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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현의 전쟁사로 본 투자전략] 경계에 실패한 지휘관 용서할 수 없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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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2면

‘전투에 실패한 지휘관은 용서해도 경계에 실패한 지휘관은 용서할 수 없다’는 말이 있다. 군기가 엄격했던 고대 로마군단에서 경계를 소홀히 한 병사는 전우들이 돌팔매질로 처형했다. 그만큼 ‘경계의 실패’는 자신을 포함한 모든 전우를 위험에 빠뜨리는 중대한 잘못이다. 어떤 군대든 엄한 처벌을 가하는 이유다. 특히 지휘관의 판단을 혼란스럽게 하는 무책임한 정보는 ‘경계의 실패’를 초래해 패전의 원인이 된다. 회복하기 어려운 병력과 장비의 손실을 낳기 때문이다.

 1944년 12월 프랑스와 독일의 국경지대에 주둔했던 미군 지휘관들은 독일군에 대한 잘못된 정보를 전적으로 믿었다. 전면의 독일군이 병력과 화기가 매우 부족한 2선급 전력이므로 미국에 대한 선제 공격은 엄두도 내지 못할 것이란 허위 정보였다. 이러한 허위 정보를 믿다 보니 경계활동은 느슨해질 수밖에 없었다. 막상 최정예 독일군 기갑사단의 탱크가 코앞에 나타나자 아무런 준비가 없었던 미군의 방어선은 급속히 붕괴됐다. 영화의 소재로도 등장한 ‘발지전투’ 얘기다.

 주식 투자자는 종목을 매수한 뒤 단기적으로 주가가 오르지 않는 경우 ‘보초를 선다’고 표현한다. 코스피지수가 급락해 가격이 많이 떨어진 우량 종목에 대한 저가 분할 매수를 권하면 대부분의 고객은 “괜히 성급하게 매수해 보초 서기 싫다”며 투자를 꺼리는 경우가 많다. 특히 시장이 급락할 때는 ‘당분간 주식시장이 상승할 일은 없다’는 비관론자의 주장이 제법 설득력 있게 들리기 때문에 고객들은 더더욱 매수 결심을 하기가 쉽지 않게 마련이다.

 만약 전쟁에 나선 지휘관이 “지금까지 집계된 정보를 분석하면 적이 나타날 이유가 없는데 쓸데없이 부하들을 고생시켜 경계 서게 해야 하는가”라고 묻는다면 그 사람의 소속 부대는 ‘볼 장 다 봤다’고 말할 수 있다. 투자의 세계도 마찬가지다. “언론이나 시장 전문가의 분석대로면 당장 주가가 올라가지 않을 텐데 왜 지금부터 저가 매수에 나서느냐”고 묻는 투자자라면 경계를 소홀히 하는 지휘관과 다를 바 없다.

 현명한 지휘관이라면 전투가 소강국면에 들어서도 병력의 상당 부분은 반드시 ‘경계임무’에 투입한다. 자산관리자들이 주식시장이 일시적인 침체국면에 진입하더라도 전체 금융자산 가운데 주식형 자산의 비중을 최소 30% 이상 유지할 것을 권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매달 일정액을 불입하는 적립식 펀드도 병력의 일정 부분을 경계에 투입하는 전투 원칙에 따른 것이다. 지금은 당장 큰 결실이 없더라도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시장이 흘러갈 때 기회비용을 최소화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 놓기 때문이다. 투자의 세계에서 ‘다 팔고 쉬어라’라는 말은 ‘경계할 필요가 없으니 잠이나 자라’는 말과 다를 바 없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김도현 삼성증권 프리미엄상담1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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