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 돈상자 10억은 8개월 동안 복역한 ‘몸값’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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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서울 여의도 백화점 물품보관업체에서 발견된 현금 ‘10억원’은 의뢰인 임모(32)씨가 불법 도박사이트 운영 혐의로 구속되자 검거되지 않은 공범이 따로 은닉해 온 돈 중 일부인 것으로 밝혀졌다. 임씨가 실형을 선고받고 복역한 것에 대한 ‘몸값’ 성격으로도 볼 수 있다. 2009년 당시 동업자 4명 중 2명이 경찰에 붙잡혔고, 주범 임씨만 징역 10월의 실형이 선고됐다. 그사이 공범들은 돈을 보관했다가 출소한 그에게 건네줬다는 것이다. 사건을 수사 중인 서울 영등포경찰서 이병국 형사과장은 “처음부터 역할과 지분이 정해진 범죄팀”이라며 “영화 같은 일이 실제로 일어난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21일 범죄 수익금 은닉 혐의로 경찰에 붙잡힌 임씨는 “출소한 뒤 공범으로부터 상자에 든 11억원을 전달받았다”고 진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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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찰에 따르면 임씨는 2008년 3월 친척 정모씨를 포함한 동업자 3명과 함께 일본에 도박사이트 서버를 만들고 중국에 접속자들이 낸 돈을 관리할 환전사무실을 차렸다. 그해 10월 도박사이트 운영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임씨는 전체 운영을 지휘하는 총괄 격이었고, 정모씨는 자신의 명의로 사이트를 등록했다. 장모씨는 환전 등 자금 관리를, 박모씨는 사이트 프로그램 개발과 서버 관리를 맡았다. 수익금이 생기면 임씨가 35%, 정씨가 15%를 각각 가져가고 나머지를 장씨와 박씨가 나누기로 했다. 그러나 이들은 2009년 4월 대대적인 불법 도박사이트 단속에 나선 충남지방경찰청에 적발됐다. 경찰에 적발될 때까지 6개월 동안 이들이 벌어들인 수익은 23억여원에 이르렀다. 하지만 당시 경찰은 이들이 70억원대의 판돈을 입금받아 약 14억원의 부당 이익을 올린 것으로 추정했다. 경찰이 압수한 돈은 4000만원에 불과했다. 자금책 장씨와 서버 관리자 박씨는 돈을 숨긴 뒤 해외로 도주했다. 임씨는 불법 도박사이트를 운영해 유사 스포츠복권을 발행한 혐의(국민체육진흥법 위반)로 징역 10월형을 선고받았다. 정씨는 집행유예로 풀려났다.

 2009년 12월 가석방된 임씨는 이듬해 8월 각각 8억원, 2억원, 1억원이 담긴 종이상자 3개를 전달받아 그 상태 그대로 물품보관소에 맡겼다. 이 중 1억원이 든 상자는 11월에 도로 찾아갔으며, 임씨는 이 돈을 생활비 등으로 사용했다고 주장했다. 한편 임씨는 귀국 당시 10억원을 은닉한 것으로 처벌받을 수 있다는 것을 몰랐던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은 임씨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10억원은 범죄를 통해 얻은 이익이어서 국고로 환수된다.

심서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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