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 피아노·바이올린 쏠림, 이젠 옛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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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2일 중학교에 입학한 최민군은 “트럼펫으로 바이올린 소리를 내고 싶다”는 꿈을 내보였다. 민첩하고 매끄러운 그의 트럼펫 소리에서 희망을 이룰 조짐이 읽힌다.


최민(13)군은 아홉 살에 트럼펫을 시작했다. 최군의 어머니는 “원래는 바이올린을 가르쳤다. 몇 개월 했는데 아이가 지루해 해서 좀처럼 진도가 나가지 않았다”라고 했다. 트럼펫을 할 때는 달랐다. 처음 잡았을 때 정확한 소리를 냈고 시키지 않아도 연습실에 들어갔다.

 최군은 지난해 말 처음 청중 앞에 나왔다. 피아니스트 겸 작곡가인 박창수씨가 운영하는 ‘하우스 콘서트’였다. 이날 연주곡은 현대 작곡가 아르투니안의 작품이었다. 최군은 예측 불가능한 음정, 빠른 리듬으로 전문 연주가도 힘들어하는 현대 작품을 훌륭하게 소화했다. 박창수씨는 “어린 아이가 잘 하는 느낌이 아니었다. 어른이 한다 가정해도 좋은 연주였다”라고 평가했다.

 최군은 5월 하우스 콘서트의 역대 최연소 연주자로 초청됐다. 지휘자 정명훈씨도 그의 소문을 들었다. “한국에도 어려서부터 금관악기를 잘 다루는 연주자가 생겨 기쁘다”며 서울시립교향악단의 트럼펫 주자에게 지도를 부탁했다.

 정명훈씨의 말처럼 어려서 트럼펫을 부는 경우는 드물다. 잘 부는 아이는 더욱 없었다. 수십 년 동안 ‘영재’ ‘신동’의 타이틀은 피아노·바이올린이 차지했다. 하지만 최근 추세가 바뀌고 있다. 다양한 분야에서 영재가 나타나고 있다. 금호아시아나문화재단은 매년 24개 분야에서 영재를 뽑고 있다. 트럼펫은 1999년 이후 7년 동안 응시자가 없었던 분야다. 지난해 4명이 영재 오디션에 참가했다. 또 대기만성형 스타가 특히 많은 성악, 뒤늦게 시작하는 연주자가 대부분이었던 클래식 기타 부문에도 응시자가 늘어났다.

위쪽부터 클라리넷 연주자 김한, 작곡가 김준현, 기타리스트 김진희.

 이밖에 하프·오보에·리코더 등에도 영재 지원자·선발자가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 금호문화재단 박선희 과장은 “학부모들의 인식이 많이 바뀌었다. 예전엔 ‘필수 악기’라 여겼던 피아노·바이올린 대신 다양한 악기를 성향에 맞게 가르치는 경향이 생겼다”라고 설명했다.

 이런 경향을 바탕으로 몇몇 어린 독주자가 튀어나오고 있다. 김한(15)군은 클라리넷을 시작한 지 3년 반 만에 국제 콩쿠르에 나갔다. 만 32세 이하가 참가하는 베이징 국제 대회에 최연소로 참가해 특별상을 받았다. 기타리스트 김진희(19)양은 지난해 호주에서 열린 국제 콩쿠르에서 우승했다.

 또 작곡가 김준현(17)군은 지난해 말 70분짜리 오페라를 써서 무대에 올렸다. 그가 제출한 악보는 기보법(記譜法) 이 불완전하다. 교육 대신 재능으로 작곡하기 때문이다. 독일 데트몰트 음대는 김군에게 영재학교 입학 허가서를 내줬다. 이처럼 어린 작곡가의 활약도 국내 음악계에선 이례적이다.

 한국예술영재교육원 이영조 원장(작곡가)은 “요즘 영재 선발 오디션을 열면 ‘어릴수록 잘한다’는 생각이 든다. 특히 아이들에게 어렵다고 생각했던 분야에서 벽이 많이 깨지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이런 흐름의 배경은 다양하다. 우선 국내 음악계가 성숙하면서 각종 악기의 전공자(스승)이 늘어났다. 또 청중이 음악을 즐기는 방식이 다각화하면서 다양한 악기들이 조명을 받게 됐다. 이 원장은 “밥과 김치만 있던 밥상에 형형색색 반찬이 급속히 올라오는 꼴”이라고 했다.

김호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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