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투기 기술자 솔하임 작품 칠 때 ‘핑’ 소리 나 핑으로 작명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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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8호 14면

핑 퍼터를 써서 우승한 선수에게 선물한 금 도금 퍼터 앞에 선 생전의 솔하임.

컨시드(오케이)를 선물처럼 주고받는 주말 골퍼들은 느끼기 어려울 수도 있다. 그러나 고수들은 퍼트가 가장 힘들다고 한다. 과거에는 훨씬 더 어려웠다. 헤드가 얇은 ‘一자’ 형 블레이드 퍼터로 스트로크하면 공은 구르지 않고 튀거나 미끄러지는 경우가 많았다. 프로들은 예민한 퍼터를 그나마 잘 다뤘지만 아마추어는 그린에서도 큰 고통을 겪었다.

성호준의 골프 진품명품 <3> 퍼터의 개척자 핑(PING)

1953년 미국 뉴욕에서 42세의 초보 골퍼도 애를 먹었다. 그는 자신의 실력이 아니라 퍼터에 화를 냈고 그렇게밖에 만들지 못하는 퍼터 제작자들을 한심하게 여겼다. 그는 직접 쉽게 공을 굴릴 수 있는 퍼터를 만들어내겠다고 생각했다. 그가 ‘골프계의 토머스 에디슨’으로 불리는 카스텐 솔하임(1911~2000)이다. 그는 에디슨이 창업한 회사인 제너럴 일렉트릭(GE)의 기계설계 엔지니어였다. 똑똑하고 손재주가 좋았던 그는 최초의 제트 전투기인 FR-1 파이어볼을 개발하는 프로젝트의 선임 엔지니어로 일하는 등 인정을 받았다.

솔하임은 테두리가 무거운 테니스 라켓을 생각했다. 만약 테니스 라켓이 탁구 라켓처럼 테두리에 무게가 없다면 스트로크를 할 때 공의 충격에 뒤틀릴 것이다. 솔하임은 이 원리를 퍼터에 적용했다. 퍼터 헤드의 양끝인 힐과 토를 무겁게 하고 가운데를 비워 스트로크 때 흔들림을 줄였다.

59년 솔하임은 자신의 집 차고에서 본격적으로 퍼터를 만들었다. 이 퍼터로 스트로크 하면 종처럼 ‘핑’ 소리가 났다. 그래서 퍼터 이름을 핑이라고 불렀다. 59년 미국의 스포츠 주간지 스포츠 일러스트레이티드는 ‘뮤지컬 퍼터’가 탄생했다고 보도했다. 솔하임이 만든 회사의 공식명칭은 카스텐 매뉴팩처링 컴퍼니이지만 핑은 회사의 제품을 아우르는 대표 브랜드가 됐다.

62년 PGA투어에서 존 바넘이 핑 퍼터를 사용해 첫 우승을 차지했다. 솔하임은 고집이 셌다. 제품의 모양은 신경 쓰지 않고 기능성과 실용성만 중시했다. 아직도 핑에는 그런 전통이 남아 있다. 광고도 상품 설명이나 제품 성능 소개가 전부였다. 무료로 달라는 프로의 요청도 거절했다. 좋은 제품은 가격이 비싸더라도 잘 팔릴 것이라 믿었다. 생각대로 되진 않았다.

그는 66년 “사람들이 수퍼스타 아널드 파머 이름을 달았다는 이유만으로 내 퍼터보다 형편없는 퍼터를 더 좋아한다”고 부인에게 불평했다. 그리고 “이 도전에 해답(answer)이 될 만한 것을 만들어야겠다”고 중얼거렸다. 그는 결국 힐-토 밸런스 이론을 집대성한 회심의 역작을 만들어냈다.

부인에게 작명을 부탁했다. “그렇게 원하던 앤서(answer)라고 하세요”라고 했다. 마음에 들지 않았다. 다음 날 다시 부인에게 물었는데 역시 답은 같았다. 이름이 너무 길어 다 넣을 수 없다고 하니 “그럼 w만 빼라”는 답을 들었다. 그는 부인의 아이디어가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다른 이름을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

앤서(anser)는 해답이 됐다. 아널드 파머도 아널드 파머 퍼터를 버리고 앤서 퍼터를 썼다. 앤서는 현대 퍼터의 원형이다. 역사상 가장 많이 팔린 모델이며 이후 나온 대부분의 퍼터는 앤서의 유사품에 불과하다. 디자인만 슬쩍슬쩍 바꾼 것뿐이다.

솔하임은 같은 원리로 아이언도 진화시켰다. 헤드의 테두리를 무겁게 해 주면 안정성이 커져 공을 멀리, 똑바로 칠 수 있겠다는 생각이었다. 두꺼운 헤드 뒤의 가운데 부분을 파서 캐비티(cavity·구멍) 백 아이언을 발명했다. 82년 출시된 핑 아이(EYE)2는 역시 가장 많이 팔린 아이언이다. 솔하임은 주조 클럽, 로브 웨지, 스윙머신 등 수십 가지 발명을 했고 라이각, 샤프트 길이와 거리의 함수 등을 체계화 해 피팅의 개념도 도입했다. 그는 판매용 퍼터를 만들기 시작한 후 8년이 지난 67년에야 GE를 그만뒀다. 그러나 회사에 소홀한 건 아니었다. 그는 GE에서 토끼 귀를 닮은 탈착식의 안테나를 만들어 TV 200만 세트를 파는 업적을 냈다. 그래서 도금된 TV를 받았다.

그는 똑같은 방법으로 선수들에게 보답했다. 핑 퍼터를 써서 우승한 선수에게 우승 날짜와 이름 등을 새긴 도금(메이저대회는 순금) 퍼터 2개를 만들어 하나는 선수에게 주고 하나는 핑 본사에 보관한다. 이렇게 모은 퍼터 수가 2700여 개다. 그는 여자 골프에 많은 지원을 했고 미국과 유럽의 여자 골프 대항전을 만들었다. LPGA투어는 대회 이름을 솔하임컵이라고 지었다. 왜 인기가 적은 여자 골프에 지원하느냐는 질문에 그는 “도움이 필요한 곳에 한다”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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