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분수대

커피값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5면

커피 원두(原豆)의 깊은 맛과 향을 제대로 음미하려면 이탈리아식 에스프레소(espresso)가 제격이다. 높은 증기압을 통해 원두 속에 함유돼 있는 부드럽고 향기로운 맛을 추출해 그대로 입속까지 전해준다. 좋은 원두를 사용한 에스프레소는 황금빛 크림의 빛깔과 질감으로 금방 알 수 있다. 카푸치노·라테 등 종류가 다양하지만 에스프레소가 기본이다. 아메리카노는 에스프레소에다 물을 탄 커피일 뿐이다. 인스턴트 커피에 길들여진 미국인들에게 이탈리아식 커피문화를 전달한 게 1980년대 스타벅스였다. 스타벅스는 밀라노의 카페를 모델로 삼아 출발했다.

 커피라고 다 같은 게 아니다. 포도주처럼 생산지에 따라 가격과 맛이 천차만별이다. 커피 품종은 전 세계 생산량의 75%를 차지하는 아라비카(Arabica)와 한 등급 아래의 로부스타(Robusta)로 나뉜다. 최상급의 자메이카 블루마운틴부터 하와이 코나, 콜롬비아 마일드, 과테말라·예멘·에티오피아 등 비(非)콜롬비아 마일드 아라비카, 브라질 아라비카, 자바 등의 로부스타 순으로 가격이 매겨진다. 전 세계에서 1% 정도만 생산되는 블루마운틴은 귀하고 가격도 훨씬 비싸다. 어떤 커피를 쓰느냐에 따라 값과 맛이 달라진다는 뜻이다.

 한국은 이젠 커피 대국이다. 아관파천(俄館播遷,1896년) 때 고종 황제가 피신한 러시아 공사관에서 처음으로 맛본 커피는 지난해 4억2000만 달러어치가 들어왔다. 사상 최대다. 3700만여 명의 20세 이상 성인이 한 해 312잔(한 잔=커피 10g)씩 마신 것에 해당한다. 며칠 전 관세청은 커피 10g의 원두 수입 가격이 123원이라고 공개했다. 커피전문점에서 아메리카노 한 잔 가격이 3000원대라면 20배가 넘는 이윤이 붙는 셈이다. 임대료·가공비·인건비를 감안하고 가격 대비 맛을 보자면 소비자가 ‘봉’이 된 느낌이다. 원액을 마시는 에스프레소는 그 진실을 알고 있다.

 국내에선 자판기 커피, 다방 커피로 불리는 인스턴트 커피, 원두 커피 등 기호가 다양한 데다 토종과 외국 브랜드가 ‘커피전쟁’을 벌이고 있다. 경쟁이 치열해지면 가격이 떨어지는 게 시장논리인데 현실은 거꾸로다. 유럽에서 서서 마실 때 에스프레소 한 잔 가격은 대개 1유로(약 1500원) 안팎이다. 미국에서 커피를 마셔도 우리보다 결코 비싸지 않다. ‘명품증후군’을 이용한 얄팍한 상술이 커피에 맛없는 거품을 끼게 한 건 아닌지 따져볼 일이다.

고대훈 논설위원

▶ [분수대] 더 보기
▶ [한·영 대역]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