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휘청거리는 소주세율

중앙일보

입력

국회 재정경제위에선 요즘 소주세율 조정을 둘러싼 논쟁이 한창이다.

정부와 여당의 당정협의를 거쳐 국회에 제출된 안은 제조원가의 35%인 소주세율을 80%로 올리는 것. 그러나 여야를 막론하고 소주세율 인상을 '감표 요인' 이라며 탐탁잖게 생각하고 있다.

국민회의에선 조세형(趙世衡)상임고문 등 당 중진들까지 소주세율 인상폭을 줄여야 한다고 나서고 있고, 한나라당은 60%로 인상하자는 안을 당론으로 정했다.

소주세율 인상폭을 줄이게 되면 위스키세율(현행 1백%)은 더 큰 폭으로 떨어진다. 세계무역기구(WTO) 판정에 따라 소주세율과 위스키세율을 같이 맞춰야 하기 때문이다.

소주세를 덜 올리면 여러 계층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다. 서민들과 소주업체는 술값이 덜 올라 좋고, 위스키업계는 술값이 싸져 판매고가 늘어난다. 정치권은 누이 좋고 매부 좋은 방안을 택하려고 한다.

그러나 몇가지 간과해선 안될 대목이 있다. 우선 술 소비가 늘어날 수 있다는 걱정이 만만치 않다. 시민단체에선 당장 "가뜩이나 술값 싸고, 음주량 많고, 위스키 수입이 많은 나라인데 정치권이 술 소비를 부추길 셈이냐" 고 비판한다.

주세 조정으로 세수(稅收)감소도 예상된다. 정치권의 이런 행태는 장기적으로 국가이익에 해를 끼칠 수도 있다. 주세 분쟁은 흔히 10년 전쟁으로 불릴 만큼 집요하게 계속된다. 수출국은 끊임없이 수입국의 주세율 인하를 밀어붙이곤 한다.

재정경제부와 외교통상부 관리들은 "정치권의 주세 인하 주장은 유럽연합과 미국 주류업계의 추가 인하 요구를 초래할 수도 있다" 고 걱정했다.

무엇보다 "IMF 이후 서민들의 애환을 달래온 소줏값을 급격하게 올릴 수 없다" 는 정치권의 허구적 논리도 그냥 넘어갈 수 없는 대목이다.

서민들의 일상이 고달픈 데는 정치권의 정쟁(政爭)과 국정 표류에도 원인이 있기 때문이다.

값싼 술을 공급해 국민을 취하게 만들면 정치권의 잘못이 감춰질 것으로 착각하는 것은 아닌지 염려스럽다.

이상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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