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 원두(原豆)의 깊은 맛과 향을 제대로 음미하려면 이탈리아식 에스프레소(espresso)가 제격이다. 높은 증기압을 통해 원두 속에 함유돼 있는 부드럽고 향기로운 맛을 추출해 그대로 입속까지 전해준다. 좋은 원두를 사용한 에스프레소는 황금빛 크림의 빛깔과 질감으로 금방 알 수 있다. 카푸치노·라테 등 종류가 다양하지만 에스프레소가 기본이다. 아메리카노는 에스프레소에다 물을 탄 커피일 뿐이다. 인스턴트 커피에 길들여진 미국인들에게 이탈리아식 커피문화를 전달한 게 1980년대 스타벅스였다. 스타벅스는 밀라노의 카페를 모델로 삼아 출발했다.
커피라고 다 같은 게 아니다. 포도주처럼 생산지에 따라 가격과 맛이 천차만별이다. 커피 품종은 전 세계 생산량의 75%를 차지하는 아라비카(Arabica)와 한 등급 아래의 로부스타(Robusta)로 나뉜다. 최상급의 자메이카 블루마운틴부터 하와이 코나, 콜롬비아 마일드, 과테말라·예멘·에티오피아 등 비(非)콜롬비아 마일드 아라비카, 브라질 아라비카, 자바 등의 로부스타 순으로 가격이 매겨진다. 전 세계에서 1% 정도만 생산되는 블루마운틴은 귀하고 가격도 훨씬 비싸다. 어떤 커피를 쓰느냐에 따라 값과 맛이 달라진다는 뜻이다.
한국은 이젠 커피 대국이다. 아관파천(俄館播遷,1896년) 때 고종 황제가 피신한 러시아 공사관에서 처음으로 맛본 커피는 지난해 4억2000만 달러어치가 들어왔다. 사상 최대다. 3700만여 명의 20세 이상 성인이 한 해 312잔(한 잔=커피 10g)씩 마신 것에 해당한다. 며칠 전 관세청은 커피 10g의 원두 수입 가격이 123원이라고 공개했다. 커피전문점에서 아메리카노 한 잔 가격이 3000원대라면 20배가 넘는 이윤이 붙는 셈이다. 임대료·가공비·인건비를 감안하고 가격 대비 맛을 보자면 소비자가 ‘봉’이 된 느낌이다. 원액을 마시는 에스프레소는 그 진실을 알고 있다.
국내에선 자판기 커피, 다방 커피로 불리는 인스턴트 커피, 원두 커피 등 기호가 다양한 데다 토종과 외국 브랜드가 ‘커피전쟁’을 벌이고 있다. 경쟁이 치열해지면 가격이 떨어지는 게 시장논리인데 현실은 거꾸로다. 유럽에서 서서 마실 때 에스프레소 한 잔 가격은 대개 1유로(약 1500원) 안팎이다. 미국에서 커피를 마셔도 우리보다 결코 비싸지 않다. ‘명품증후군’을 이용한 얄팍한 상술이 커피에 맛없는 거품을 끼게 한 건 아닌지 따져볼 일이다.
고대훈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