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 얻자니 나온 물건조차 없고 대출받아 집 사자니 이자 걱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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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형 주택 전세난에서 비롯된 집값·전셋값 동반 상승의 가장 큰 피해자는 서민층이다. 중소 제조업체에 근무하는 김형욱(38)씨는 “2년 동안 허리띠 졸라매고 모은 돈으로 오른 전셋값도 댈 수 없다는 사실에 힘이 빠진다”고 했다. 강씨는 이달 중순 서울 성북구 종암동의 81㎡형(이하 공급면적) 아파트를 전세로 계약했다. 같은 동네 같은 크기의 전셋집에 살고 있었으나 그 집에 직접 들어와 살겠다는 집주인의 통보에 새로 전셋집을 얻은 것이다. 이번에 전세 계약을 하면서 강씨가 추가로 마련한 돈은 2년 동안 오른 전셋값 5000만원. 저축액 2000만원과 은행에서 연리 6% 선에 빌린 3000만원의 전세자금대출액을 합친 것이다. 강씨는 “정부가 저리로 전세자금을 빌려준다고 발표했지만 자격요건(연소득 3000만원 이하)을 벗어나면 이 혜택도 못 받는다”고 말했다.

 안양시 평촌신도시의 한 중개업소에서 만난 조모(39·안양시 관양동)씨는 전세난이 진정되고 있다는 최근의 정부 발표에 대해 할 말이 많다고 했다. 조씨는 “강남권 전셋값이면 이곳의 아파트를 사고도 남는다”며 “자녀 교육 등을 위한 자발적 전세 수요가 대부분인 강남권과 서민 실수요자가 움직이는 다른 지역의 상황은 판이한데 정부는 아직도 현황도 모르는 것 같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안양시 관양동 김형란 공인중개사는 “봄 결혼 시즌을 앞두고 신혼집을 구하는 예비 신혼부부가 많아 소형 아파트 전세는 여전히 귀하고 전셋값도 집주인이 부르는 게 값”이라고 전했다. 서울 송파구 잠실동 박준 공인중개사도 “겨울방학 때 새로 전셋집을 구하려는 수요가 예년보다 일찍 움직였기 때문에 일시적으로 전세 수요가 줄어든 것일 뿐”이라 고 분석했다.

 최근 들어 집값까지 덩달아 오르자 내집 마련의 꿈을 접는 서민층도 늘고 있다. 전셋집은 물건이 없고 집을 사려니 돈이 부족한 경우다. 서울 보문동의 김광렬(42)씨는 “8년간의 연립주택 전세 생활을 끝내고 올봄 동소문동의 83㎡형 아파트를 사려 했으나 집값이 갑자기 뛰어 포기했다”며 “집을 사려면 은행 대출을 3000만원이나 더 받아야 하는데 월급으로는 이자를 감당하기 어렵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서울 광진구 광장동 전셋집에 살고 있는 권모(45)씨는 “셋집살이를 청산하고 집값이 싼 외곽에 내 집을 마련할 수도 있지만 두 아이 전학 문제 등을 고려하면 이사하기가 쉽지 않은 게 현실”이라고 토로했다.

 앞으로가 더 문제다. 전세·매매 모두 물량 부족이 심각한데 봄 이사철에 수요가 늘어나면 가격은 더 뛸 수 있기 때문이다. 수요가 늘어 집값이 오르면 세입자들의 내집 마련 기회는 더 적어지게 마련이다.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서현동 한은애 공인중개사는 “전셋집 구하기가 워낙 어렵고 값도 계속 오르니까 여유가 있는 부모를 둔 신혼부부는 전셋집을 구하기보다 아예 집을 사려 한다”고 전했다.  

함종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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