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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

‘재스민 혁명’ 과 어부 송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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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최진욱
통일연구원
북한연구센터 소장

가뜩이나 얼어붙은 남북관계에 북한 어부 송환 문제가 하나 추가됐다. 2월 초 서해 북방한계선을 넘어 표류한 북한 어부 31명 가운데 귀순의사를 밝힌 4명을 송환 대상에서 제외하자 북한이 강력하게 반발하고 나선 것이다. 북한은 “반인륜적 행위” 운운하며 전원 송환이 아니라는 이유로 나머지 27명의 송환을 거부하고 있다. 남쪽으로 표류한 북한 주민들에 대한 부분 송환의 전례가 없었던 것도 아니다. 그런데도 북한이 “남북관계에 엄중한 후과(결과)”까지 들먹이면서 4명의 어부를 돌려받기 위해 “가능한 수단을 총동원하겠다”니 어리둥절해질 뿐이다.

 북한이 이들 4인의 어부를 각별히 챙기는 데는 몇 가지 의도가 있는 것 같다. 우선 중동의 민주화 혁명으로 예민해진 북한이 어부들의 한국 귀순에 대해 과민반응하는 것이다. 북한은 국경지역의 휴대전화를 단속하고 외국인에게 대여를 금지하는 등 외부소식의 유입을 차단하기 위해 부심하고 있다. 대북전단 살포를 이유로 하는 ‘임진각 조준사격’ 협박 역시 같은 맥락이다. 이번 어부들의 귀순을 방치할 경우 대규모 탈북사태로 이어질 수도 있다는 점에 대해 우려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체제관리 차원에서 심각하게 간주하는 것이다. 북한 정권이 주민들의 동요와 체제 균열에 대해 그만큼 우려한다는 방증이다.

 남북관계의 경색 책임을 남한에 돌리려는 의도도 있다. 지난 1월 미·중 정상회담에서 나온 “남북관계의 개선이 중요하며 진정성 있고 건설적인 남북대화가 필수적”이라는 주문대로 북한은 “할 만큼 했다”는 점을 부각하겠다는 것이다. 어차피 남한으로부터 큰 기대를 할 수 없다면 중국에 의존할 수밖에 없을 것이며, 남북관계의 개선과 무관하게 중국의 대북 지원 확대를 정당화시키고자 하는 것이다. 실제로 지난해 10월 이후 북·중 교역은 전년 대비 2배 이상 급증했다.

 어부 송환 거부 사태는 남북 간 대화국면으로의 전환이 모색되는 현재 상황과 연관될 수 있어 주목된다. 우여곡절 끝에 지난달 초 개최된 군사실무회담은 연평도와 천안함에 대한 사과 문제로 결렬됐다. 북한은 본회담에만 가면 모든 것이 해결될 것이라고 했으나 사과할 의사는 애초부터 없었다. 그러나 남북대화 없이는 미국과의 대화도, 6자회담도 어렵기 때문에 어차피 남북대화에 다시 나설 수밖에 없다. 따라서 이번 반발은 천안함 사과 요구와 같은 우리의 회담 선결조건 수준을 낮추려는 것이다. 실제로 북한 노동신문은 “남북관계의 후과”를 경고하던 5일에도 이명박 대통령의 3·1절 기념사와 관련해 말이 아닌 행동으로 보여 달라며 “조건 없는 대화”를 요구했다. 

 이번 북한 어부 사태를 계기로 대북정책 추진 방향을 재점검해야 한다. 우선 긴장완화를 위한 대화의 필요성은 있으나, 북한의 도발방지는 일차적으로 한·미 동맹에 기초한 강력한 억지력에 바탕을 두어야 한다. 미국의 식량지원 검토 의사와 한반도 대화 분위기를 북한이 오판해 어부 사태를 과장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우리도 대화를 모색한다면 전열을 재정비하고 만반의 준비를 다해야 한다. 이번 사태와 같이 북한에 공세 빌미를 주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대화의 목표를 분명히 하고 이에 맞는 전략을 수립해야 할 것이다. 보다 중요한 것은 어떤 국면에서도 일사불란하게 움직일 수 있도록 대북정책의 컨트롤 타워와 각 부처 간의 긴밀한 협조체제를 수립하는 일이다. 

 남북대화를 시작하는 것은 어렵지 않지만 결과까지 고려한다면 신중하지 않을 수 없다. 고속도로는 목적지에 갈 수 있는 빠른 방법이지만 일단 들어서면 다음 출구까지는 빠져나갈 수 없다. 도중에 사고나 교통체증이 없는지 미리 철저히 확인해야 할 것이다. 확실하지 않으면 가고 있던 길로 좀 더 가는 것도 방법이다.

최진욱 통일연구원 북한연구센터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