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취재일기

2007년 저축은행 규제안을 면박 준 의원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경제 08면

나현철
경제부문 기자

2007년 10월 국회에 저축은행법 개정안이 제출됐다. 저축은행의 동일 업종 대출 비율을 제한하는 내용이 핵심이었다.

 배경은 이랬다. 금융당국은 1년여 전인 2006년 6월 이른바 ‘8·8클럽’에 대한 대출 제한을 풀어줬다. 국제결제은행(BIS) 자기자본 비율 8% 이상, 부실 여신 비율 8% 미만인 ‘우량’ 저축은행이 한 사업자에게 80억원까지만 빌려줄 수 있다는 규정을 없앤 것이다. 고금리로 유치한 돈을 굴릴 곳이 없던 저축은행들로선 호재였다. 마침 불어닥친 부동산 개발 열풍에 편승해 많게는 1조5000억원을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로 내줬다. 부실화 가능성을 감지한 당국은 응급대책을 마련하고자 했다. 개정안에 ‘동일 업종 한도’를 규정해 ‘동일인 한도’ 제한과 비슷한 효과를 기대하자는 거였다. “행정지도를 통해 PF대출을 전체의 30%로 묶으려 했지만 저축은행들이 ‘법적 근거’를 대라며 반발해 우회수단을 마련한 것”(금융당국 관계자)이라고 한다.

 하지만 의원들은 관심이 없었다. 금융위기 이전, 규제 완화가 능사로 받아들여지던 시절이었다. 일부 의원은 대놓고 “민간이 알아서 하게 놔두지 왜 관치를 하려 드느냐”고 면박을 주기도 했다. 결국 이 법안은 17대 국회가 끝난 2008년 5월까지 국회에서 잠자다 자동 폐기됐다. 대주주에 대한 이익 제공 금지, 임원의 자격요건 강화 등 저축은행 경영을 개선하기 위한 다른 방안도 함께 묻혔다. 이런 내용이 포함된 개정안이 다시 제출돼 국회를 통과한 건 저축은행 부실이 곪을 대로 곪은 2010년 2월이 되어서였다.

 요즘 금융당국이 ‘동네북’이다. 저축은행 예금자들의 분노와 정치권의 질타를 받아내느라 쩔쩔 맨다. 저축은행 8곳의 영업정지로 소중하게 모아둔 돈의 발이 묶인 예금자가 화를 내는 건 당연하다. 정치권이 ‘정책실패’와 ‘늑장대응’을 문제 삼는 것도 이해가 된다. 하지만 호미로 막을 일을 가래로 막게 된 데엔 정치권도 책임이 있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가 7일 저축은행 부실채권을 매입하기 위한 5조원 규모의 구조조정기금 보증 동의안을 의결했지만 이제 시작일 뿐이다. 예보 공동계정이든 공적자금이든, 여야가 머리를 맞대고 저축은행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방안을 찾아야 할 때다.

나현철 경제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