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사 과장이 고객 돈 484억 빼돌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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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현직 증권사 과장이 서울 강남 일대에서 고객들로부터 480여억원의 투자금을 받아 가로챈 혐의로 구속됐다.

 서울중앙지검 형사7부(부장 김창희)는 A투자증권사 강남지점 과장 박모(37)씨를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사기 혐의로 구속 수사 중이라고 2일 밝혔다. 검찰은 지난주 경찰에 구속된 박씨 사건을 넘겨받은 뒤 그의 추가 범행을 확인하고 있다.


 검찰에 따르면 박씨는 최근 수년간 인터넷 주식카페 회원 등 42명에게 “고소득을 보장해주겠다”며 제의한 뒤 투자금을 개인 계좌로 받아 가로챈 혐의를 받고 있다. 검찰은 “현재까지 피해자는 42명, 피해금액은 총 484억원에 달한다”고 말했다. 조사 결과 그는 신규 투자자에게서 받은 투자금으로 기존 투자자에게 이자와 배당금을 지급하는 이른바 ‘폰지 사기’를 벌인 것으로 나타났다. 박씨는 이 중 29억원 상당을 유흥비 등 개인 용도로 쓴 것으로 조사됐다.

 해당 증권사 등은 “박씨가 전 직장에 재직할 당시의 고객이 투자손실금에 대한 손해배상을 요구하자 배상금을 마련하기 위해 투자금을 끌어모으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증권사 측은 “박씨가 회사의 법인계좌가 아닌 은행의 개인 계좌로 투자금을 받아왔기 때문에 사전에 편취 사실을 파악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투자자들은 증권사 과장인 박씨의 신분을 믿고 아무런 의심도 하지 않은 채 투자금을 줬다가 꼼짝없이 당한 것이다. 검찰 관계자는 “보강 수사를 통해 피해자와 피해액 규모가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며 “증권사에 추가 가담자가 있는지 등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조사하고 있다”고 했다. 검찰은 박씨가 투자금을 어디에 사용했는지 확인하기 위해 자금 추적 작업을 벌이고 있다.

 이번 수사는 투자자들의 항의를 받은 증권사가 박씨를 설득해 이뤄졌다. 피해자들은 박씨의 사기행각이 드러나자 해당 증권사에 대한 손해배상 소송을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증권사 관계자는 “수사 결과에 따라 회사에서 책임 져야 할 부분이 있다면 응당 책임질 것”이라고 말했다.

최선욱·채승기 기자

◆폰지(Ponzi) 사기=신규 투자자의 돈으로 기존 투자자에게 이자나 배당금을 지급하는 방식의 다단계 금융사기를 일컫는 말. 1920년대 미국에서 찰스 폰지(Charles Ponzi)가 벌인 사기 행각에서 유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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