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 ‘위험한 돌’ 살려 상대 유인 … 저 ‘독사’ 맞습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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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2면

최철한 9단은 6년의 답보 끝에 ‘겸손과 노력’의 이치를 깨달아 다시금 제2의 전성기를 맞이하고 있다.

저마다 독특하고 까칠한 개성을 갖고 있는 바둑의 고수들, 그중에서도 대표적인 ‘훈남’으로 꼽히는 기사가 한국랭킹 2위 최철한(26) 9단이다. 그에게 ‘독사’라는 별명이 붙은 것은 아이러니지만 철저히 전투적인 기풍을 고려하면 그리 틀린 말도 아니다. 그 최철한 9단이 제2의 전성기를 맞고 있어 화제다.

올해 들어 20전 16승4패로 전체 프로기사 중 다승 1위다. 그 16승의 상대도 거의 세계 정상급이다. 농심배에선 막판 4연승으로 한국 우승을 이끌었고 국수전과 천원전에서 잇따라 우승했다. 맥심배 결승에 올라갔고 중국과의 단체전(초상부동산배)에선 중국랭킹 1위 저우루이양 5단과 구리 9단을 연파하고 한국 선수 중 유일하게 전승을 거뒀다. 9일 중국에서 막 돌아온 최 9단을 만났다. 그는 현재 세계바둑을 주름잡고 있는 고수들에 대해서도 모처럼 시원한 품평(?)을 해 줬다.

-벌써 프로 데뷔 14년째다. 올해 들어 제2의 전성기를 맞고 있는데 바둑에 새롭게 눈을 떴나.(최 9단은 2004년 19세 때 최강 이창호 9단을 꺾으며 연속 타이틀을 따내 이세돌 9단을 추월할 듯한 기세였으나 2006년 응씨배 결승에서 패배하며 긴 슬럼프를 맞이했다.)

 “당시(이창호를 꺾었던 2004년 무렵)엔 자신만만했고 무서운 게 없었다. 그러다 게을러 졌고 성적이 급강하했다. 승부세계도 결국은 노력한 만큼 결과가 나타난다는 것을 나중에 알았다. 크게 반성하고 있다. 겸손하게 살아야겠다, 노력해야겠다고 다짐하고 있다.”

-요즘 집단 연구를 열심히 하고 있고 그 효과가 크다고 들었다. 멤버는 누구인가.

 “삼천리자전거의 회장님이 후원해줘 신사연구회를 만든 지 꽤 된다. 박정상, 원성진, 박정환, 허영호, 이영구, 윤준상, 김지석 등 13명이 모이고 있다. 여기서의 공동연구를 통해 실력이 가장 많이 는 기사는 2년 아래의 허영호다. 내일 허영호와 BC카드배 16강전에서 만나는데 힘든 일전이 될 것 같다.”

-멤버들 면면이 무섭다. 이창호 9단은 연구회에 나가지 않는다. 혹 그를 초청한 적이 있는가. (이 9단과는 21일 맥심배 결승전을 앞두고 있다.)



 “예전에 한 번 말씀 드린 적이 있는데 유야무야 됐다. 그래서 조심스럽지만 다시 한번 나와 달라고 정중히 청하고 싶다. 이창호 사범님은 오랜 세월 혼자 공부하고 있는데 그렇게 해서도 세계 정상을 지켜왔다는 게 나에겐 진정 미스터리다.”

-현 한국 1위 이세돌 9단도 연구회 활동을 하지 않는다.

"세돌이 형은 물론 독불장군이다. 하지만 도전기나 중요 대국 때 불쑥 나타나 복기를 즐긴다.”

-스타일(기풍) 얘기를 해보자. 최 9단은 철저한 전투파인데 왜 그렇게 싸우나. 때로는 불리한 싸움마저 일부러 거는 느낌인데 꼭 그래야 하나.

 “전투는 내 나름의 ‘확률’의 문제다. 길게 가서 이길 확률과 지금 당장 변화를 일으켜 승리할 확률을 내 나름대로 계산한 결과다. 정교한 마무리에 자신이 없으니까 대개는 ‘싸우자’ 쪽으로 결론을 내린다.”

-돌을 여간해서 버리지 않는 특징도 지적된다. 바둑 10결에 ‘버리라’는 충고가 3번이나 나오는데 좀 이상하지 않은가.(바둑 10결의 사소취대, 기자쟁선, 봉위수기 세 가지가 버리라는 의미.)

 “나는 스릴을 즐기는 편이다. 위험한 돌을 살리면 상대는 잡으러 오고 그때 승기를 잡을 수 있기에 살리는 쪽에 자꾸 구미가 당긴다. 전투에서 승점을 올리면 마무리가 편하지 않은가. 끝내기는 나에게 어려운 종목이다.”

-그렇게 바둑을 두니 독사라는 별명을 듣는다. 독사라는 별명은 마음에 드나.

 “좋은 별명 안 지어주니까 할 수 없이 감수하고 있다. 이창호 9단처럼 한국 바둑을 잘 이끌어 ‘수호신’ 같은 별명을 듣고 싶다.”

-현대 바둑은 갈수록 전투 일변도로 흘러간다. 예전의 유연한 바둑이 때로 그립다. 이게 모두 각박한 세태 탓은 아닐까.

 “부분 전투에서 밀리면 끝장이니까 갈수록 치열해질 수밖에 없다. 예전의 유연함, 대세관 등은 뒷전이 될 수밖에 없다.”

-전투라면 이세돌 9단을 빼놓을 수 없는데 그의 장점은 무엇인가.

 “끝까지 놓지 않는 특유의 집중력, 상대를 압도하는 ‘포스’. 상대의 의도를 거슬러 싫어하는 방향으로만 가는 것도 내가 당할 수 없는 세돌이 형의 전문 분야다.”

-최 9단은 이세돌 9단과 포스트 이창호를 놓고 다퉜으나 밀렸다. 이제 다시 일인자 자리를 향한 전진을 시작했는데 가장 큰 강적을 꼽는다면 누구인가.

 “세돌이 형은 내가 헤쳐나가야 할 선배이고 정환이(박정환 9단)는 뒤를 쫓는 어려운 후배다.”

-박정환은 어떤 스타일인가.(18세의 박정환은 한국랭킹에서 최철한 다음의 3위. ‘포스트 이세돌’의 영순위 후보로 꼽히고 있다.)

 “연구회에서 거의 매일 보는데 세돌이 형처럼 근성이 뛰어나다. 하기 싫은 건 안 하지만 독불장군은 아니다. 기풍이나 성격은 양쪽(이창호와 이세돌)을 반반씩 닮았는데 아직 어려 정체성이 뚜렷하지는 않다. 12일 원익배 10단전에서 만난다. 역시 어려운 일전이 될 것 같다.”

-이번 중국에서 열린 한·중 단체전에서 한국이 4대6으로 졌다. 중국 바둑을 평가한다면.

 “비록 졌지만 양이(이창호-이세돌)가 빠진 상태에서 그 정도 성적을 올린 것에 내심 만족하고 있다. 중국은 벌써 한국을 넘어선 것으로 생각했는데 한국도 연구회 중심으로 실력을 키우며 의외로 잘 버티고 있는 양상이다.”

-중국의 수많은 신예들이 두렵지 않은가.

 “중국엔 쿵제, 구리 같은 최정상급 말고도 그들과 막상막하로 겨루는 신예들이 줄을 섰다. ‘막강한 허리’라고나 할까. 하루 자면 강력한 새 얼굴이 나온다. 그러나 정상 직전에 와글와글 머물러 있을 뿐 송곳처럼 뚜렷한 인물은 없다. 다만 하도 수가 많아 그들에게 한번 밀리면 끝장인 것도 분명하다. 한국 바둑도 나도, 살아남으려면 더 노력해야 한다.”

박치문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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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소속기관

생년

[現] 바둑기사

198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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