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무성·박지원 지휘 ‘청목회면죄부법’ 급브레이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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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무성 한나라당 원내대표(오른쪽)와 박지원 민주당 원내대표가 7일 오전 국회에서 만나 주요 현안에 대해 대화를 나누고 있다. [뉴시스]


전국청원경찰친목협의회(청목회) 로비 의혹 사건과 관련해 기소된 여야 의원 6명에게 면죄부를 주는 내용의 정치자금법(정자법) 개정안(관계기사 18면)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기 어렵게 됐다. 국회 행정안전위가 4일 이 법안을 기습적으로 가결한 뒤 “불법을 저지른 동료 감싸기가 도를 넘었다”는 등의 비판 여론이 들끓자 여야 지도부는 7일 3월 국회에서 법안을 처리한다는 입장에서 후퇴했다.

이귀남 법무

 한나라당 안상수 대표는 7일 최고위원회의에서 “정자법 개정안에 대해 국민 여론이 비등하고 있다”며 “법사위에서 국민의 여론과 법리상 문제점 등을 철저하게 재검토해 신중히 처리해야 한다”고 말했다. 행안위의 법안 처리를 사실상 지휘한 한나라당 김무성 원내대표는 “여론의 흐름이 중요한 문제이고 위헌적 요소는 없는지 검토해 봐야 한다”며 “이런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에 이번 임시국회에선 처리하기 힘들 것 같다”고 했다. 그는 6일엔 “3월 국회에서 처리하려고 한다”고 말했었다. 민주당 박지원 원내대표는 “국회 법사위에서 토론했으면 하지만 (법사위의) 여야 간사 간 합의가 이뤄지지 않아 현재로선 예측이 쉽지 않다”고 했다.

 여야 지도부의 생각이 달라진 건 여론이 급속히 나빠진 데다 정치권에서도 “그런 법안이 처리되면 안 된다”는 목소리가 나왔기 때문이다. 행안위에 이어 법안을 심사할 법사위에선 법안 처리에 반대하거나 유보적인 의원들이 적지 않다. 법사위원장인 민주당 우윤근 의원은 “의원들의 반대가 있으면 무리하게 통과시키기 어렵다”고 말했다. 법사위 한나라당 간사인 주성영 의원은 “법안은 폐기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여야의 공식 회의에서도 비판론이 터져나왔다. 한나라당 홍준표 최고위원은 “의원 면소(免訴) 관련 법안은 해방 이후에 전례가 없다”며 “의원 구하기는 재판을 통해서 해야지 입법권 남용의 형식을 빌리는 것은 옳지 않다”고 말했다. 민주당 천정배 최고위원은 “정자법 개정안이 재판을 받고 있는 의원들에게 면소 판결을 받게 해주기 위한 것이라면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입법권의 남용”이라고 지적했다.

 국회에서 법안을 처리하면 이명박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 것도 여야 지도부에겐 부담으로 작용했다. 따라서 법안은 당분간 법사위에 방치된 상태로 있을 것이라는 게 국회 관계자들의 관측이다. 법안을 기습 처리했던 행안위에서 법안을 재심의해야 한다는 얘기도 나오지만 안경률 행안위원장은 부정적이다. 안 위원장은 “이제 정자법 개정안은 행안위의 손을 떠났다”며 “양당 원내대표가 합의해서 진행된 문제인 만큼 법사위원장과 원내 지도부들이 판단할 일”이라고 밝혔다.

 한 국회 관계자는 “여야가 청목회 사건에 연루된 의원들에게 면죄부를 주는 내용을 빼고, 정치자금 조달·사용의 투명성을 강화하는 규정을 넣는 등 법안을 수정하지 않으면 국회에서 처리되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7일 열린 국회 상임위에서도 문제의 정자법 개정안은 관심의 초점이 됐다.

 법사위에서 주성영 의원은 “정자법 개정안은 기존 단체의 보유자금(공금)이 아니라 새로 단체가 구성원에게 모금해 기부한 경우는 처벌이 안 된다는 것인데 이것이 청목회 사건이라도 처벌되지 않는 경우다, 동의하느냐”고 묻자, 이귀남 법무부 장관은 “그렇게 된다”고 답했다. 법무부 장관이 ‘청목회 연루 의원 면죄부 법안’이란 점을 인정한 셈이다.

 행안위에선 한나라당 이인기 의원이 “국회 정치개혁특위에서 정자법 개정안을 심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지난해 청목회 사건으로 검찰조사를 받았고, 압수수색도 당했었다. 이 의원은 “법원에서는 이해 당사자들이 재판의 주체에서 빠지는데 행안위 역시 스스로 법안 심의를 기피하는 게 옳다”며 “(법 개정은) 헌법이 정한 죄형법정주의 정신에 어긋난다”고 지적했다. “이는(개정안 기습처리) 입법권 남용으로 국민적인 저항에 부딪힐 것”이라는 말도 했다.

신용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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