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에게도 중졸 학력 감추고 살다 54세에 대학 마치는 출판사 사장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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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소년은 초등학생 때 아버지를 잃었다. 신문 배달 등을 하며 학교에 다녔지만 고2 봄방학 때 ‘불량 서클’을 만들었다는 이유로 퇴학 당했다. 억울함에 혈서를 썼지만 학교의 결정은 바뀌지 않았다. 소년은 이후 우유 배달, 출판사 창고 관리 등을 하며 모은 돈으로 1991년 출판사를 인수했다. 국내서 손꼽는 어학교재 전문 출판사 동양문고 김태웅(54) 대표 이야기다. 김 대표는 25일 성균관대에서 그토록 바라던 대학 졸업장을 받는다. 자신의 경험을 정리해 『김형의 청춘 고함』이라는 책도 냈다.

 18일 만난 김 대표는 자신을 ‘단벌 신사’라고 소개했다. 6년 동안 대학생으로 지내느라 양복이 한 벌밖에 없어서다. 30대에 어엿한 사장이 됐지만 김 대표는 가족들에게도 중졸임을 알리지 못했다. “못 배운 게 부끄러웠다”고 했다. 청와대에서 그를 초청하자 신분조회 때 학력이 드러날까봐 참석하지 않았다. 그러나 평생 속이며 살 수는 없었다. 2003년 “나는 중졸”이라고 ‘커밍아웃’을 했고 퇴학을 당했던 경기도 구리의 삼육고등학교에 다시 입학했다. 고3 한 해 동안 그는 학생들과 똑같이 머리를 짧게 깎고 야간자율학습을 했다. 전교 1등을 했고 05학번으로 성균관대에 입학했다.

 대학에 입학할 때 김 대표는 “신분상승을 위해 대학을 졸업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는 대학에서 “성공을 위한 공부가 아닌 인간을 이해하는 법”을 배웠다. 원래 그는 엄한 아버지였다. 아들뻘인 동기들에게 “왜 이렇게 버릇이 없냐”고 다그쳤다. 김 대표는 왕따가 됐다. 그는 “선생으로서 아이들을 가르치려고만 했다”고 회상했다. 이후 동기들에게 친구처럼 다가갔고 미팅에도 함께 나갔다. 학교 밴드에 들어가 축제 때 드럼도 쳤다. 어느새 동기들은 그를 “김형”이라고 부르며 편하게 대했다. 전공도 경영학에서 사회복지학으로 바꿨다.

이한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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