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에게 듣는다] 천즈우(陳志武) 미 예일대 교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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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식 모델은 없다
천즈우 지음
박혜린 외 옮김, 메디치
344쪽, 1만8000원

베이징 발(發) ‘재스민 혁명’이 중국 사회 말단을 흔들고 있다. 인터넷에서는 시위 장소가 공고되고, 당국은 경찰을 동원해 막는 ‘창과 방패의 게임’이 이어진다. 방패가 우세해 보인다. 그러나 당국 역시 당황한 기색이 역력하다. 민주화를 내건 ‘재스민 혁명’의 생명력은 중국에서 과연 어느 정도로 지속될 것인가.

 천즈우(陳志武·진지무·49) 예일대 교수. 그는 ‘민주화 없이 중국 경제의 발전은 없다’고 주장하는 자유주의 성향의 경제학자다. 그는 이번주 국내에서 출판된 『중국식 모델은 없다』 에서 중국의 ‘정치체제 개혁’을 역설했다. “중국은 미국을 리더로 삼아야 한다”라는 말까지 했다. 미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그와 전화·이메일 인터뷰를 했다.


중국식 모델은 없다』의 저자 천즈우 미 예일대 교수는 “중국이 미국적 가치와 이념을 받아들여야만 서비스산업을 중국 경제발전의 새로운 동력으로 삼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 ImagineChina

-중국 당국이 집회를 원천적으로 차단하고 있다. 어느 정도 효과가 있겠는가?

 “지금과 같은 방법으로는 시위를 잠재울 수 없다. 부정부패·빈부격차 등 정치·경제 제도가 낳은 구조적인 문제가 ‘재스민 혁명’ 근저에 깔려있기 때문이다. 정부 권력은 무소불위, 견제를 받지 않는다. 부정부패의 토양이다. 국유 체제 하에서 사회적 부(富)는 국가가 독점한다. 민간의 부는 줄어들 수밖에 없다. 정치개혁·헌정개혁·소유제 개혁이 없다면 시위는 그치지 않을 것이다.”

-천 교수는 경제 발전을 위해 ‘민주화’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재스민 혁명’은 경제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는가?

 “단기적인 영향은 크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변화의 시작일 수 있다. 중국인들은 아직 시위에 익숙치 않지만 곧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이는 날이 올 것이다. 중국인들은 미국·한국 등을 여행하며 여러 사안을 보고, 느끼고 있다. 이 같은 사고가 중국을 바꿀 것이다. 중국 정부에는 커다란 도전이 아닐 수 없다.”

-중국 정부도 경제 정책을 ‘국부(國富)’ 위주에서 민간이 부자가 되는 ‘민부(民富)’로 전환한다고 하지 않는가?

 “두 가지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 우선 국가가 갖고 있는 잉여 국유자산과 국유기업 주식을 민간에 나눠줘야 한다. 둘째는 법 개정을 통한 조세제도 개혁이다. 정부는 규제를 받지 않기에 세금을 많이 걷는다. 성장할 수록 민간은 더 가난해지는 구조다. 이 두 조건을 충족시키지 않는다면 민부는 공염불에 불과할 것이다. 핵심은 국가가 경제 독점 체제를 포기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중국은 미국을 리더로 삼아야 한다’는 책의 주장은 너무 멀리 나간 것 아닌가?

 “중국 경제는 과거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고, 미래에도 미국이 주도하는 세계 질서의 ‘혜택’을 받을 것이다. 미국이 구축한 자유무역 질서는 국가 간 거래 비용을 크게 낮췄다. 중국의 성장은 그 체제에 편승했기에 가능했다. 중국이 미국의 소비시장 없이 성장할 수 있겠는가? 이 질서를 부정하는 것은 ‘돌덩이로 자신의 발을 묶는 것’과 같다. 미국 주도의 서방 자유경제 체제를 발전시키는 것, 그게 중국의 정책이어야 한다.”

-중국 모델이 서구 자유 자본주의를 대체할 수도 있다는 시각이 제기되기도 하는데.

 “불가능한 일이다. 중국 모델이라는 게 뭔가? 한국 등 아시아 국가가 경험했던 ‘정부 주도의 성장 모델’일 뿐이다. 그 모델은 1997년 아시아 외환위기로 깨졌다. 1930, 1940년대 맹위를 떨쳤던 소련식 모델과 비슷하지만, 그 역시 실패했다. 중국 모델이 그 전철을 밟지 않으리라 누가 보장하겠는가.”

-책에서 ‘중국의 살 길은 금융시장 개방 뿐’이라고 강조했다. 미국 금융업계의 주장과 비슷하다. 지금처럼 허약한 체제하에서 금융시장 개방은 핫머니 유입 등 부작용만 키울 것이라는 주장이 여전하다.

 “기우일 뿐이다. 제조업 시장을 개방할 때도 ‘개방하면 서방에 시장을 다 빼앗길 것’이라고 했다.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중국의 기업경쟁력이 높아지고, 기술수준이 높아졌을 뿐이다. 금융업도 마찬가지다. 중국은 시장개방을 통해 금융을 배우고, 자본시장 운용 기술 수준을 높여야 한다. 이를 위해서라도 재산권 보호를 위한 법적 틀을 마련해야 하고, 민주 체제를 갖춰야 하는 것이다.”

한우덕 기자

◆천즈우(陳志武)=중국의 대표적인 자유주의 성향 경제학자로 주로 미국에서 활동하고 있다. 금융제도·자본시장·신흥시장 발전 등의 분야를 연구하고 있다. 예일대 종신 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중국 칭화(淸華)대학 초빙 교수로도 활동 중이다. 1962년 후난(湖南)성 차링(茶陵)출생. 1986년 중국 국방과기대학에서 석사(컴퓨터 전공)학위를 받은 뒤 미국으로 유학, 예일대학에서 4년만에 금융학 박사 학위를 땄다. 국내 소개된 저서로 『자본의 전략』이 있다.

중국식 모델

있다 vs 없다

뜨거운 학계

‘중국 모델(China Model)’은 존재하는가? 중국 전문가들 앞에 던져진 화두다. 중국 특색의 발전 모델이 있느냐의 여부가 핵심. 2004년 영국 언론인 조수아 쿠퍼 라모가 제기한 ‘베이징 컨센서스(Beijing Consensus)’가 발단이었다. 그는 중국 경제 발전의 특징을 ‘국가 주도의 점진적이고 단계적인 시장화 개혁’으로 정의하고 이를 ‘베이징 컨센서스’라고 이름 붙였다. 자유주의 시장경제를 핵심으로 하는 ‘워싱턴 컨센서스(Washington Consensus)’에 대립되는 개념이다.

 천즈우 예일대 교수는 “베이징 컨센서스는 성립조차 되지 않는 개념”이라고 주장한다. 그는 “중국의 성장은 서방 세계가 지난 200여 년 동안 쌓아온 자유주의 시장경제 시스템에 뛰어든 결과일 뿐”이라고 강조한다. 오히려 ‘워싱턴 컨센서스’의 혜택을 받았다는 얘기다.

 최근 『중국이 세계를 지배하면』(부키)이라는 책을 펴낸 마틴 자크는 외국인 임에도 ‘중국 모델’을 강조한다.

그는 “중국의 산업화가 서구의 경험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추진되고 있다”며 “세계는 중국 식 성장 패러다임을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중국의 문화와 전통이 중국만의 독특한 발전 모델을 만들어냈다는 설명이다.

 『중국 모델론』(부키)을 펴낸 전성흥 서강대 교수는 “중국 모델을 하나의 정형화된 틀로 간주하기에는 여전히 무리가 따른다”면서도 “중국의 성장 전략과 과정 등에는 기존 발전 이론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독특한 특징이 분명 존재한다”고 강조했다. ‘중국 모델’에 대한 담론이 경제학 분야 인식의 지평을 넓혔다는 얘기다.

한우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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