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목의 꽃’ 다리 기술 100% 독립 선언 … 카타르·베트남 교량 수주 나섰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경제 02면

바다에 긴 다리를 놓기 위해서는 풍부한 경험은 물론 세계적 수준의 기술력이 뒷받침돼야 한다. 그 때문에 해양 장대교량을 온전히 시공할 수 있는 건설업체가 많지 않다. 지난해 12월 개통한 거가대교는 100% 국내 기술로 완공했고, 건설 과정에서 국제특허를 3건 출원했다. [중앙포토]


바다에 놓는 다리 기술은 ‘토목건설의 꽃’으로 불린다. 해일과 지진에 견뎌야 하고 큰 배가 지날 수 있도록 교각 사이가 넓어야 한다. 당연히 고도의 기술력이 요구된다. 요즘엔 미적 요소를 갖춰 관광상품의 기능까지 한다. 다리 한 개를 놓는 데 보통 1조원 이상이 들어간다. 지금까지는 미국이나 일본 등 선진 건설업체들의 독무대였다. 하지만 최근 들어 국내 업체들의 기술력이 세계 수준에 이르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100% 기술 자립도를 이루고 해외의 해양특수교량 시장 진출에 나선 것이다. 2000년 서해대교 완공 이후 10여 년 만에 갖춰진 경쟁력이다.

지난해 말 부산 거가대교 준공식 후 만난 대우건설의 서종욱 사장은 “토목의 꽃인 해양특수교량(바다에 놓는 긴 다리) 기술을 100% 자립한 것에 의미가 있다”며 “2000년 이후 대여섯 건의 바다 다리를 놓으면서 쌓은 기술력이 이제 선진국 수준에 이르렀다”고 자신했다.

 거센 바닷물 속에 교각(다리를 받치는 기둥)을 세우는 일, 교각 위에 상판을 얹어 도로를 만드는 일, 상판을 케이블로 끌어당겨 균형을 유지하는 작업. 이런 공정을 유기적이고 정밀하게 결합함으로써 거대한 다리가 놓여진다. 그래서 바다에 놓는 다리 기술을 토목기술의 집합체라고도 한다.

 서 사장은 “10여 년에 걸쳐 확보한 기술력이 최근 완공한 거가대교나 내년 개통할 이순신대교 등에 녹아 있다”며 “이제는 이런 기술·시공력으로 해외에 나가는 게 순서”라고 말했다. 실제로 대우건설은 최근 카타르에 침매(沈埋·바다 밑 터널) 공법을 적용한 특수교량 건설을 제안했다. 거가대교에서 쌓은 기술력이라면 해외에서도 충분히 먹힐 수 있다는 판단이다. 그런가 하면 이순신대교를 짓고 있는 대림산업은 베트남 밤콩교량과 까우란교량 수주에 뛰어들었다. 대림산업 윤태섭 상무는 “아직 장대 특수교량 수출이 초기단계지만 기술에 대한 확신이 섰다”고 말했다.

◆세계 정상급에 오른 기술력=해양특수교량은 컨테이너선 등 대형 선박이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어야 한다. 그러려면 당연히 높아야 하고, 교각이 없거나 교각이 있더라도 사이가 넓어야 한다. 게다가 파도와 바람이 강한 바다 위에서 공사해야 하므로 고도의 기술력과 풍부한 경험이 뒷받침돼야 한다.

 그래서 해양특수교량 분야는 ‘토목건설의 꽃’으로 불린다. 그런데 국내에는 이런 기술과 시공 경험을 갖춘 업체가 없어 그동안 비싼 돈을 주고 선진 업체들의 장비와 인력을 빌려 썼다. 예컨대 국내 최초의 현수교인 남해대교(1973년 완공)는 일본 업체가 자국에서 장비와 인력을 직접 가져다 만들었다. 영종대교(2000년)·광안대교(2003년) 등 이후 완공된 현수교는 국내 업체가 시공에 참여했지만, 시공의 핵심인 케이블 제작과 설치 공사는 일본 업체의 장비와 손을 빌려야 했다. 해양특수교량 가운데 비교적 쉬운 분야로 꼽히는 사장교도 마찬가지다. 최초의 사장교인 진도대교(1984년)는 물론 이후 들어선 크고 작은 사장교 역시 외국 업체의 손을 빌려야 했다.

 하지만 이제 상황이 바뀌었다. 서해대교(2000년)·인천대교(2009년)·거가대교(2010년)·이순신대교(공사 중) 등 규모가 큰 특수교량을 건설하면서 국내 업체들의 기술력이 세계적 수준으로 올라선 것이다. 완공되면 세계에서 넷째로 긴 현수교가 되는 이순신대교는 순수 국내 인력·장비만으로 만들고 있다. 주경간장이 800m로 사장교로는 세계에서 다섯 번째로 긴 인천대교 역시 국내 기술로 완공했다. 삼성건설 장일환 토목기술실장은 “길이가 3분의 1인 서해대교는 공기가 72개월이었으나 인천대교를 만드는 데는 52개월밖에 안 걸렸다”며 “기술력이 뒷받침됐기 때문에 공기를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었다”고 말했다.

 대우건설이 시공한 거가대교는 종류가 다른 다리가 두 개 놓였다. 바다 위를 지나는 다리(거가대교)와 바다 밑을 통과하는 다리(가덕해저터널)다. 가덕해저터널은 세계에서 가장 긴 침매터널인데 역시 100% 국내 기술로 완공했다. 대우건설은 특히 이 터널을 건설하는 과정에서 자체 개발한 장비 등으로 국제특허를 3건 출원했다. 대우건설 관계자는 “공사 중 개발해 국제특허를 출원한 EPS(콘크리트 터널을 정밀하게 내려보낼 수 있는 장비)에 네덜란드·일본 업체들의 관심이 크다”고 말했다.

◆점점 커지는 시장=현수교 등 해양특수교량은 총공사비가 1조원을 웃돈다. 대림산업·대우건설 등이 많은 돈을 들여 해양특수교량 기술을 개발하고 수출하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시장도 계속 커지고 있다. 섬이나 이웃 나라를 이어 왕래를 편리하게 하고, 효율적인 물류시스템을 갖추기 위해 동남아시아 등 개발도상국에서 발주가 꾸준히 나온다.

 국내도 마찬가지다. 대한건설협회에 따르면 1990년대 우리나라의 해양특수교량 시장 규모는 8000억원 정도에 그쳤다. 그러나 2000년 이후 서남해안 도서를 연결하는 연륙교와 연도교 건설이 증가하면서 10년간 4조5000억원 규모로 성장했다. 업계는 2015년부터 10년간 남해와 서해안을 중심으로 10조원대에 달하는 해양특수교량 시장이 형성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관광상품화로 지역경제 활성화도 기대할 수 있다. 현수교나 사장교의 특성상 외형이 화려해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금문교(현수교)처럼 그 자체가 관광상품이 되기도 한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이순신대교 건설에 따른 직접적인 경제효과가 생산유발 1조8734억원, 고용창출 2만6192명에 이르는 것으로 분석했다. 해발 272m의 이순신대교 주탑 꼭대기에 전망대가 설치되면 관광객이 많이 몰릴 것으로 전남도는 기대하고 있다.

 거가대교의 경우 부산~거제 간 거리 단축(140㎞→60㎞)에 따른 유류비용 절감 등 연간 4000억원 이상의 경제적 효과가 기대된다.

황정일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