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역전의 주인공 되도록하겠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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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2면

“대학총장이라고 고고하게 군림하는 시대는 지났다.”

 17일 개봉하는 임권택 감독의 101번째 영화 ‘달빛 길어올리기’에 단역으로 출연한 동서대 장제국(47·사진) 신임 총장의 소회다. 이 영화는 임진왜란 때 불타버린 조선왕조실록 중 유일하게 남은 ‘전주사고 본’을 전통 한지로 복원하려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장 총장은 전주시청의 한지 담당 국장역을 맡아 다큐멘터리를 찍는 지원(강수연)을 부하직원인 필용(박중훈)에게 소개해주는 단역으로 깜짝 출연한다.

그는 단 3분 출연을 위해 하루 종일 연습을 하며 NG도 수십번 냈다고 한다. NG를 낼 때마다 임 감독의 고함소리를 묵묵히 들어야 했다. 그는 “평소에는 부드러운 임 감독이 촬영 현장에서는 눈에서 불이 튈 정도로 카리스마가 넘쳤다”며 혀를 내둘렀다.

 그는 “대학 총장으로서 튀는 행동이 아닌가 고민하다가 예술성 높은 작품임을 확인한 뒤 대학의 특성을 알리기 위해 출연을 결심했다”고 말했다. 동서대는 영화·영상분야 특성화 대학으로 2008년 국내 대학 최초로 개인의 이름을 붙인 단과대학인 ‘임권택 영화예술대학’을 세웠다.

 7일 취임한 장 총장의 파격 행보가 관심을 끌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올 9월부터 가난하지만 우수한 동서대 학생 200명을 미국과 중국의 분교에 유학을 보내는 ‘Before 동서 and After 동서 인재 양성’프로그램이다. 동서대 신입생의 기초학력이 수도권에 비해 떨어지지만 졸업할 때는 우수한 실력을 갖춘 ‘역전의 주인공’으로 만들겠다는 생각에 그렇게 이름을 붙였다.

장 총장이 모델로 삼은 곳이 세계적인 공대인 미국의 칼텍(Caltech·캘리포니아공대)이다. 칼텍은 졸업생 학력 수준이 신입생 때보다 크게 웃도는 대학으로 유명하다. 올해 200명으로 시작하지만 점차 대상 학생을 늘려서 모든 학생들이 1년 동안 해외 캠퍼스에서 수학하도록 할 계획이다. 이 프로그램은 학교 측의 경비 부담을 이유로 학내 논란이 있었으나 장 총장은 학생들을 위해 밀어붙였다고 한다.

 그는 “비록 입학할 때 환경과 학력이 수도권에 비해 떨어지지만 잘 가르쳐서 인성과 창의성, 능력을 고루 갖춘 인생 역전의 주인공이 되도록 하겠다”라고 말했다.

 장 총장은 미국 조지워싱턴대에서 정치학 학사·석사를, 미국 시라큐스대 로스쿨과 일본 게이오대에서 법학과 정치학 박사학위를 각각 받았다. 2003년 동서대 국제관계학과 교수로 부임해 부총장을 지냈다.

부산=김상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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