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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대구 계명대 공과대학 수석 졸업한 지체장애인 고강민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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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2일 오후 1시 대구 계명대 공과대학 건물 앞. 50대 남자가 승용차 뒷문에서 휠체어를 꺼냈다. 그러고는 앞좌석에 타고 있던 누군가를 힘껏 안았다. 휠체어에 올라앉은 그의 키는 1m50㎝ 남짓, 몸무게는 40㎏이 채 안 돼 보였다. 고강민(23·지체장애 1급·계명대 대학원 컴퓨터공학과)씨다.

고씨는 근육세포가 퇴화해 몸에 힘이 빠지면서 몸을 가눌 수 없는 불치성 질환인 근이양증을 앓고 있는 장애인이다. 일찌감치 다리는 마비됐고, 누군가 휠체어를 끌어주지 않고는 어느 곳에도 가지 못한다. 그런 그가 올해 단과대 수석으로 이 대학 컴퓨터공학과를 졸업했다.

대구=최석호 기자
사진=김진원 기자

근이양증에 걸려 몸을 가눌 수 없는 고강민씨는 ‘집중력’으로 장애를 극복하고 올해 공과대 수석으로 대구 계명대를 졸업했다. 그리고 오늘 대학원에 입학해 또 한번의 도전을 시작한다. [김진원 기자]

‘집중력’으로 사람들을 놀라게 하다

이날 오후 2시30분 컴퓨터공학과 주홍택(55) 교수 연구실. 고씨 등 석사과정 학생 7명이 주 교수와 함께 새 학기에 진행할 연구 프로젝트를 논의하기 위해 모였다. 이 자리에서도 고씨는 인기 스타였다. “어떻게 하면 평균 학점을 4.444를 받을 수 있냐?” 동료들은 부러운 듯 그에게 질문을 던졌다. 고씨는 8학기의 대학 생활 동안 136학점을 이수하면서 A0학점 2과목, B0 1과목을 제외한 모든 과목에서 A+를 받았다. 5학기에 걸쳐 4.5 만점을 따내면서 4년 내내 전액 장학금을 받았다.

“수업시간에 열심히 들었죠. 뭐….” 사실 고씨는 근육에 힘이 빠져 손조차 제대로 사용하지 못한다. 남들이 10개의 단어를 쓸 때 2~3단어나 겨우 적을 수 있는 정도다. 그런 그가 단과대 수석 졸업을 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수업 집중력’ 때문이다. “사실 저는 남들처럼 필기를 많이 할 수가 없어요. 대신 수업시간에 한 번도 빠진 적이 없었고, 교수님이 말씀하시는 한마디, 한마디에 집중했죠. 정말 중요하다 싶은 것만 공책에 적어놓고요.” 실제 그가 보여준 필기노트는 간단했다. 연한 글씨로 주요 개념만 적어놓은 수준. 고씨는 “수업시간에 강조한 내용은 교재와 인터넷에 공개된 강의노트에서 관련 부분을 찾아 그날 그날 보충 학습했다”고 말했다. 이해 가지 않는 부분이 있으면 의문점이 풀릴 때까지 책을 접지 않았다. 학부 시절 고씨에게 3과목을 강의했다는 주 교수는 “수업 30분 전부터 강의실에 들어와 그날 배운 내용을 예습하고, 궁금한 것이 있으면 수업이 끝나자마자 손을 들어 질문하는 학생이었다”며 “시험 답안을 채점해 보면 ‘필기도 많이 안 하는 것 같은데, 어떻게 내가 말한 내용을 하나도 빠짐없이 적었을까’ 의아했을 정도”라고 말했다.

중·고교 모두 일반학교 다니며 공부

고씨가 장애를 처음 알게 된 건 초등학교 6 학년 때다. 잠자리에서 일어날 때면 손을 짚어 엉덩이부터 일어서고, 뒤뚱대며 걷는 고씨를 데리고 병원을 찾은 부모는 청천벽력 같은 소리를 듣게 된다. “점점 사지를 가누기 힘들 겁니다.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니 항상 마음의 준비를 하고 계세요.” 의사 소견이었다. “그날 참 많이 울었습니다. 강민이도 눈치를 챘는지 3일 동안 아무런 말도 하지 않더군요.” 그날 이후 10여 년 넘게 강민씨의 수족이 돼 준 아버지 고경환(52)씨의 말이다.

중학교에 진학해 휠체어를 타게 된 고씨는 어린 나이에 ‘남과 다른 자신’을 받아들였다. 그러고는 자신이 할 수 있는 무언가에 몰입하기로 했다. 하루 1권씩 책을 읽고, 컴퓨터를 접하며 ‘앉아서도 세상을 바라볼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중1 2학기 때는 워드1·2급과 정보처리기능사 자격증을 취득했다. 이를 통해 ‘나도 무언가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다.

중·고등학교 모두 일반학교를 다니면서 남들과 똑같이 공부했다. “지기 싫었어요. 내가 뒤처지면 ‘장애인이니까’란 소리가 분명히 나오거든요. 수업시간에 단 한 번도 졸지 않았고, 오후 9시까지 학교에 남아 야간자율학습을 하는 등 매일 철저한 계획을 세워 공부했죠.” 아버지 고씨는 “방학이면 오전 7시부터 잠자리에 들 때까지, 식사시간을 제외하곤 방에서 나오지 않았다”고 말했다. 결국 중·고교 시절 내내 반에서 1~2등을 놓치지 않았다.

도움 받기보다 도움 주는 일 하고 싶어

지난해 여름방학, 고씨는 자신을 실험했다. 컴퓨터프로그램 회사에 인턴사원으로 취직한 것.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근무하는 일반 회사에서 일할 수 있는지, 도전해보고 싶었어요. ‘장애인’이 아닌 ‘사회인’으로서 나를 시험했던 거죠.” 더 나은 회사에 취직하기 위해 2개월간 하루 6시간 넘게 스스로 공부하며 지난해 6월엔 정보처리기사 자격증까지 취득했다.

2개월간의 인턴 생활이 끝난 뒤 회사에서 그를 붙잡았다. “누군가 ‘인간 고강민’을 인정해 준다는 사실이 고맙고 행복했죠. 하지만 더 큰 꿈을 위해선 그 자리에 안주할 수 없었어요.” 회사 생활을 하면서 현재 국내에 상용화되고 있는 보안프로그램의 한계를 느꼈다. 사실 장애 때문에 어린 시절부터 친구들과 뛰어 놀 수 없었던 고씨는 컴퓨터 게임을 접하면서 ‘해킹’에 대비할 수 있는 보안프로그램 개발에 관심이 있던 터였다. 대학교 때는 해커의 공격을 받아 1년여간 모아뒀던 게임포인트를 잃기도 했다. 그는 “경험을 통해 ‘보다 나은 보안프로그램을 개발하겠다’는 구체적인 목표를 세웠고, 관련 분야에 대해 깊이 있는 지식을 쌓고 싶었다”고 말했다. 대학원을 선택한 이유다.

“근이양증은 진행성 장애입니다. 사람들은 ‘언제 죽을지 모른다’는 말을 하죠. 그러나 언제 죽든 지금 제 자리에서,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해볼 생각이에요. ‘장애인은 누군가에게 도움을 받아야 한다’는 편견은 더 이상 싫습니다. 최고의 보안프로그램을 개발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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