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별받는 혼혈 선수들 “나도 한국 사람이라고요”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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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6호 14면

올 시즌 프로농구에서 일어난 일이다. KCC 혼혈 포인트가드 전태풍은 연거푸 파울을 지적받고는 잔뜩 열이 올랐다. “왜 나만 미워해요. 나도 한국 사람이에요.” 심판은 “귀여운 항의였다”며 웃어넘겼지만 전태풍의 가슴엔 응어리가 졌다. KCC 프런트는 “대놓고 말은 안 하는데 판정에 대한 불만이 있다. 하프 코리안이기 때문인지, 심판이 국내 선수의 할리우드 액션(속임동작)에 넘어가기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피해의식을 갖고 있다”고 귀띔했다. 유쾌하고 웃음이 많은 전태풍은 한동안 시무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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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본격적인 다문화사회로 진입하고 있다. 2010년 기준으로 국내 체류 외국인이 120만 명에 육박한다. 저출산·고령화에 따라 생산가능인구가 줄어드는 가운데 성장 잠재력을 유지하기 위해선 외국인의 유입이 필수적이다. 한국관광공사 사장 이참, 방송인 하일, 축구선수 강수일, 탁구선수 당예서 등은 한국 사회 곳곳에서 활약하는 다문화 스타다.

농구 코트에도 2년 전부터 다문화 바람이 불었다. 한국프로농구(KBL)는 2009~2010시즌부터 혼혈 선수를 받아들였다. 프로농구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방안이었다. 전태풍, 이승준(삼성), 문태영(LG)이 첫 해 코리안 드림을 이뤘고, 이듬해 문태영의 형 문태종(전자랜드)이 어머니 나라에 안겼다. 뛰어난 실력으로 무장한 넷은 프로농구의 판도를 뒤흔들며 시들해진 농구 코트에 열기를 불어넣었다.

하지만 그들에게 한국의 코트는 여전히 차갑다. 프로농구 심판이 국내 선수에게 관대하고 혼혈 선수에 엄격하다는 건 공공연한 사실이다. 이런 이유로 지난 13일 전자랜드와 LG의 경기에서 나온 문태영의 테크니컬 파울 2회에 따른 퇴장은 개운치 않은 뒷맛을 남겼다.

농구의 테크니컬 파울은 스포츠맨십이나 페어플레이 정신에 어긋난 행동을 할 경우 주어진다. 한마디로 비신사적인 파울이다. 올 시즌 프로농구에서 최다 테크니컬 파울 10명 중 9명이 외국 및 혼혈 선수다. 그들은 정말 비신사적일까. 아니면 KBL이 그들을 비신사적으로 만든 것일까.
심판 판정에 차별이 있다고 똑부러지게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혼혈 선수들은 그렇게 느끼고 있다. 이유가 뭘까. 한 농구 관계자는 “혼혈 선수는 국내 선수에 비해 기량이 월등하다. 그들에 대한 견제 심리가 은연중에 깔려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부딪혀도 크게 반응하지 않는 혼혈 선수들이 할리우드 액션에 능한 국내 선수에 비해 손해 보는 측면이 있다”고 설명했다. 혼혈 선수가 볼 땐 똑같은 행위인데 다른 판정이 나온다는 뜻이다.

항의에 대한 심판의 반응부터 차이가 있다. 국내 선수는 이해 못할 판정이 나오면 심판에게 묻고 설명을 듣는 방식으로 불만을 해소한다. 하지만 혼혈 선수는 어필해도 언어가 달라 답변을 듣기 힘들다. 불만이 쌓일 수밖에 없다.

김동규 KBL 심판교육담당관은 “판정에 대해 일일이 설명하면 경기 운영이 안 된다. 통역을 불러 설명해 줄 여유도 없고 그렇게 해서도 안 된다. 외국 선수를 위한 KBL은 아니다”고 말했다. 한국에 왔으면 한국법을 따르라는 얘기였다.

혼혈 선수는 자유계약선수(FA) 제도에서도 외국인 선수와 같은 취급을 받는다. 한 팀에서 3년을 뛴 뒤에는 원 소속팀과 우선 협상을 할 수 없다. 그를 원하는 팀이 있으면 무조건 떠나야 한다. 2011~2012시즌이 끝난 뒤 KCC와 이별해야 하는 전태풍은 벌써 답답해한다. “KCC에 남고 싶어요. 난 한국 사람이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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