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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끌며 주경야독 … 농촌 만학도 30명 학사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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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22일 전북대 삼성문화회관에서 열린 졸업식에서 식품공학사 학위를 받고 기뻐하는 순창군 만학도들. [순창군 제공]


“뒤늦게 얻은 배움의 기회라 1분1초도 헛되어 흘려 보내서는 안된다고 생각했죠. 종일 일한 뒤 저녁때면 온 몸이 녹초가 될 정도로 피곤할 때가 많지만 야간 강의를 빼먹지 않으려고 모든 노력을 다 했어요.”

 22일 전북대 졸업식이 열린 삼성문화회관. 행사장 한쪽에 자리잡은 30명의 만학도들은 “지난 4년간 면학에 대한 열정으로 온 몸을 불태웠다”며 감회에 젖었다. 자신의 학사모를 대견한 듯 쓰다듬으며 눈물을 글썽이는 이들도 있었다.

 이들은 전북대가 2007년 개설한 평생교육원 순창분원의 첫 졸업생들이다. 당초 40여명이 입학했지만 10여명은 중도탈락하고, 남은 30명의 학생들이 이날 식품공학사 학위를 취득했다.

 이들 늦깎이 만학도들은 순창지역에서 고추장·청국장 등 장류업체를 운영하는 자영업자와 일반 회사의 직장인·공무원·가정주부 등으로 구성돼 있다. 40세 이상 학생이 16명으로 저마다 남다른 사연을 간직하고 있다.

 대표학생으로 졸업장을 받은 김종국(56)씨는 면학으로 암까지 극복 해낸 인간승리의 표본이다. 고교졸업 후 도시로 나가 일찍 사회에 뛰어 들었던 그는 못다 이룬 학업에 대한 미련이 컸다. 15년 전 고향인 순창에 돌아 와 장류사업을 하던중 전북대 평생교육원이 개설되자 곧바로 입학원서를 냈다. 사업과 학업을 병행하며 분주하게 뛰던 그는 2008년 8월 대장암 선고를 받았다. 주말이면 2~3일씩 병원에 입원해 6개월간 항암치료를 받으면서도 한번도 수업에 빠지지 않았다. 장류업체를 운영하는 김은우·최미숙씨와 장승필·김명단씨 등은 부창부수로 함께 공부를 하면서 학위를 받은 커플들이다.

 총장상을 받은 허주희(36)씨는 고교졸업 후 곧바로 결혼을 하는 바람에 대학진학의 기회를 놓쳤다. 허씨는 “고추장·청국장 등 우리 전통 발효식품과 블루베리 등 웰빙음식을 연구해 장수백세의 꿈을 이루는데 일조하고 싶다”고 말했다.

 만학도들은 낮에 일하고 밤에 공부하는 주경야독(晝耕夜讀) 생활이 쉽지는 않았다고 털어놨다. 일주일에 3~4일씩, 때로는 주 5일씩 진행하는 수업에 빠질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학교측은 15주 학사일정 가운데 12주 이상을 출석해야만 졸업장을 준다는 원칙을 엄격하게 고수했다.

 이들 늦깎이 학생들은 “대학 교수들이 우리 동네까지 찾아와 강의를 해주는 이 좋은 기회를 놓쳐서는 안된다”며 서로 용기를 북돋워주고 격려하면서 면학에 힘을 쏟았다. 강의 과목도 만만치 않았다. 전공인 식품공학과목은 미분·적분 등 어려운 수식계산이 대부분이라 골머리를 앓았다. 원서로 배우는 화학 등 과목도 어려움이 많았다. 만학도들은 비슷한 처지의 어려움을 아는 동병상련의 입장이라 동급생들끼리 요점정리를 해주면서 서로를 도왔다.

 교수들은 학생들이 이해할 때까지 꼼꼼히 반복해서 가르치는 등 애정을 기울였다. 또 맡길 곳이 마땅치 않은 자녀들을 강의실에 함께 데리고 와 수업을 듣도록 허용해줬다. 순창군도 한학기 120만원에 이르는 등록금의 절반을 4년간 내내 지원해줬다.

 허주희씨는 “직장생활을 하면서 가정주부·학생 등으로 1인 3역을 하는 게 힘들었지만, 아이들에게 좋은 본보기 될 것 같아 더 열심히 공부했다”며 “식품산업기사·유통관리사 등 자격증까지 따내고 이렇게 학위를 받고 보니 꿈을 다 이룬 것처럼 기쁘다”고 말했다.

장대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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