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view &] 소프트웨어는 ‘에브리웨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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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8면

황창규
지식경제
R&D전략기획단장

2005년 MP3 플레이어의 하드디스크를 플래시 메모리로 대체하는 문제로 스티브 잡스와 담판하면서 그에게 두 번 놀랐다. 기싸움이라면 나도 자신 있었으나, 그의 깐깐한 눈빛과 거침없는 말투는 날 긴장시키기에 충분했다.

 두 번째 놀란 건 협상 직후였다. 나를 따로 보자고 하더니 스마트폰 개발 현황을 들려줬다. 둔기로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그는 이미 소프트웨어(SW)·콘텐트 기반의 스마트폰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었던 것이다. PC 회사인데도 말이다. 이것이 ‘스마트 월드’를 여는 위대한 역할을 해낸 건 다 아는 사실이다.

 사실 SW에 대한 그의 통찰력이 빛을 발한 건 역사가 좀 더 깊다. 2000년대 초 한국의 독무대였던 MP3 시장은 아이팟 출시로 판도가 달라졌다. 하드웨어(HW)의 경쟁력이야 별 차이 없었지만 다른 게 하나 있었다. 음악 콘텐트 서비스인 아이튠즈였다. 아이튠즈는 소비자들의 감성을 격렬하게 자극했다. 소프트웨어적 발상의 전환과 사업 모델의 혁신이 시장의 판도를 결정적으로 변화시킨 것이다.

 HW 경쟁력은 점차 평준화되고 있으며, SW가 고부가가치 창출의 핵심 역량으로 부상 중이다. 애플도 SW·디자인 등은 내부에서 개발하며, HW는 중국이나 대만에서 생산한다. 제조업의 상당 부분이 해외로 빠져나간 미국이 아직 세상을 호령하고 있는 건 그들의 소프트 파워에 기인한다.

 SW 시장은 크게 두 부류다. 전사적 자원관리(ERP) 등으로 대표되는 기업용 ‘패키지’ 시장과 정보기술(IT) 기기 등에 탑재되는 ‘임베디드’ 시장이다. 이들을 합친 시장은 이미 1조 달러를 훌쩍 넘겨 IT 기기 시장을 추월한 지 오래다.

 우리를 보자. 국내 ‘패키지’ SW 시장은 IBM·SAP·오라클 등 글로벌 기업들이 점령하고 있으며, 우리가 세계적 경쟁력을 가지고 있는 휴대전화·자동차 등에 탑재되는 임베디드 SW에서조차 국산화율은 10% 내외다.

 소프트 강국 도약을 외치며 정책이 쏟아져 나온 지 오래지만 아직 별 변화가 없다. HW는 그런대로 잘 만드는데 이를 작동시키는 ‘지능’ 기술이 아직 요원한 것이다.

 많은 회사가 SW 인력의 전문성이 떨어진다고 호소하고 있고, 전문인력들은 몇 년 버티다 처우 문제로 퇴사하곤 한다. 인력의 심각한 미스매치 현상이다. 얼마 되지도 않는 우리의 SW 인력들이 대우가 좋은 해외로 빠져나가기도 한다. 이 악순환의 고리를 이제는 끊어야 한다.

 대학에 SW를 가르치는 학과가 있지만 여기서 다양한 수요 부문과 연결된 ‘맞춤형’ 지식을 섭렵하기는 어렵다. 이 학과를 따로 두기보다 모든 학과에 SW 관련 커리큘럼을 포함시키는 문제를 심각히 고려해 볼 일이다. SW를 좀 안다 해도 적용할 대상이나 제품에 대한 지식이 없으면 전문성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스스로 고립되지 않는 SW 인력의 양성이 절실하다.

 연구개발(R&D)도 마찬가지다. HW 개발에 집착한 나머지 관련 SW 개발, 더 나아가 사업모델의 혁신은 뒷전이었다. HW와 SW 개발이 따로 놀면 안 된다. R&D 기획단이 이제까지 발표한, 그리고 앞으로 발표할 모든 미래 선도 프로젝트에 SW 기술을 예외 없이 포함시킨 이유도 여기에 있다.

 사실 SW야말로 한 나라의 문화·라이프스타일·교육 패턴과 매우 밀접한 관련이 있어 하루아침에 확 바꾸긴 어려운 분야다. ‘싸이월드’가 국내 시장은 선점했지만, 글로벌 시장으로 뻗어나가지 못했던 이유이기도 하다.

 우리가 범한 가장 큰 오류는 HW와 SW를 따로 접근해 왔다는 데 있다. 좀 늦었지만 손 놓지 말자. 그동안은 공급자 위주였지만, 이제부터는 대학·기업·정부 할 것 없이 SW를 다양한 수요처와 지속적으로 ‘융합’시키는 데 총력을 집중하자. HW가 강한 우리가 SW 경쟁력까지 갖춘다면 제조업 공동화로 골치 썩는 미국도 우릴 만만히 보지 못할 것이다.

황창규 지식경제 R&D전략기획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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