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우ㆍ현대건설 "제3국 근로자와 생사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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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정일기자]

2일 오후 1시40분(이하 현지시간). 리비아의 미수라타에 그리스 국적의 대형 여객선 1척(니소스 로도스호)이 입항했다.

대우건설이 리비아 건설현장 근로자들을 대피시키기 위해 급히 빌린 배다. 로도스호가 접안하는 순간 항구에 모여 있던 근로자들은 "살았다" "집에 갈 수 있다"며 환호했다.

미수라타에서 배를 탄 이는 모두 499명. 이 중 한국인은 55명 뿐이다. 나머지는 대우건설이 고용한 인도·이집트·말레이시아 등 제3국 근로자들이다. 대우건설은 로도스호 외에 트리폴리와 벵가지에도 각각 여객선 1척 씩을 투입했다.

수십억 들여 배 5척 급파

3척의 배로 빼내 올 대우건설 근로자는 모두 2772명. 이 중 한국인은 150여 명이다. 이집트 근로자 모하메드(38)씨는 “회사(대우건설)가 우리까지 챙겨줄 줄은 몰랐다"며 "한국건설이 강국 지위에 그냥 오른 게 아니다"고 눈물을 글썽거렸다.

대우건설은 3국 근로자들의 각자의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항공권도 마련해줬다. 항공료와 선박 운임·임대료를 합치면 60억원 넘는 돈이 들었다. 대우건설 서종욱 사장은 “지금은 돈이 문제가 아니라 근로자들의 안전이 우선”이라고 말했다.

대우뿐 아니다. 현대건설도 여객선 2척을 빌려 수르테에서 730여 명(한국인 94명)을 대피시키고 있다. 현대건설 김중겸 사장은 “3국인이든 한국인이든 모두 동료"라며 "생사를 같이 하는 게 당연하다"고 말했다. 그는 "동료에 대한 배려없이 어떻게 글로벌 건설강국이 되겠느냐”고 덧붙였다.

천재지변이나 전쟁처럼 목숨이 경각인 순간에 다른 사람을 돌보기는 쉽지 않다. 다른 나라 건설업체들은 대개 3국인 근로자를 챙기지 않는다.


그 바람에 이집트·튀니지 국경에는 외국 건설업체가 고용한 3국인들이 난민이 돼 몰리고 있다. 국토해양부 도태호 중동대책반장은 “외국 건설업체들이 자국민만 빼가면서 (리비아 국경에)난민이 늘고 있다”며 “3국 근로자까지 챙기는 업체는 사실상 우리 건설사 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이 신뢰가 건설 강국 바탕"


현대건설이 빌린 배를 탄 말레이시아인 알리(31)씨는 "(한국 건설회사에 고용된) 나는 운이 좋았다"며 "다른 나라 업체의 건설현장에서 일하는 고향 친구는 난민이 됐다"고 말했다.

위험한 상황일수록 빛을 발하는 `한 가족` 의식은 `건설 한류`의 원동력이다. 해외건설협회 이재균 회장은 “지난해 한국건설은 반도체·자동차보다 많은 715억달러를 벌어들였다”며 “이런 건설 한류는 국내 업체들이 인도주의를 바탕으로 신뢰를 쌓아온 덕분”이라고 평가했다.

2003년에도 전례가 있다. 미군이 쿠웨이트를 침공한 이라크 군대를 폭격할 때 SK건설은 전세기를 동원해 3국 근로자를 안전 지대로 대피시켰다.

이때 감명받은 근로자들은 전쟁이 끝나지 않았는데도 스스로 복귀해 공사를 제 때 끝낼 수 있었다. 당시 현장소장이었던 SK건설 이병증 전문위원은 “이 일로 쿠웨이트 정부의 신뢰를 얻어 대형 공사를 잇따라 수주하는 데 큰 힘이 됐다”고 말했다.

▲ 리비아 미수라타항에 정박한 그리스 여객선 로도스호. 이 배는 대우건설의 리비아 건설현장 근로자 499명을 태워 2일 오후(현지시간) 그리스로 출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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