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민우 기자의 까칠한 무대] 김인혜 교수는 약과라는데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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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김인혜 교수? 그 정도는 약과지. 무용은 훨씬 더 심해.”

 모 여대 무용과 교수를 만났다. 목소리를 낮춘 그의 얘기는 상상을 넘어섰다. “한 교수는 서울 지리를 전혀 모른대. 운전할 필요가 없거든. 아침 일찍 어디 나갈 일 있으면 제자가 새벽 6시부터 집 앞에서 대기한다는 거야. 학교나 공연장 오갈 때는 물론이고, 친지 방문할 때도 제자들이 번갈아 운전을 해 줘. 심지어 그 교수 점심, 메뉴 선정부터 음식 대령까지 몽땅 책임지는 제자도 있어.”

 다른 교수를 만나 봤다. 톤은 엇비슷했다. “티켓 강매는 이 바닥에선 워낙 일반적인 일이니 뭐 특별히 …. 제자는 물론, 그 제자가 레슨하는 예고 학생들도 할당량이 있으니 말 다 했지. 졸업 작품비 명목으로 돈 받는 것도 흔한 일이고. 수면 위로 나오진 못했지만 성폭행 문제로 쉬쉬하는 학교도 몇 군데 있어.”

 이런 얘기들이 대학 무용과 교수 모두에게 해당되는 건 분명 아닐 게다. ‘카더라’ 통신이 실상은 라이벌을 죽이기 위한 일방적인 얘기일지도 모른다. 오직 몸뚱어리 하나로 무대와 맞서야 하는, 고독한 예술의 길에 환히 불을 밝혀주는 스승이 얼마나 많으랴. 하지만 김인혜 교수 폭행사건이 불거진 이후, 기자가 만난 12명의 무용과 교수·졸업생·재학생 중 “대학 무용계가 깨끗하다”고 말하는 이는, 안타깝지만 단 한 명도 없었다. 정도의 차이는 있을망정 한결같이 “썩어 있다”고 전했다. 그래도 “1990년대 초 이대 입시부정 사건 이후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며 나름 개선 쪽에 무게를 두는 이도 있었지만 “과거보다 훨씬 조직화되고 치밀해졌다”는 의견 또한 적지 않았다.

 그들이 폭로한 일부 교수의 행태는 ‘마피아’를 연상시킬 정도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A라는 무용과 교수가 있다. 그는 수족과 같은 제자를 5∼6명쯤 둔다. 제자들은 교수의 온갖 허드렛일을 다하며 충성을 바친다. 대신 제자들은 A교수의 소개로 예고·예중의 개인 레슨을 맡게 된다. 그 대학에 입학하기 위해, 이 개인 레슨을 받아야 한다는 건 웬만한 학부모면 다 알고 있는 비밀이다.

 이렇게 입학한 학생이 A교수 말고 같은 전공 타 교수의 수업을 듣는다는 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싸늘한 따돌림을 당하기 때문이다. 조직은 점점 폐쇄적이고 비대해진다. 전체 인원은 60명 정도까지 불어나며, 학부생·대학원생·졸업생·교수라는 피라미드 구조를 띤다. 이렇게 재학생과 졸업생을 장악한 A교수는 누구도 무섭지 않다. 외부 사람을 만날 필요도 없다. 학장은 물론 총장도 A교수를 함부로 건드릴 수 없다. 자칫 학생들이 집단행동을 일으켜 골치가 아플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예·체능 분야 중에서도 무용이 유독 교수와 제자의 밀착도가 더 높을까. 무용계 한 인사는 “클래식·미술은 그래도 개인 작업 아닌가. 못 견디면 나가서 혼자 하면 된다. 반면 무용은 작품 올리는 데 여러 명이 필요하다. 집단 안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민간 무용단에 가 봤자 경제적 어려움이 해결되지 못하는 현실 역시 대학 교수에 대한 의존도를 더 높이게 만드는 구조라고 한다.

 이런 ‘철옹성’에 균열이 일어날까. 쉽진 않을 듯싶다. 워낙 공고히 결집돼 있어 보인다. 영화 ‘블랙 스완’에서 내털리 포트먼은 “완벽을 느꼈어”라며 피를 흘린다. 어쩌면 지금 한국 무용계엔 “여긴 도려내야 해”라며 피를 토할, 순교자가 절실한 건 아닐까.

최민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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