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직문화는 기업의 최후 경쟁력 구성원을 광신도로 만들어라”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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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9호 27면

Q.좋은 기업문화를 강조하는데, 기업문화가 그렇게 중요합니까. 기업문화가 좋으면 무엇이 좋은가요. 회사 실적도 좋아지나요. 한미파슨스의 고유한 기업문화로 무엇을 꼽나요.

경영 구루와의 대화<6> 김종훈 한미파슨스 회장②

A.기업문화야말로 기업에서 가장 소중한 최후의 경쟁력입니다. 특히 회사가 어려워지거나 위기에 봉착했을 때 좋은 기업문화는 결정적 힘을 발휘하죠. IBM의 전설적인 CEO 루 거스트너 전 회장의 말대로 기업문화는 기업의 성패를 좌우합니다. 한미파슨스가 벌이는 ‘일하기 좋은 기업’(GWP) 만들기 운동도 실은 좋은 기업문화 가꾸기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신뢰·존중·자부심·동료애 등 GWP의 철학은 우리 회사 문화의 핵심적인 요소예요.

좋은 기업문화가 뿌리내린 회사는 무엇보다 지속적인 성장을 할 수 있습니다. 짐 콜린스는 성공하는 기업들의 8가지 습관에서 “어느 업종이든 선도적인 기업들은 ‘사교(邪敎) 같은 기업문화’(cult-like cultures)를 품고 있다”고 썼습니다. 좋은 기업문화를 갖춘 회사의 구성원은 광신도 같은 사람들이라는 거죠. 이렇게 구성원들이 서로 신뢰하고 조직에 대한 충성도가 높으면 선순환 경영이 이뤄져 기업이 성장할 수밖에 없어요. 이른바 지속가능한 성장이 이루어지는 거죠.

GWP의 핵심 가치 중 하나가 공정성입니다. 신뢰가 형성되려면 기회가 균등하게 부여되고 평가와 보상이 공정해야 합니다. 그런데 성과와 무관한 균등한 보상은 공정한 게 아닙니다. 탁월한 성과를 거둔 사람에게 그에 상응하는 보상을 해 주는 게 공정한 거죠. 우리 회사는 임원보다 보수가 높은 부장도 있고, 부장보다 많이 받는 차장이 수두룩합니다. 다만 이런 차등적 보상이 노출되면 조직의 화합이 깨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회사에서 자기 보수를 노출하는 것은 선진 기업에서 그렇듯이 해고 사유가 됩니다.

우리 회사는 대부분의 구성원이 경력사원입니다. 건설사업 관리(CM)라는 비즈니스를 우리가 처음 국내에 도입한 데다 CM 자체가 시공사, 설계회사, 나아가 발주자까지도 리드해야 하는 일이라 베테랑이 필요하기 때문이죠. 직급을 기준으로 하면 사원이 가장 적고 부장이 가장 많아요. 완전한 역삼각형 구조죠. 저마다 ‘나’가 아니라 ‘우리’가 돼야 할 필요가 있는데,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모두’가 되어 보자는 거죠.

이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커뮤니케이션입니다. 우리 회사는 32개 소통 채널이 있습니다. 각종 원탁회의, 매주 제가 인트라넷과 개인 홈페이지에 올리는 CEO 단상, 직원들이 월요일마다 돌아가며 원고 없이 하는 3분 스피치, 지정된 책을 읽고 올리는 독후감 등을 통한 지식나눔 활동, 매달 넷째 주 토요일에 벌이는 사회봉사를 통한 사랑나눔 활동 같은 것들이죠. 원탁회의는 신입사원부터 시니어 구성원, 임원에 이르기까지 직급별로 다양하게 열립니다. 원탁회의는 구조적으로 평등을 지향하죠.

미래전략 수립도 우리는 원탁회의를 거칩니다. 이 미래전략 원탁회의는 사원부터 CEO까지 15명의 멤버가 매달 만나 특정 주제를 놓고 자유롭게 의견을 주고받습니다. 조직문화가 수평적이면 낮은 직급의 구성원에게 많은 기회가 돌아갑니다. 그래서 수직적인 조직문화도 필요하지만 수평적인 문화를 잘 가꿔야 합니다. 둘 사이의 밸런스가 중요하죠.

우리 회사는 2년 전 고유한 조직문화에 맞는 업무 방식으로 ‘한미파슨스 웨이’를 제정했습니다. 업무 성과를 극대화하기 위한 것으로 영역별로 네 가지 원칙이 있습니다. 그중 하나가 ‘우리는 업무혁신과 관련해 실패를 용인하는 문화를 장려한다’입니다. 구성원들이 새로운 업무 방식을 주저하지 않고 도입하게 하려는 것이죠. ‘프로젝트적 사고와 커뮤니케이션 절차를 중시한다’는 원칙도 있습니다. 저는 세계 어느 나라에서나 글로벌 수준으로 일하는 방식을 우리가 마련했다고 생각합니다.

미국의 대표적 글로벌 기업인 제너럴일렉트릭(GE)은 구성원들에게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르지 말고 GE 법을 따르라”고 요구합니다. 어느 나라에 가든 GE 법에 위배되는 비즈니스는 하지 말라는 거죠. 이를테면 후진국에 진출하더라도 뇌물을 주지 말라는 겁니다. 우리도 구성원이 기업의 핵심 가치에 따라 움직이는 회사를 지향합니다. 우리 회사의 다섯 가지 핵심 가치 중 하나가 ‘정직’인데 전 직원이 소지하고 월요일마다 복창하는 경영비전 카드에 이렇게 명시돼 있습니다. “우리는 언제나 바르게 생각하고 바르게 행동하며 또한 서로에게 솔직하게 행동한다.”

우리 회사엔 여성을 우대하는 문화가 있습니다. 출산한 여성에겐 산전 후 휴가 기간을 포함해 6개월의 휴가를 의무화하고 있죠. 자녀가 셋 이상이면 별도의 인센티브를 지급합니다. 우리 회사는 또 구성원의 가족도 배려하는 가족친화 경영을 합니다. 구성원의 출산을 장려하고 회사가 구성원의 가족들도 돌봅니다. 일례로 배우자 건강검진 제도가 있는데 이 제도 덕에 두 사람의 배우자에게서 초기 암이 발견돼 조기에 치료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 회사가 구성원의 전 자녀에게 학자금을 지원하는 것도 구성원의 가정을 중시하기 때문이죠. 직장인은 집안이 편해야 회사 일에 몰두할 수 있습니다.

학자금 지원은 초기엔 두 자녀에 한해 대학 졸업 때까지 지원했지만 2000년부터 자녀가 몇이든 전 자녀로 확대했어요. 지난해 3월부터는 입양한 자녀에게도 지원을 합니다. 제도상으로는 친생자 열 명에, 스무 명을 입양하더라도 전원 대학을 마칠 때까지 학자금을 전액 지원받을 수 있습니다. 그래도 회사가 부담하는 금액이 늘어나지 않는 건 그만큼 출산 기피가 심각하다는 방증이라고 할 수 있죠.

우리 회사는 경영에서 저의 친인척을 배제하고 경영권 승계 대상에서도 배제했는데 이런 노력도 좋은 기업문화를 가꾸는 데 상당한 도움이 됐습니다. 좋은 기업이 되려면 CEO가 사심이 없어야 합니다. 우리 회사는 파벌도 없습니다. 파벌이 생기면 조직문화가 망가집니다. 회사에 충성하던 구성원이 파벌 보스의 해바라기로 변하기 때문이죠.

좋은 기업은 고객, 협력기업과의 관계도 좋아야 합니다. 우리 회사는 협력기업과 약속한 것은 우리가 불리하더라도 반드시 지킵니다. 단적으로 협력기업에 줄 돈을 잘 줍니다. 건설사의 협력기업은 흔히 캐시플로가 안 좋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선수금이든 기성금이든 받고 나면 협력기업에 현찰로 줍니다. 우리가 돈을 못 받았더라도 돈 줄 때가 되면 주라는 게 우리 회사의 경영방침이죠. 협력기업으로선 수주와 관련한 로비와 향응의 필요성이 없어 거래비용도 발생하지 않습니다. 그 보답으로 협력기업 쪽에서도 우리가 적어도 10%의 가격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게 해 줍니다. 거듭 말하지만 GWP 운동은 성과를 키우기 위해 하는 겁니다. 그런 점에서 구성원 만족 경영은 고기를 잡기 위해 미끼를 던지는 작은 투자라고 할 수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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