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브룩 시민들 “카다피 공포정치 지긋지긋”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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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6일 리비아의 중부도시 빈 자와드에서 시민군들이 달리는 옆으로 카다피군이 쏜 총탄의 파편이 튀고 있다. 빈 자와드는 시민군이 차지한 지 하루만에 정부군에 탈환됐다. [빈 자와드 로이터=연합뉴스]


7일 오후(현지시간) 리비아 동부의 항구도시 토브룩은 평온했다. 이집트 국경을 지나 황량한 사막을 서쪽으로 200㎞ 달려 도착했다.

 시민군 본거지인 제2도시 벵가지로 향하는 도중 들른 이곳은 내전 상황이란 걸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평화로웠다. 무아마르 카다피(Muammar Qaddafi) 측의 리비아 국영TV는 6일 “그간 반군(시민군) 수중에 있던 토브룩을 수복했다”고 보도했다. 시민군 측은 곧바로 “토브룩은 해방된 이후 한 번도 카다피 측에 다시 넘어간 적이 없다”고 반박했다.

 현장에서 확인해보니 시민군의 주장대로였다. 인구 35만의 이 도시 중심부 휴하다 광장에는 “카다피 통치 지긋지긋하다”며 그를 비난하는 낙서와 반카다피 세력의 상징으로 떠오른 왕정 시절 국기가 보였다. 기자를 본 현지인들은 손가락을 머리 옆에서 빙빙 돌리며 “(카다피는) 미쳤다. 끝났다”고 말했다.


 경찰서와 법원 등 공공건물 일부에 불탄 흔적이 보였지만 상점은 모두 문을 열고 있었다. 토브룩은 현재 변호사와 부족대표 등 5명이 운영하는 시민위원회가 정부 역할을 하고 있다. 이날 시민위원회가 처음으로 외국과 계약한 원유 수출 선박이 해외에서 입항했다. 주민 아드리스 카미스(50·전기수리공)는 “가정집 약탈이 최근 들어 단 한 건밖에 없을 정도로 시민위원회가 도시를 잘 관리하고 있다”며 “카다피가 죽거나 쫓겨날 때까지 투쟁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상언 기자

 토브룩은 원유 수출 터미널을 갖춘 전략적 요충지다. 리비아가 보유한 6곳의 주요 원유 수출 터미널 가운데 5번째 규모로 하루 5만1000배럴을 처리할 수 있다. 월스트리트 저널(WSJ)은 현지 아라비안걸프오일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토브룩은 원유 수출을 재개할 정도로 일상을 되찾았다”며 “1일 원유 70만 배럴을 실은 유조선이 출발했다”고 전했다. 토브룩에서 서쪽으로 500㎞ 떨어진 벵가지에는 시민군의 과도 정부인 ‘리비아 국가위원회’가 구성돼 있었다. 벵가지의 대우건설 공민식 현장소장은 “이곳도 토브룩처럼 현재는 교전 상황이 없고 치안도 어느 정도 안정돼 있다”고 말했다.

 리비아 진입은 이집트 국경도시 엘살름을 통해 이뤄졌다. 이곳에서 서쪽으로 약 12㎞ 떨어진 리비아 국경통제소 인근에서는 간간이 총성이 들렸다. “교전이냐”고 묻자 이집트 국경통제소 관리인 아흐마르 살라는 “엘살름의 이집트 10대들이 몰래 도둑질하러 들어올까 봐 리비아 쪽에서 위협 사격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내전으로 국경 통제가 제대로 되지 않고 있는 것이다.

 리비아 측 통제소는 완전히 폐허로 변해 있었고 시민군 몇 명이 입국하는 기자의 여권만 확인했을 뿐이다. 주변에는 리비아로 들어가는 사람을 태우려는 택시 수십 대가 늘어서 있었다. 택시를 타고 토브룩까지 이동하는 동안 2곳의 검문소를 거쳤지만 역시 시민군들이 장악하고 있었다. 길가에 보이는 집들은 모두 지붕과 대문이 녹색(‘그린국가’를 내세운 카다피의 상징색)이어서 리비아에 들어왔다는 사실을 실감케 했다.

이상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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