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가 변수로 대기업 내년 사업계획 '진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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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대기업들이 최근 예측이 어려운 국제 유가로 내년 사업 계획을 짜는데 애를 먹고 있다.

유가 변동에 민감한 주요 업종의 경우 환율이나 금리에 못지 않게 유가가 사업 전망을 가늠하는 주요 변수로 등장, 관련 업계를 긴장시키고 있다.

▶ 대기업 사업 계획 수정 = 현대자동차 이계안 사장은 25일 "유가가 얼마나 뛸지 정확히 예측하기 힘들어 내년 사업계획을 짜는 데 애로가 많다"며 "지난 해에는 환율이 사업계획 수립에 가장 중요한 변수였다면 올해는 유가가 이를 대신한 듯하다"고 말했다.

유가가 재료비로 곧바로 연결되는 항공과 석유화학을 주력 업종으로 하는 금호그룹은 환율이나 금리 등 주요 거시 지표만을 근거로 짠 내년 사업 계획의 수정 여부를 놓고 고민하고 있다.

금호의 한 관계자는 "환율이나 금리 등은 비교적 구체적으로 전망이 나오고 있으나 유가는 여전히 불투명해 사업계획 수립에 차질을 빚고 있다"며 "유가 전망이 어려워 사업계획 수립에 애를 먹기는 이번이 처음인 듯 하다"고 토로했다.

LG의 경우 내년 사업계획을 이번 주중 최종 확정할 방침이어서 유가 변수가 계획 자체에 충분히 반영되기는 어렵다고 보고 있으나 유가 급등세가 계속될 경우 영향이 큰 업종별로 단기 계획에 수정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고 있다.

LG의 한 관계자는 "유가 변동 상황을 정확히 예측하는데 어려움이 있으나 배럴당 30달러를 넘어 고공 행진이 계속된다면 어떤 방식으로든 대처 방안이 마련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 업종별 전망 = 자동차의 경우 유가가 오르면 휘발유값 인상으로 연결돼 국내외 시장이 위축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유가 움직임에 가장 민감하다.

SK㈜, LG칼텍스정유 등 국내 정유사들의 경우 일단 내년 1분기까지 원유가격이 고공행진을 계속한 후 하향조정이 이뤄질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정유사들은 유가연동제로 원유가격 등락에 따라 국내 제품가격을 조정하면 되기때문에 사업
계획 자체에 커다란 변화는 없을 것이라는 입장이다.

그러나 지나치게 유가가 오르면 수요가 감소하게 되며 이는 곧 바로 채산성 악화로 연결될 수 있기 때문에 결코 바람직스럽지 않다는 게 정유사들의 설명이다.

일단 내년 1분기까지는 고유가 상황이 지속될 것으로 보고 업계는 과도한 점유율 경쟁이나 대리점 판촉지원 등을 자제, 수익성 위주의 경영에 주력하겠다는 입장이며 원유 도입선의 다변화와 정확한 수급예측으로 위험도를 최소화 하는데 초점을 맞추기로 했다.

해운업은 업종의 특성상 유가 상승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 만큼 유가 변동을 주시하고 있다.

해양수산부에 따르면 최근 원유가가 배럴당 1달러 오를 경우 선박연료(벙커 C유)단가는 t당
6달러 오르고 유류비는 연간(98년기준) 4천700만달러의 추가 부담이 생기는 것으로 나타났다.

유류 물동량 증가세 둔화로 유조선 해운 시황이 침체되고 장기적으로 해상운임에 반영돼 해상 교역에 부담을 줄 우려가 있다.

반면 산유국들의 경기회복에 따른 물동량 증가로 이들 항로에 취항중인 선사들의 운임 수입은 증대할 것으로 예상된다.

섬유업의 경우 화학섬유는 바로 원가 인상이 요인이 되는 만큼 유가 인상은 상당한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원유가 인상은 완제품의 단가 인상요인으로 작용, 완제품의 인상이 뒤따라야 하기 때문에 수출 등에 애로가 애상된다.

섬유업계의 한 관계자는 "유가 급등은 특히 화학섬유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며 "유가 강세가 지속될 경우 일부 업체들은 내년도 사업 계획마저 재조정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서울=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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