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 몸조심도, 청와대와의 충돌도 바람직하지 않아”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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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7호 06면

윤여준(72·사진) 전 의원은 2002년 대선 당시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의 꾀주머니였다. ‘창(昌·이회창)의 장자방’으로 불렸다. 2000년 총선 때는 개혁공천 아이디어로 총선 승리에 기여했다. 이후에도 늘 당을 바꾸고 개혁하자는 쪽에 섰다. 지난해 10월엔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박근혜 전 대표의 침묵 정치를 우회적으로 비판했다. 17일 오전 서울 순화동의 한 커피숍에서 그를 만났다.

2002년 이회창 대세론 주도한 윤여준 전 의원

-박근혜 대세론이 강한데 10년 전 이회창 대세론과 비교하면 어떤가.
“이회창 대세론이란 엄밀히 말하면 대세론이라고 할 수 없다. 과학적 근거 없이 주변에서 만든 말에 불과하다.”

-60% 가까운 지지율이 오랫동안 유지되지 않았나.
“진정한 대세론이 형성되려면 고정 지지층의 지지율이 중요하다. 나머지 지지율은 지지율로 잡히지만 언제든 옮겨갈 수 있는 휘발성 강한 지지율이다. 그런데 ‘창 대세론’이 절정일 때도 고정 지지율은 15%를 넘지 못했다. DJ(김대중)가 밉다는 반사적 이유 때문에 지지율로 잡히지만 견고하지 못했다. 2002년 대선 당시 이회창 캠프에서 (내가) 이런 말을 많이 하고 다녀 미움도 사고 그랬다.”

-박근혜 대세론은 어떤가.
“여론조사 수치로만 보면 대세론이라고 할 만하다. 박 전 대표는 10년 전에도 15~18%의 고정 지지층을 갖고 있었다. 게다가 성별·지역별·계층별로 편차가 없었다. 박 전 대표는 다양한 집단에서 고른 지지율을 얻는 우리나라의 유일한 정치인이다. 당시에도 표면적으론 이 총재 지지율이 높았지만 내용적으론 박 전 대표가 충실했다.”

-‘창 대세론’이 무너진 이유는 뭔가.
“이회창 전 총재는 정치개혁에 대한 기대를 한 몸에 받았다. 2000년 총선에선 ‘3김 정치 타파’란 구호로 승리했다. 지역구도, 정경유착, 패거리 정치에서 벗어나겠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자신이 그런 이미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경쟁자인 노무현 후보의 새로운 정치가 먹혔다. 자기 브랜드를 상대에게 뺏겼다.”

-왜 그렇게 됐나.
“대세론이 형성된 차기 권력은 현재 권력처럼 주변에 갈등과 알력이 있다.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다만 이를 어떻게 관리하느냐가 중요한데 이 전 총재는 당시 주변 알력에 떠밀려 갔다. 또 특정 지역에 의존했다.”

-박 전 대표의 경우엔 어떤가.
“주변 분위기에 떠밀려 가는 것 같지는 않다. 다만 얼마나 많은 지지를 더 흡수해 낼 수 있느냐가 과제다. 박 전 대표는 감성적 지지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 2012년 이후 남북한과 주변 4강엔 많은 변화가 예상된다. 북한은 강성대국을 예고했고, 주변 4강은 모두 리더십이 바뀐다. 이에 대처할 미래형 식견과 통찰력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

-박 전 대표가 풀어야 할 과제는.
“대세론에 의존하지 말아야 한다. ‘부자 몸조심’이나 ‘굳히면 된다’는 식으로 보이는 것은 독약이다. 요즘은 정보통신(IT) 발전으로 사고 패턴이나 변화 주기가 빨라졌다. 짧은 시간에 판세가 엎어질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하면 안 된다. 이런 상황에서 높은 지지율을 유지하려면 부단한 자기혁신이 필요하다. 예컨대 여당 후보가 된다면 현직 대통령과의 관계 설정이 중요하다. 보수 진영에선 이명박 대통령 세력과 박 전 대표 세력이 갈등을 해소하고 결합하라는 주문도 거세다. 하지만 이 대통령과의 관계가 중요하니 그것만 신경 쓴다면 국민의 신뢰와 지지를 잃을 수도 있다. 당장 4월 재·보선이 끝나면 두 세력 간에 알력이 본격화할 텐데 어떤 모습을 보일지 신중하게 판단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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