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 선수노조관련 스포츠마케팅측 의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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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수노조 관련 'A'스포츠마케팅업체의 의견이다. 익명을 요구하는 업체 관계자의 의견에 따라 업체명은 'A'로 표시하였다.

"지난 1995년 겨울 임선동 사건을 계기로 한국프로야구에 항상 문제가 되었던 것이 있다. 바로 FA(Free Agent, 자유계약)제도이다.

올해는 특히 이 제도가 도입이 되었다는 점에서 어느 해보다 팬들과 구단, 선수들의 관심이 폭발적이다. 하지만 항상 그래왔듯이 올해도 KBO는 많은 팬들과 선수들의 요구를 무시하고 구단만의 이익만을 반영하는 규약을 만들었다.

선수들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한 방편으로 시행된 이것이 우리 나라에 와서 오히려 선수들의 권익을 깎아먹고, 또한 선수를 볼모로 한 구단의 돈벌이 수단으로 변질된 듯한 느낌이다.(이것이 느낌이기만 하면 얼마나 좋을까마는 실제로 그렇게 변질되고 말았다. 지난 12월 1일 열린 KBO 이사회에서 결정된 것을 보면...) 이에 필자는 여기에서 스포츠 마케팅측면에서의 FA제도의 장단점을 지적하고자 한다.

FA제도란 구단의 일방적인 선수 소유에 대한 선수의 권익 보호를 위해 미국(1970년) 및 일본(1993년)에서 시행되고 있는 제도이다. 미국의 경우, 한 팀에서 6년(마이너리그 활동 포함) 이상 뛴 후에 FA 자격을 얻는다. 이렇게 FA 선수를 얻는 구단은 원 소속구단이 지명하는 마이너리그 선수를 트레이드 해주는 보상제도를 실시하고 있다. 반면 일본의 경우, 한 시즌에 150일 이상 1군에 등록하고, 한 팀에서 10년 이상 활동한 선수들이 그 대상이 된다.

미국의 경우, 무조건 선수들이 FA를 선호하는 것은 아니다. 한 팀에 뿌리 내리는 것을 선호하는 경향도 있고, FA가 엄청난 몸값 인상으로 직결된다는 보장도 없기 때문이다. 한번 FA가 되면 계약기간이 끝날 때마다 FA로 남게 되기 때문에 그만큼 High Risk, High Return인 셈이다. 그래서 구단들은 유망한 선수들의 몸값이 폭등하기 전에 다년계약을 맺어 FA 이후의 피곤한 줄다리기를 회피하기도 한다.

이러한 FA제도의 장점은 첫째, 지역연고가 강하고 스타 마케팅을 지향하는 우리 나라에서는 우선 연고선수를 확보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지역 연고의 선수를 확보한다는 것은 단순한 지역연고의 의미 외에 추가 수입원의 확대라는 측면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뛰어난 지역출신 스타를 갖는 경우, 홈 경기뿐만 아니라 원정경기(특히 서울 경기)에서의 관중동원에 많은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둘째, 프로야구의 사회적 역할이다.
대중문화로 자리한 프로야구가 노비문서와 같은 현행 선수계약 방법이 아닌 자본주의 논리에 입각한 FA제도를 도입함으로써 '정당한 실력에 대한 정당한 보수 지급'이라는 경제 정의의 실천을 통해 프로 야구의 긍정적 이미지 창출에 기여한다. 이를 통해 프로 스포츠는 곧 돈이라는 부정적 시각을 없애고 새로운 잠재 고객을 창출할 수 있다. 돈에 의해 움직이는 것이 아닌 자신이 원하는 팀을 찾아 진로를 결정하는 선수들의 훈훈한 예들은 이러한 긍정적 이미지 창출에 기여한다 하겠다.

셋째, FA제도는 실력 있는 고등학교 선수들에게 빨리 프로로 진출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
비록 시작은 자신이 원치 않는 팀에서 출발했더라도, 궁극적으로는 자신이 원하는 팀에서 경기를 펼칠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다. 또한 일찍 프로로 전향함으로써 좀더 어린 나이에 체계적인 훈련을 통한 기량 향상을 꾀할 수도 있다. 이 경우 많은 팬들은 좋은 선수들을 좀더 일찍, 그리고 더 훌륭한 기량으로 접할 수 있으며, 이것은 구단의 수입과 직결된다.

반면 FA제도의 문제점은 무엇인가? 바로 돈이다. 우리보다 일찍 이 제도를 도입했던 미국이나 일본의 경우 선수 몸값의 지나친 상승이 폐단으로 지적되고 있다. 특히 미국이나 일본과는 달리 우리 나라 구단의 운영은 모기업의 지원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기 때문에 심각한 문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과거 선수 트레이드나 신인계약에 있어서 경제성을 무시한 채 모기업의 자존심 대결로 이어져왔던 것을 볼 때, FA제도는 우수 선수가 돈만을 고려하게 되는 부작용과 대기업의 자존심을 건 자금 공세, 그리고 이에 따른 전력 불균형을 야기할 수 있다. 이렇게 된다면, 모기업의 자금력과 재계의 순위가 곧바로 프로야구의 순위를 결정하는 부정적 결과를 낳을 수 있다.

또한 미국이나 일본과는 달리, 우리 나라의 프로 스포츠 시장은 그렇게 넓지가 않다. 미국, 일본처럼 관련상품의 판매가 활발한 것도 아니고, 일본처럼 캐릭터 산업이 발달한 것도 아닌 상황에서 선수의 몸값 폭등은 구단 운영에 막대한 짐이 될 것이다.

18년간 프로야구가 운영되어 오면서 구단이 단지 그룹 홍보 수단으로만 여겨져 왔던 점을 감안해 볼 때, 선수의 몸값은 우리 사회의 다른 부분에 비해서 지나치게 부풀려져 지급되어 온 것이 사실이다. 앞으로 이런 점을 고려하지 않는다면 FA제도는 한낮 선수들의 몸값을 부풀리는 수단으로만 사용되고 각 구단의 재정사정은 더욱 더 악화될 것이다.

시작부터 많은 잡음을 일으키며 출발한 FA 제도. 이왕에 시작된 제도라면 제도 자체의 문제점과 폐단의 지적보다는 앞으로 어떻게 발전적 방향으로 이끌어 나갈 것인가에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21세기 고부가가치산업이라는 스포츠 산업의 육성과 발전을 위해 FA 제도의 운영을 어떻게 해나갈 것이며, 스포츠 시장의 새로운 수요 창출을 위하여 어떠한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인가에 모두의 노력이 집중되어야 하겠다.

FA제도의 본격적인 시작과 함께 스포츠 매니지먼트 및 에이전트 회사들이 속속 창업 전선에 뛰어들고 있다. 선수나 구단 모두 개인 및 구단 이기주의를 극복하고 좀더 멀리 내다볼 줄 알아야 하겠다.

선수 개개인은 당장의 한 두 푼보다는 선수 개인의 장기적 권익과 안정된 선수생활을 위한 대행인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구단은 체계적이고 합리적인 계약 관계를 대행할 에이전트의 인정을 통해 프로 야구 시장의 확대를 꾀하고 스포츠 시장의 발전이란 거시적 안목을 가져야 할 것이다.

귤화위지(橘化爲枳)란 말이 있다. 귤이 화수를 건너면 탱자가 된다는 말. 우리네 사정을 잘 표현한 말 같다. 이번 FA제도만이라도 구단, 선수, 그리고 팬들이 모두 납득할 수 있는 제도로 발전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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