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경영] 제 1화 멈추지 않는 자전거 54년 ⑥ 가짜 ‘기응환’ 사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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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히야제약과 어린이 만병통치약 ‘기응환’ 기술제휴를 맺고 트로피를 받고 있는 김승호 회장(오른쪽).


광복을 얼마 앞둔 어느 해 충남 보령군 웅천면에 ‘대창약방’이라는 조그마한 시골 약방 하나가 문을 열었다. 워낙 시골에 있는 약방이라 가게 안에는 가장 기본적인 상비약들만 진열돼 있었다. 초등학교에 갓 입학한 나는 산길을 따라 10리를 걸어다녔다. 돌아오는 길이면 어김없이 약방으로 달려갔다. 약방 주인은 친형이었고, 틈날 때마다 나는 이런저런 약들을 들고 형에게 그 용도를 물었다. 혹시 형이 가까운 곳으로 잠시 나갈 때면 내가 대신 약방을 지켰다. 손님이 와서 간단한 상비약을 찾으면 친절하게 쓰임새를 말하고 손님이 나가면 자리에서 일어나 깊이 허리를 숙여 인사를 했다.

 내가 초등학교에 들어갈 무렵 아버님이 논밭을 팔아서 양조장을 인수해 운영하다 실패하자 가세가 기울었다. 대창약방은 기울어진 살림을 일으키기 위해 형이 개업한 약방이었고, 나는 지금부터 대략 70년 전에 그렇게 약과 처음 만났다. 약과의 인연은 대창약방에서 끝나지 않았다. 초등학교 졸업 이듬해 서울로 올라와 6년제 숭문학교에 입학을 했는데, 육촌형이 운영하던 종로5가 홍성약국 건물 2층 다락방이 거처였다. 학교가 끝나고 약국으로 하교를 하면 공부를 하는 틈틈이 약국 일을 거들었다. 약과의 그런 인연이 결국 보령약국 개업과 보령제약 창업으로 이어진 것이다. 그래서 나는 철이 들기 전부터 이미 제약과 천생연분이었고, 그것을 필연으로 만들어 가며 지난 80년을 산 듯하다.

 용각산을 만들어 성공을 거두는 과정도 그렇게 인연을 필연으로 만들어 가던 나날이었다. 용각산의 성공을 피부로 느끼게 해준 일이 외국 제약사들의 태도였다. 최초의 기술제휴 당시 우리를 협상 상대로 여기지도 않던 일본 용각산과는 달리 굴지의 선진 제약회사에서 먼저 손을 내밀었다. 유명한 심장약 ‘구심’을 주 생산품으로 하는 일본 규신제약 사장이 직접 우리를 찾아와 기술제휴 계약을 했다. 계약 조건도 용각산 때와 달리 우리에게 훨씬 유리한 조건이었다. 또 어린이 질환에 탁월한 ‘기응환’을 생산하는 일본 히야제약과도 기술제휴 계약을 맺었다. 200년 역사의 히야제약이 ‘한국 진출은 아직 시기상조’라는 일본 약업계의 여론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후발 제약기업의 문을 두드린 것 자체가 이례적인 일이었다.

 이렇게 해서 1969년부터 구심과 기응환을 자체 생산하기 시작했다. 이 두 제품은 ‘생약제제 전문 메이커’를 표방한 보령제약 기업 이미지를 확고하게 해줬고, 기대 이상의 매출을 기록하며 일시에 중견 제약기업으로 성장하게 만들었다. 구심은 각종 성인병이나 고혈압 등에 효과를 내며 발매 직후 큰 관심을 끌었다. 어린이 건강에 대한 국민 의식이 차츰 높아지고 있을 때 선을 보인 기응환은 아이를 키우는 집안의 상비약으로 자리 잡았다.

 이런 대중적인 인기를 역설적으로 보여준 사건이 1970년 9월에 일어난 ‘가짜 기응환 사건’이었다. 기응환 인기가 높아지자 일부 악덕 상인이 일본에서 유사품을 들여와 히야제약의 상표를 위조해 붙인 다음 폭리를 취하려다가 적발된 사건이다. 나는 그런 파렴치한 사건은 용서할 수가 없었다. 사람 입에 들어가는 음식을 갖고 장난을 치는 사람은 악덕 범죄자다. 그런데 병을 고치는 약을 가지고 장난을 치는 사람은 악덕 중의 악덕 중범죄자다. 아파서 약에 의지해야 하는 사람에게 그것은 용서할 수 없는 좌절을 주는 일이요, 남의 생명을 돈벌이 수단으로 삼는 상해이자 살인이다. 이런 생각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내가 무엇보다 약품 품질과 효능, 유통 체계, 소비자 만족도를 중시하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따라서 나는 가짜 기응환 사건에 대해 내가 할 수 있는 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 조속한 수사와 처벌이 이뤄지도록 했다. 한동안 가짜 기응환이 시중에 유통되는 불미스러운 일이 있었지만, 보령제약 기응환에 대해 신뢰를 갖고 있던 현명한 소비자들에 의해 곧 진정됐다. 용각산에 이어 구심과 기응환이 유명 상품으로 자리잡게 되면서 보령제약은 명실상부한 생약 전문 메이커로 기반을 굳히게 됐다. 지금도 어린시절 대창약방과 홍성약국 안의 풍경이 눈에 선하다. 아픈 부모나 병을 앓는 자식들 약을 사러 오는 다급한 사람들의 표정은 더욱 눈에 선하다. 그리고 내 죽는 날까지 항상 안타까운 기억으로 되살아날 것이다.

김승호 보령제약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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