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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못된 성담론의 장 드라마

중앙일보

입력

빠른 속도로 시대가 변하고 있다는 것은 기계나 물질적인 측면에서 뿐만 아니라 그에 따른 가치관의 변화도 포함한다고 볼 수 있다. 물론 이 속에서 빠른 물질문화의 변화에 인간의 가치관이 그와 비슷한 속도로 변하지 못해 문화지체가 생기기도 한다. 그러나 이런 사회의 변화 중 그것이 인습임에도 불구하고 변화지 않는 것도 있다. 그런 대표적인 것이 바로 성에 관한 담론이며 더욱 문제가 되는 것은 그런 담론의 매개가 바로 미디어라는 점이다.

일예로 드라마의 주인공들을 보자. 대개의 경우 드라마는 주인공과 그 주인공과 경쟁적 위치에 있는 악인의 이분법적 대결구도를 보여준다. 얼마전 종영한 SBS 드라마 '크리스탈'의 경우 두 여자 주인공이 등장한다. 착한 여자주인공은 보통의 드라마와 영화에서 볼 수 있는 전형적인 콩쥐스타일로 착하고, 헌신적이고, 늘 악인에게 이용당하고, 자신의 세계보다는 남자주인공의 출세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것으로 묘사된다. 반면 조연인 악녀의 경우 남자의 사랑을 얻기 위해서 친구에게 남자를 양보할 것을 요구하고, 남자에게 적극적으로 구애하고, 자신의 꿈인 전문피아니스트로서의 집념과 당참 도도함 등을 보여준다.

대개의 드라마는 여성은 늘 순종적이여야 하며 여성의 최대의 행복은 사랑하는 남자의 사랑을 받는 것으로 결론내려진다. 일련의 극들은 보통 이런 식으로 두 사람의 인생을 극단적으로 보여주다가 권선징악으로 이야기를 끝맺는데 특히 악인의 경우 종국에서는 사고를 당하거나 직장에서 쫓겨나거나 하는 식으로 벌을 받는다.

자신의 일에 철저하고, 자신의 의지를 밝히는데 적극적이고, 적당히 자기중심적인 여성도 흔치 않게 볼 수 있는 우리 사회 여성 중 반의 모습이다. 이런 여성들의 모습은 늘 부정적으로 그려지고 오히려 수동성과 희생이야 말로 여성의 미덕인양 포장하는 것은 일반시청자는 물론 여성에게 조차 잘못된 가치관을 심어줄 우려가 있다.

더욱이 문제가 되는 것은 극 속의 이런 적극성을 갖는 여성들조차 자신을 바라봐 주지도 않는 사랑하는 남자 앞에서는 그녀의 직장이나 출세에 대한 목표는 한낫 소품으로 치부되고, 이 한 남자의 사랑을 독차지하는 것이 최대의 목표인양 묘사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것은 누가 보아도 남성 중심적인 사회가치관의 유포라고 볼 수 있다.

문제는 여성에 대한 잘못된 묘사만으로 끝나지 않는다. 드라마속의 남성은 늘 강해야하며, 여자보다는 일이 우선이며, 불가능한 일을 가능하게 만드는 세상의 중심으로 표현된다. 여성시청자의 경우 그런 남성을 가장 남성답다고 여기게 될 뿐만 아니라 이런 남성상이 최고의 남성상이 되는 것은 남성 자신에게도 부담스런 가치관임에 분명하다.

사회에는 착한 여자와 나쁜 여자가 있다. 그리고 미디어와 사회는 모든 여자들이 착한 여자가 되어주길 강요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작은 시각의 차이에서 비롯된 잘못된 가치관이다. 미디어는 드라마의 주인공인 착한 여자에게 스포트라이트를 비추지만 만약 그 스포트라이트의 방향이 악녀에게로 간다면 우리는 세상에 또다른 멋진 여성들이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

미디어에서 보여주는 여성상이나 남성상도 변할 때가 되었다. 자신의 일을 위해, 자신의 사랑을 얻기 위해 노력하는 악녀가 오히려 자신의 인생을 더 적극적으로 살아가는 여성으로 표현되어야 한다. 미디어의 영향력이 날로 강해지는 이 시점에서 드라마에서 잘못된 성담론을 주된 내러티브로 사용하는 것은 어느 정도 절제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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