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긋함이 부러워서 … 일본인의 팬더 사랑 유별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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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7호 04면

얼마 전 소속사와 갈등 중인 걸그룹 ‘카라(KARA)’가 일본에 입국할 때 일본 TV들이 멤버들의 좌석 배치까지 그림으로 그려가며 상세히 보도해 화제가 된 일이 있다. 하지만 이제 보니 그건 별로 특별한 대접도 아니었다. 이번 주 일본에서는 온 국민이 기다리고 기다리던 초특급 국빈(國賓)의 입국 과정이 전국에 시끌벅적하게 생중계됐다. 바로 21일 늦은 밤 일본 나리타 공항에 도착한 중국 출신의 판다 커플, ‘비리(比力)’와 ‘샨뉘(仙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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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커플은 비행기 몸체에 판다를 그려 넣은 전일본공수(ANA)의 특별기 ‘플라이! 판다(FLY! PANDA·사진)’를 타고 일본에 도착했다. 비행기에는 항공운송용 특제 우리와 배설물 처리를 위한 특별 화장실이 준비됐다. 기내식은 중국산 대나무 잎, 채소를 넣어 만든 케이크, 딸기였다. 운송 중에는 기내 온도를 10~18도로 유지하고, 중국인 사육사와 도쿄 우에노 동물원 직원이 동승해 건강을 살폈다.

자정이 다 된 시간, 판다가 화물트럭으로 갈아타고 도쿄 우에노 동물원에 도착하자 공원 앞에서 기다리던 300여 명의 팬은 판다의 이름이 적힌 종이를 흔들며 환호했다. 판다 분장까지 하고 기다리던 일부 팬은 트럭을 향해 “오쓰카레사마데시타!(수고하셨습니다!)”를 외치기도 했다.
이들이 살게 될 우에노 동물원은 9000만 엔(약 12억원)을 들여 사육장을 새로 보수했다. 전기온돌이 깔린 방은 물론 판다를 위한 전용 운동장, 번식을 위한 둘만의 침실까지 완비했다. 동물원 주변 상가에는 ‘우에노판다환영실행위원회’가 결성돼 지난해부터 깃발이 내걸렸다. 인형도시락은 물론 판다 모양 거품의 커피, 판다 얼굴이 찍힌 식빵까지 판다로 싹 도배가 됐다.

두 마리 판다의 일거수일투족에 대한 뉴스도 이어지고 있는데 이런 내용들이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판다는 얼굴이 둥글수록 우수한 외모로 판단되는데(사각 얼굴의 판다도 있다는 말씀?), 이 기준으로 볼 때 이들은 최고의 미남미녀다.” “예민한 성격의 수컷 비리는 새 집에 도착해 불안한 듯 방을 서성댔다. 그러나 무던한 성격의 샨뉘는 도착 직후 대나무 10kg을 먹어 치운 후 곧바로 잠들었다.”

이런 ‘최강 호들갑’의 뒤에는 결국 돈이 있다. 이번 ‘판다 대여비’로 도쿄도가 중국에 지불하는 돈은 매년 95만 달러(약 10억7000만원)다. 우에노 동물원의 성인 입장료는 600엔으로, 단순계산하면 약 13만 명의 유료 입장객이 증가하면 이 금액이 충당된다. 우에노 동물원의 현재 관람객 수는 연간 300만 명을 밑도는 수준. 1972년 처음 중국에서 판다가 왔을 때 관람객이 700만 명까지 치솟았던 사례를 생각하면, 비용을 고려하더라도 해볼 만한 투자라는 것이다. 게다가 주변 상가들의 부가이익까지 따지면 이번 판다 대여가 가져오는 경제효과가 약 200억 엔(약 2700억원)에 달할 거라는 예측도 나온다.

하지만 이런 경제적 효과만으로는 지나치게 뜨거운 열기가 납득되지 않는다. 일본인들에게 물었다. “일본 사람들은 왜 이토록 판다를 좋아해?” 인상적이었던 답. “글쎄, 판다라는 동물이 일본인들의 성격과는 반대로 참 느긋하고 여유로워 보이잖아.”
실제로 하루 24시간 중 3분의 2는 잠으로, 3분의 1은 일본 전역에서 엄선된 4종의 대나무를 먹으면서 보낸다는 판다의 ‘초단순 일일 시간표’가 공개되자 방송에 출연한 패널들이 한숨을 내쉰다. “어머, 너무 부러운걸요.” “한 달만이라도 저 시간표로 한번 살아보고 싶네요.”


이영희씨는 중앙일보 문화부 기자로 일하다 현재도쿄 게이오 대학에서 국제관계를 공부하고 있다. 대중문화에 대한 애정을 학업으로 승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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