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남기 위한 동물의 성반란…환경변화에 따라 암수 분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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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 같은 여자? 여자 같은 남자? 영화 제목이 아니다. 환경변화는 동물의 암수는 물론 사람의 성분화에도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고전적인 성 개념으로 동물세게에서 암수구분이 쉽지 않게 된 것. 암수 분화가 갖는 ''생존의 의미''를 생물학적으로 짚어본다. 편집자.

생쥐는 겉보기에 똑같은 암컷이라 해도 실제 행동을 보면 ''수컷형'' 도 있고 ''암컷형'' 도 있다. 수컷도 마찬가지. 사납고 공격적인 수컷이 있는가하면 온순하기 짝이 없는 것도 있다.

성징(性徵) 이 이처럼 성기 형태와 달리 나타나는 것은 태아 때 환경 때문. 생쥐는 보통 한 배에 10마리 내외의 새끼를 낳는다. 이때 어미의 자궁에서 암컷 새끼들 사이에 자리잡은 수컷 새끼는 태어나서 암컷처럼 유순한 생쥐가 된다. 자리 배열이 이와 반대가 되면 성질이 수컷처럼 거친 암컷 생쥐가 된다.

미국 캘리포니아주립대 연구팀은 "먹을 게 부족한 환경에서는 공격적인 암수가 생존에 유리하기 때문에 생쥐가 이런 성 분화 메커니즘을 갖게 됐을 것" 이라고 해석한다. 그러나 어미가 자궁 내에서 새끼의 위치를 자유롭게 변화시킬 수 있는지는 확인되지 않은 상태다.

아예 온도에 따라 암수가 정해지는 경우도 있다. 거북이와 악어.뱀의 일부가 그런 예. 한 도마뱀의 경우 섭씨 33도에서 부화한 것들은 거의 수컷이 된다. 반면 30도 이하에서는 대부분 암컷으로 태어난다. 그런가하면 30~33도 사이에서는 암수가 고르게 태어난다.

또 북미산 악어는 부화시 적당한 온도가 되면 무조건 수놈만 태어난다. 이런 수놈은 항상 암놈보다 덩치가 크다. 성 분화학자인 미국의 디밍박사는 "악어의 경우 덩치가 크고 빨리 성숙하는 것이 더 많은 암컷을 거느릴 수 있기 때문에 주변 여건만 좋다면 수컷을 많이 낳는 것이 생존경쟁에 유리하다" 고 해석한다.

반대로 거북이들은 삶에 유리한 조건에서는 주로 암컷만 태어난다. 거북이의 이런 암수 차이는 알의 크기로 구별할 수 있다. 알이 크다면 암컷이고, 작다면 수컷이다.

암거북이는 클수록 한번에 알을 품는 개수가 늘어나므로 역시 생존에 유리하다. 생물학자들이 거북이 알의 크기만으로 매해 생육조건이 좋은지 나쁜지를 짐작할 수 있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물고기 중에는 아예 중간에 성이 바뀌는 것들도 있다. ''패롯피시'' 라는 물고기는 태어날 때는 무조건 암컷이지만 중간에 일부가 수컷으로 바뀐다. 수컷으로 바뀐 물고기는 암컷을 차지할 수 있다. 그러나 나이가 들어도 수컷으로 변신하지 않은 물고기는 암컷인 채 기회를 노린다. 그러다 경쟁자인 수컷들이 병들거나 죽으면 재빨리 수컷으로 성을 바꾸며 암컷과 짝을 맺는다.

또 ''미드쉽맨'' 이란 물고기는 아예 수컷이 두 종류다. 덩치도 크고 정자 생산도 활발한 종류가 있는 반면 다른 한종류는 암컷과 몸집이 비슷하다.

평소 암컷을 차지하는 수컷은 덩치가 크고 정자생산도 활발한 것. 그러나 덩치가 큰 수컷이 집을 비우면 작은 수컷이 암컷과 교미한다. 그러나 기다려도 교미할 기회가 오지 않으면 둥지 앞에서 정액을 뿌리고 도망친다.

한국과학기술원 김재섭교수는 "하등동물일수록 호르몬이나 주변환경 등 2차요인에 의해 성 분화가 영향을 받는 수가 많다" 고 말했다. 사람을 포함한 포유류의 경우 이와 달리 주로 유전자 차원에서 성이 결정된다.

그러나 환경 호르몬으로 정자의 기능이 떨어지기도 해 환경의 영향을 전적으로 무시할 수는 없다.

미국 잭슨연구소의 아이셔박사는 "암수 구분이 뚜렷하다는 것은 그만큼 생존경쟁에 취약하다는 뜻일 수도 있다" 고 말한다. 실제로 공룡의 멸종이 암수의 성 구별이 너무 확실했기 때문이라는 시각도 있다.

공룡과 함께 중생대에 살았던 악어.도마뱀 등이 기후 변화와 같은 혹독한 시련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생존할 수 있었던 것은 유연한 성 분화 체계를 가졌기 때문이란 해석이다. 성(性) 을 단순히 암.수의 구별에서가 아니라 종(種) 의 생존차원에서 봐야한다는 근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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