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기름값 올라가면 국내 기업 훈풍 분다고?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경제 10면

북아프리카와 중동지역 국가의 민주화 시위 여파로 요즘 세계 금융시장이 크게 흔들리고 있다. 유가는 크게 오르고, 이에 따른 물가 불안은 투자심리를 위축시키고 있다. 주요국의 증시는 하락 장세를 연출하고, 환율은 요동치고 있다.

 주식 관련 상품의 수익률도 곤두박질치고 있다. 올 들어 수익률은 마이너스가 대부분이다. 물가상승률을 고려하면 은행 예·적금도 손실을 보고 있는 셈이다. 부동산 시장마저 침체돼 있다.

 투자자는 혼란에 빠졌다. 이럴 때 국내외 경제를 어떻게 분석하고 투자할까.

 보통 유가가 오르면 기업 이익이 줄어든다고 생각한다. 유가가 오를 땐 자동차 수요도 줄어든다고 생각하는 게 상식이다. 또 경기가 나쁘면 증시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도 일반적인 생각이다. 하지만 최근 몇몇 애널리스트는 이런 상식과 다른 역발상의 새로운 분석을 내놨다. 이들은 어떤 근거로 이런 주장을 하는 것일까.

  이경수 신영증권 연구원은 “최근 국제 유가 상승에도 불구하고 한국 기업의 이익은 점차 늘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유가 상승에 따른 세계 금융시장 혼란은 달러화나 금 등 안전자산 선호현상을 불러일으켰고 이는 달러에 대한 원화가치 하락으로 이어졌다.

<여기를 누르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올 들어 1100원대까지 가며 강세(원화가치 상승)를 보였던 원-달러 환율은 요즘 1130원대로 약세(원화가치 하락)를 보이고 있다. 원화가치가 하락하면 국내 수출기업은 제품을 더 싸게 팔 수 있어 유리하다. 이에 따라 삼성전자를 비롯해 현대자동차·하이닉스 등 이익 측면에서 특별한 상승 계기가 없었던 국내 수출기업은 환율 효과를 볼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이 연구원은 “환율 10원이 상승하면 현대차와 기아차의 영업이익률은 각각 0.04%포인트, 0.12%포인트 높아진다”고 말했다.

 또 유가 상승에 따른 인플레이션은 금리 인상 가능성을 키운다. 이렇게 되면 생명보험·은행 업종의 이익을 끌어올린다. 이와 함께 유가가 오르면 정유·화학 업종의 이익은 자연스레 올라간다.

  대부분의 증시 전문가는 최근 중동 사태에 대해 급격한 유가 상승으로 인한 ‘오일 쇼크’를 걱정할 단계가 아니라고 입을 모은다. 김선행 토러스투자증권 연구원은 “유가 급등이 세계 경제위기로 이어지는 오일 쇼크 정도의 충격이 아니라면 유가 상승 자체만으로는 자동차 수요를 꺾을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역사적으로 유가는 점진적으로 상승했으며 비이상적으로 급등한 때를 제외하고는 세계 자동차 수요도 지속적으로 늘었다”고 설명했다.

 서부텍사스유(WTI) 가격이 배럴당 70달러대이던 2007년 6월 현대자동차의 선적 물량은 34만 대 수준이었다. 2008년 6월 WTI가격이 두 배인 140달러였을 때는 오히려 37만 대로 10%가량 늘었다. 다만 소비자에게 기름값 부담이 있는 만큼 선호하는 차종은 중·대형차에서 소형차 등으로 바뀔 가능성이 클 것이란 견해가 지배적이다.

요즘 세계 금융시장 관계자의 눈길은 벤 버냉키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의 입에 쏠려 있다. 3일 미국 상원 연설에서 그가 어떤 선택을 내릴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그동안 FRB는 미국 경기 부진을 타개하기 위해 돈을 푸는 ‘양적 완화’를 고수해 왔다. 실물 경기가 나쁘니 미국은 돈을 풀었고 이는 한국을 비롯한 신흥국가의 증시에서 외국인 순매수로 이어졌다. (미국의) 실물 경기가 나쁘니 (한국의) 증시에 좋은 구도가 돼 왔던 것이다.

  박승영 IBK투자증권 연구원은 FRB가 양적 완화 기조를 유지하면 미 금리 하락→세계 유동성 증가→인플레이션 압력으로 이어지며 국내 주가가 빠르게 반등하겠지만 인플레이션 압력이 높아지는 데는 한계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창규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