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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불단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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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나쁜 일은 몰려온다고 한다. 4자성어로 화불단행(禍不單行)이다. 영어에도 같은 표현이 있다. “Misfortunes never come single.” 그 반대인 복불단행(福不單行)이란 말은 없다. 기쁜 일도 잇따라 올 때가 있지만 이런 말은 굳이 생겨날 필요가 없었을 것 같다. 좋은 일은 그 자체로 좋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쁜 일이 연달아 터진 경우 그 사람을 위로하기 위해서도 어떤 관용화된 문구가 필요하지 않았을까. 남편을 여의고 바로 자식까지 잃은 아낙에게 “정말 안됐지만 살다 보면 불행이란 그렇게 겹쳐 오나 봐요. 오죽하면 화불단행이란 말까지 생겨났겠어요”라고 위로할 수 있게 말이다.

 불운의 연속을 의미하는 용어로는 ‘머피의 법칙(Murphy’s law)도 있다. 하는 일마다 꼬이는 상황을 뜻한다. 미국 에드워드 공군기지에 근무하던 머피 대위가 1949년 처음 사용한 말이다. 잇단 비극의 압권은 ‘로미오와 줄리엣’의 마지막 장면이다. 가사(假死) 상태로 납골당에 안치된 줄리엣이 진짜 죽은 것으로 알고 로미오가 음독 자살하고, 깨어난 줄리엣이 연인의 주검을 보고 단검으로 자살하는 것으로 끝난다.

 고(故) 김대중 대통령 자서전에도 화불단행이란 단어가 나온다. 1958년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했으나 자유당의 횡포로 후보등록이 취소됐다. 경쟁자가 당선됐으나 법원의 선거무효 판정에 따라 보궐선거에 다시 출마했으나 낙선하고, 이어 아내 차용애가 세상을 떠난 것을 두고 하는 말이다.

 2008년 7월 한나라당 박희태 대표는 방송토론회에서 “현 시국을 어떻게 보느냐”는 질문에 “화불단행의 형국”이라고 답했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 문제로 엄청난 촛불시위 사태를 겪은 직후에 금강산 여성관광객 피살 사건과 일본의 독도 도발 행위가 잇따라 터졌던 것이다.

 요즘은 색다른 화불단행의 국면이다. 진앙지는 종교다. 이명박 대통령 취임 후 3년 동안은 불교계와의 불화(不和)로 삐걱대더니 최근엔 개신교발 화(禍)가 이어지고 있다. 정부가 경제논리로 이슬람채권법(수쿠크법)을 추진하고 있는데, 한 원로목사가 하야(下野) 운운하며 대통령을 겁먹게 했다. 며칠 뒤엔 역시 지도자급 목사가 공개 행사에서 대통령에게 무릎을 꿇은 상태로 기도하게 함으로써 생각이 모자랐다는 비판을 받았다. ‘장로 대통령’이라 자칫 방심하면 유사한 화가 또 올지 모른다.

심상복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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