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사흘 걸쳐 베토벤 소나타 전곡 연주, 뜨거운 칠순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7면

바이올리니스트 김민씨가 다음 달 베토벤 소나타 전곡을 연주한다. “청중이 가장 편안하게 들을 수 있는 순서로 열 곡을 다시 배열했다”고 한다. 피아노는 이대욱(64)씨가 맡는다. [김도훈 인턴기자]


바이올리니스트 김민(70)씨는 직함이 많다. 서울바로크합주단 리더, 서울국제음악제 음악감독 등등. 윤이상 앙상블을 창단했고, 윤이상 평화재단 이사이기도 하다. 서울대 음대 명예교수로도 있다. 그가 다음 달 베토벤 소나타 전곡(10곡)을 연주한다. 베토벤의 젊음과 원숙함을 보여줘야 하는 무대다. 칠순의 그가 고된 도전에 나선 이유는 뭘까.

 “사실 보통 일이 아니긴 해요. 동료들이 ‘너 무대에서 망령 나는 거 아니냐?’ 하니까. 하하. 제자들은 ‘연주 기대돼요’ 대신 ‘건강 챙기세요’라고 하고.”

 연주자 중에는 전곡 연주를 즐겨 하는 몇몇이 있다. 한 작곡가의 특정 형식을 다 소화해 낸 후 한 단계 도약하기를 반복하는 이들이다. 김씨도 이런 연주자일까?

 “아니에요, 전곡 연주 처음이에요. 예순 넘어서야 하니까 ‘저 영감이 미쳤나’ 하는 것 같긴 한데…. 하하”

 그는 베토벤 열 곡을 세 번에 나눠 연주한다. 베토벤의 소나타는 한 곡당 서너 개 악장으로 나뉘고, 평균 20분 정도 걸린다. 9번 소나타 ‘크로이처’는 40여분의 대곡이다. 베토벤은 첫 소나타를 28세에, 마지막 곡은 42세에 썼다.

 “아휴, 도전이란 말은 쓰지 마세요. (웃음) 베토벤은 죽은 음악가도 산 음악가도 두려워하는 작곡가예요. 그가 살아있을 때, 선배들은 그를 무서워했고 후배들은 뛰어넘으려 했죠. 바이올리니스트에게 열 곡은 한번쯤 완성하고 싶은 퍼즐 같아요. 스무 살, 서른 살 때 했으면 그림을 완벽하게 완성해 가는 과정을 보여줄 수 있었겠죠. 하지만 지금은 기술적으로 완벽하지 않을 수도 있어요. 바이올린은 특히나 나이에 민감한 악기라 금방 표시 나요. 노년의 바이올리니스트는 어떻게 연주하는지를 있는 그대로 보여주려 하는 거예요.”

 그는 베토벤 소나타에 얼마나 익숙할까. “여섯 곡은 무대에서 연주해봤지만, 네 곡은 처음이에요. 악보 새로 읽어서 다시 분석해야 하는데…. 참 희한하죠. 이렇게 처음 연주하는 곡이 오히려 더 잘 되고, 이미 해봐서 편하다고 자만하는 곡은 잘 안 되는 거예요. 베토벤한테 이렇게 또 배우네.”

 김씨는 국내에 드문 ‘오케스트라 통’이다. 1969년 독일 국비장학생으로 함부르크에서 공부했다. 이후 북독일 방송 교향악단, 베를린 라디오 심포니 오케스트라, 쾰른 실내악단 단원으로 활동했다. 독일 음악계의 자존심이라 할 수 있는 바이로이트 페스티벌 오케스트라가 30년 동안 초청했던 유일한 한국인이다. 79년 귀국 후엔 93년까지 국립교향악단, KBS교향악단 악장을 맡았다. 한국 오케스트라의 산증인이다.

 이번 연주는 독주자 복귀 선언쯤 될까. “저는 기본적으로 체임버 뮤지션이에요. 앙상블 플레이어죠. 독주자로 욕심을 낼 생각은 없어요. 2008년 독주회 열면서 마지막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나이에 대해 고정관념이 많은 걸 느껴요. 머리 돌아가고, 악보가 보이고, 손가락 움직일 수 있는 한 연주를 계속할 필요가 있겠더라고요. 특히 소나타 3번 2악장은 기가 막힌 호흡이, 10번 4악장엔 섬뜩한 천재성이 있어요. 이 나이에 전곡 연주 왜 하는지 떠나서, 이 음악들 자체로 얼마나 좋아요. 음악가로서 못해본 것, 느껴보지 못한 아름다움이 참 많아요.”

◆김민 독주회=3월 10, 17, 24일 서울 신문로 금호아트홀. 02-6303-7700.

글=김호정 기자
사진=김도훈 인턴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