모 자녀와 결식 아동, 장애인을 도울 예정입니다. food&이 이 캠페인에 힘을 합칩니다. 음식은 추억입니다. 정(情)입니다. 그 첫 추억과 정의 이야기를 발레리나 김주원(33)씨가 들려줍니다.

저는 중학교 2학년 때 러시아로 유학을 갔어요. 모스크바 볼쇼이 발레학교에 들어갔어요. 1992년이었으니까 소련 체제에서 러시아연방으로 바뀐 지 1년도 채 안 된 시기였어요.

 그때 볼쇼이 발레학교에는 한국 학생은 물론이고 외국 사람 자체가 거의 없었어요. 아마도 제가 최초의 외국인 학생이었을 거예요. 그땐 정말 힘들었어요.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꽉 짜인 고단한 일정과 외국인에 대한 차별, 향수병 등으로 처음 2∼3개월은 포기하고 돌아오고 싶었으니까요.

 발레를 배우는 건 행복했어요. 그러나 기본적인 의식주가 해결이 안 됐어요. 화장실에 잠그는 문도 없었고, 겨울이면 난방이 안 돼 학교가 너무 추웠어요. 전화 사용도 거의 불가능했고, 편지도 몇 달이 걸려 가거나 아니면 아예 안 갔어요. 외국인에 대한 차별도 심했어요. 학생들 자리를 정해 세우는데 잘하는 애들은 가운데 세우고 못하는 애들은 밖에 세웠어요. 그런데 저는 항상 제일 끝이었어요. 제가 한국에서는 잘하는 학생이었거든요. 그런데 러시아에서는 자기들 발레에 대한 자존심이 세서 저는 거들떠보지도 않는 거예요. 그것 때문에 많이 울었어요. 울면서도 새벽에 일어나 가장 먼저 나가 몸을 풀었어요. 끝나고 나서도 몰래 홀에 들어가 연습했고요.

 선생님도 제가 노력하는 걸 아시는 것 같았어요. 처음에는 눈도 안 마주치던 선생님이셨지만 그렇게 한 해 두 해 시간이 흐르면서 가운데로 자리가 옮겨졌어요. 그리고 졸업할 때는 제일 높은 점수를 받고 우등생으로 졸업할 수 있었어요. 그때 절 지도하셨던 선생님이 지금은 학교 교장이 되셨어요. 지금까지 저랑 연락을 주고받는 어머니 같은 분이세요.

 외국 나가면 한국 음식 생각이 많이 나잖아요. 중학교 3학년 땐가 그랬는데요. 한국인 친구가 한 명 있었는데 김치랑 계란을 가지고 맛있는 한국 요리를 해 주겠다고 하는 거예요. 원래는 스팸이 들어가야 제 맛인데 그걸 구할 수 없어 고기 맛이 조금 나는 러시아 소시지 ‘칼바사’를 잘라 넣고 김치볶음밥을 만들었어요. 향수병과 외로움에 힘들어할 때였는데 그 친구가 만들어 준 김치볶음밥이 큰 위로와 힘이 됐어요. 맛있어 하면서도 한국 생각하며 울었던 기억이 나요.

 그래서 저는 지금도 김치볶음밥을 보면 그때 그 친구가 어린 손으로 투박하게 만들어 줬던 기억이 떠올라요. 저에게 김치볶음밥이란 러시아에서 생활했던 것을 떠올리게 해 주는 추억인 것 같아요. 잊고 있었던 한국의 맛을 느낀 거잖아요. 꼭 음식만 생각난 게 아니라 엄마도 생각나고 가족도 생각나고 한국 친구도 생각이 났거든요. 모스크바에서는 정말 외로웠어요. 그럴 때 먹었으니 얼마나 큰 위로를 받았겠어요. 한국의 맛을 조금이라도 느끼게 해 주려고 만들어 준 친구한테도 정말 고마워요.  

정리=손민호 기자

● 김주원은 1978년 부산에서 태어났다. 발레 무용가이자 뮤지컬 배우. 러시아 볼쇼이 발레학교와 한국예술종합학교를 졸업했다. 98년 뮤지컬 ‘해적’으로 데뷔한 뒤 2006년 무용계의 아카데미상이라는 ‘브누아 드 라 당스’ 최고 여성 무용수상 등 수많은 국내외 콩쿠르에서 수상했다. 현재 국립발레단 수석 무용수.

김주원의 비트김치볶음밥과 비트샐러드 조리법

러시아 유학 시절 위장이 약했던 김주원씨에게 기숙사 선생님이 권해 처음 먹어 본 비트(빨간무). 그 뒤로 하루에 한 끼니는 꼭 비트샐러드를 먹곤 했다. 김씨가 공개한 비트를 넣은 김치볶음밥과 샐러드 조리법.

● 재료

김치(2쪽), 계란(2개), 비트(2조각), 러시안 소시지(1개), 플레인요구르트(1개), 올리 브유

● 만드는 법

1 팬에 올리브유를 두르고 계란을 넣은 뒤 저으며 익힌다.
2 소시지는 먹기 좋게 썰어 볶아 둔다.
3 올리브유를 두르고 비트와 김치를 볶다 밥을 넣고 같이 볶아 준다.
4 먼저 익혀 둔 계란과 볶은 소시지를 넣고 같이 볶아 준다.
5 샐러드용 비트는 채 썰어 그릇에 담는다.
6 비트 위에 플레인요구르트를 부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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