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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리포트] 천연자원 보고 카스피해 갈등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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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와 체첸의 전쟁, 중앙아시아에 부는 이슬람 원리주의 바람, 옛소련에서 분리 독립한 국가들의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가입 요구…. 얼른 보면 저 멀리 아득한 곳에서 벌어지는 알 수 없는 소란일 뿐이다.

그러나 그 이면엔 카스피해의 무궁무진한 자원을 선점하려는 열강의 술수와 음모', 또 그 틈새를 파고들며 살아남으려고 발버둥치는 약소국들의 몸부림이'가 복잡하게 얽혀 있다.

지구촌의 각종 이슈들을 심층 분석하는 '월드 리포트' 난을 신설하며 첫번째로 카스피해를 둘러싼 미.러 등 열강의 힘 겨루기를 소개한다.

[모스크바〓김석환 특파원, 김정수 기자]21세기 에너지의 마지막 보고(寶庫) 카스피해를 잡아라…. 석유와 가스 등 카스피해 주변의 풍부한 천연자원을 둘러싸고 세계 열강들이 새로운 전쟁에 뛰어들었다.

미국과 러시아간의 21세기 자웅을 겨루는 지정학적 전쟁의 형태다. 미국은 카스피해 지역에서 이슬람원리주의와 러시아의 영향력을 약화시키고 대신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의 우산 아래 넣으려는 계획이다. 러시아는 미국의 이같은 구도를 저지하려 사사건건 맞서고 있다.

카스피해 주변의 카자흐스탄.아제르바이잔.투르크메니스탄.우즈베키스탄 등에는 현재까지 확인된 양만 약 3백억배럴, 추정치로는 최고 2천억배럴의 원유가 매장돼 있다. 북해 유전의 매장량이 1백30억배럴인 것과 비교할 때 엄청난 양이다. 또 최고 6조7천억㎥로 추정되는 천연가스 매장량은 한국이 6백년 이상 사용할 수 있는 분량이다.

이밖에 카자흐스탄은 철광석.망간.금의 부존량이 모두 세계 7위 안에 들고, 우라늄은 세계 최고의 매장량을 자랑한다.

때문에 이 지역이 옛소련에 속해 있던 80년대까지만 해도 감히 넘보지 못하던 미국과 유럽 각국의 투자자들은 이제 소매를 걷어붙이고 개발 경쟁에 나서고 있다.

94년말 이후 카자흐스탄 등에 투자된 외국 자본은 98년 현재 6백억달러가 넘는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석유개발. 지난해 유가 하락으로 일부 소규모 해외기업들이 철수하기도 했지만 20여개 석유 메이저사를 포함한 25개국 60여개 대기업들은 여전히 막대한 돈을 쏟아부으며 광구확보를 위해 안달하고 있다.

카스피해 사업의 승리를 위해 영국의 BP, 미국의 아모코 등은 민간인 전문가그룹을 발족시켰고 여기에는 대전략(Grand design) 등의 저서를 발간한 즈비그뉴 브레진스키, 헨리 키신저 등 미국의 전략가들이 포함됐다.

각국 정부도 카스피해 개발에 적극적이다. 송유관.가스관 건설을 둘러싸고 치열한 외교전을 벌인 것도 이 지역에서 산출되는 석유와 가스가 어느 나라를 지나 수출되느냐에 따라 지역 부대산업 활성화, 통행료 등 각종 정치.경제적 이권이 걸려 있기 때문이다.

미국은 지난 19일 러시아를 우회하는 송유관 건설에 합의하는 서명식을 갖는 데 성공, 이 중요한 지정학전쟁 1차전을 승리로 이끌었다.

러시아 하원 및 외무부는 이 송유관 부설전에 대해 미국이 ▶이 지역 국가들에 대한 러시아의 경제적 영향력 약화▶러시아의 후방을 친미 성향의 잠재적 나토 회원국들로 포위▶이란의 이슬람 원리주의 확산 기도 사전차단이라는 목적 아래 진행한 것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알렉세이 미트로파노프 러 하원지경학위원장은 "러시아를 우회하는 송유관 건설은 '자금조달 문제, 카프카스지역의 불안정성 등을 놓고 볼 때'성공 여부를 아직 판단하기 어렵다.

그러나 옛소련 영토였던 지역을 러시아에 비우호적인 국가들이 위협하는 잠재적 적대지역으로 변모시킬 수 있는 가능성은 있다" 고 말한다.

이밖에도 미국은 그루지야.몰도바 등을 꾸준히 설득해 양국 국경지대의 러시아군을 2001년 7월 1일까지 그루지야에서, 그리고 2002년 7월 1일까지는 몰도바에서 완전 철수토록 러시아에 요구하게 했다.

러시아군은 옛소련에 속했던 국가들로 이뤄진 독립국가연합(CIS)의 공동방위를 명분으로 이 지역에 주둔해왔으나 유럽안보협력기구(OSCE) 정상회담 직전에 이들의 요구를 받아들이고 말았다.

또 2005년 나토 가입을 공언하고 있는 그루지야처럼 카프카스 지역의 신흥독립국가들이 나토에 가입하게 되면 러시아령 카프카스의 소수민족들도 거세게 독립을 요구할 것이다. 더욱이 신냉전이 초래된다면 러시아는 도움을 받을 곳이 막막해진다.

그러나 미국의 승리가 영속적인 것이 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이는 전적으로 러시아의 대응에 달려 있다. 러시아는 카프카스에 대한 지배권 약화는 곧 러시아의 내륙화를 의미한다고 보고 절대 용납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이를 위해 서방의 비난과 경제에 대한 주름살에도 불구하고 체첸전쟁을 강행, 바쿠에서 노보로시스크로 향하는 송유관의 효용성을 보장하는 한편 이란과의 유대강화와 아제르바이잔.그루지야.아르메니아 등의 민족분규 지원을 통해 터키가 이 지역에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여지를 없애겠다는 전략으로 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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