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남수 “확인 못 해” … 뛰쳐나간 민주당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6면

인도네시아 특사단 숙소 침입 의혹 사건과 관련해 25일 국회 정보위원회 간담회가 서울 여의도의 한 음식점에서 비공개로 열렸다. 회의 시작에 앞서 국정원 김남수 3차장(왼쪽)과 민주당 최재성 간사가 이야기하고 있다. [연합뉴스]

국정원의 인도네시아 특사단 숙소 침입의혹 사건에 침묵해 ‘꿀박’소리를 듣던 민주당 박지원 원내대표가 25일 돌변했다. ▶<본지 2월 25일자 6면>

박 원내대표는 이날 오전 9시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일도 못하고 뒤처리도 못하는 무능한 국정원은 필요 없다”며 “원세훈 국정원장과 김남수 3차장은 즉각 해임돼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나아가 그는 두 사람의 ‘형사적 책임’까지 거론했다.

 회의 후 그는 본지 기자와 만나 “앞으로 ‘파출소’도 때려부수고 ‘경찰서’도 때려부수겠다. 자료 수집에 나설 것”이라고 흥분했다. ‘파출소’는 현재의 원세훈 원장 체제, ‘경찰서’는 더 강경해질지 모를 새 국정원장 체제를 뜻한다. 그는 사석에서 “파출소를 피하려다 경찰서를 만날 수도 있다”고 말해왔다.

 전날엔 당 공식회의와 기자간담회에서 ‘국익’까지 거론하며 이번 사건에 대해 신중한 입장이던 박 원내대표의 태도가 바뀐 이유는 무엇일까.

 박 원내대표는 이날 오전 7시30분쯤 김무성 한나라당 원내대표 및 국회 정보위원회 위원들과 여의도의 한 중식당에서 국정원 1·2·3차장을 만났다. 이번 사건에 대해 국정원 측이 설명을 하기 위해 마련된 조찬간담회였다. 간담회에서 먼저 말문을 연 건 김남수 3차장이었다. 그는 “최근 일련의 인도네시아 사태에 대해 유감을 표한다”면서도 ‘모르쇠’ 답변을 계속했다.

 ▶박 원내대표=“왜 숙소에 들어갔는가?”

 ▶김 3차장=“확인해 줄 수 없다.”

 ▶박 원내대표=“몇 명이 들어갔는가?”

 ▶김 3차장=“언론 보도를 보니 3~4명이더라.”

 다른 정보위원들이 질문을 쏟아내도 그는 “지금 현재는 이렇다 저렇다 확인드리기 어렵다”거나 “인도네시아와의 문제도 있는 만큼 국익 차원에서 신중히 다뤄져야 한다. 경찰 수사를 지켜보고 있으니 인내해 주시기 바란다”는 말만 반복했다. 이런 식의 문답이 반복되자 박 원내대표는 민주당 정보위원들을 이끌고 한 시간 만인 8시30분쯤 자리를 박차고 나왔다.

 이후 박 원내대표는 본지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설명을 듣고 어떻게 움직일지 판단하려 했는데 오늘 같은 답변이 말이 되는가. 더는 자제하기 어렵다”고 분노를 감추지 않았다. 그러면서 국정원에 대한 전면 공세를 선언했다. 그는 “다음 달 4일 열릴 국회 정보위원회에서 (퇴진이라는) 공식 투쟁의 목표를 관철할 것을 선언한다”고 말했다.

 민주당 의원들도 이날 국회 외교·통일·안보분야 대정부 질문에서 일제히 포문을 열었다. 박주선 의원은 “국가정보원이 아니라 ‘국가망신원’으로 바꿔야 한다”고 비꼬았다. 장세환 의원은 ‘롯데호텔 좀도둑 사건’이라 불렀다. 민주당은 전날 정치분야 대정부 질문에선 이 사건에 대해 거의 거론하지 않았었다.

 국정원의 조찬간담회 보고에 대해선 한나라당에서도 비판이 나왔다. 간담회에선 김무성 원내대표조차 “우리를 모욕하는 거냐”고 화를 냈다고 한다. 정두언 최고위원도 “도대체 이럴 거면 뭐 하러, 왜 오라고 했느냐”고 했고, 이은재 의원은 “야당이 공격하면 도와주려고 마음까지 먹고 갔는데, 국정원 측이 보고할 준비 자체를 안 해왔더라. 앞으로 정보위 분위기가 싸늘할 것”이라고 말했다.

◆경찰 "지문으로도 신원 못 밝혀”=국정원의 인도네시아 특사단 숙소 침입사건을 수사 중인 서울 남대문경찰서는 25일 “경찰청 지문감식센터가 절취 대상이었던 노트북에서 채취한 지문을 감식했으나 침입자의 신원 확인에 실패했다”고 밝혔다. 경찰은 전날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보정작업을 의뢰했던 롯데호텔 특사단 숙소 주변의 폐쇄회로TV(CCTV) 자료화면을 받았지만 여전히 얼굴 식별은 불가능한 상태”라고 말했었다. 그동안 지문감식센터는 노트북에서 채취한 8점의 지문 가운데 2점은 인도네시아 특사단원, 2점은 감정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한 뒤 나머지 4점을 분석해 왔다. 센터 측은 “나머지 4점의 지문도 외국인의 것일 확률이 높다”고 설명했다.

 한편 이날 수사팀의 한 관계자는 기자들에게 “CCTV를 공개하면 호텔도, 국정원도 죽는다”고 말했다가 파문이 커지자 발언이 와전됐다며 정정을 요청했다.

채병건·김경진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