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민우 기자의 까칠한 무대] 예술가의 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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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실체적 진실은 아사(餓死)보다 갑상샘 기능항진증 등 지병에 의한 것으로 결론 나는 모양새다. 최근 많은 이들을 안타깝게 했던 영화 시나리오 작가 최고은(32)씨의 죽음 말이다. 무한경쟁에 시달리며 불투명한 미래를 부여잡고 살아가던 88만원 세대에게 그의 죽음은 더욱 큰 충격이었다. 사인이 무엇이든 간에 최씨의 죽음은 예술가의 궁핍함을 새삼 환기시켰다는 점에서도 각별하다.

 그의 사망 소식에 전국영화산업노조는 “산업 시스템의 문제로 명백한 타살”이라고 성토했다. “정부와 국가는 도대체 뭘 했나”라는 목소리도 적지 않았다. 그런 부담감 때문일까. 때마침 문화체육관광부는 ‘예술생태계 활성화 방안’이라는 토론을 17일 서울 대학로에서 열었다. 이 자리에 참석한 연극배우이자 연극인복지재단 이사장인 박정자씨는 “예전에 은행에 갔더니 ‘직장인이 아니다’ ‘보장이 안 된다’라며 신용카드를 발급해 주지 않았다. 땅에 떨어진 예술인의 자존감을 조금이나마 지켜달라”고 호소했다. 신임 정병국 장관 역시 ‘예술인 복지법’ 입법화에 현재 매진 중이라고 한다.

 백 번 맞는 말이다. 예술 분야 종사자들 대다수가 4대 보험에도 들지 못했다는 현실이 서글프다. 반드시 개선돼야 한다. 그런데 생각할 게 또 있다. 4대 보험 등 기초 사회 안전망은 국민으로서 존중돼야 할 기본권이기에 마련되어야 한다는 것이지, 예술가라고 특별히 해 주는 게 아니라는 얘기다.

 자칫 ‘가난한 예술가’만을 강조하다 보면 다른 분야와의 형평성이라는 또 다른 문제와 직면할지도 모른다. 예컨대 ‘예술인 복지법’ 마냥 환경미화원 복지법이나 자영업자 복지법도 줄줄이 입안해야 하는 걸까.

 프랑스를 흔히 ‘예술인의 천국’이라고 한다. 1960년대 이후 앙드레 말로와 자크 랑이 문화부 장관에 취임하면서 예술인 복지 제도가 크게 확충됐다. 특히 주목 받는 건 ‘엥테르미탕’(Intermittent) 제도다. 예술 직종의 일이라는 게 대부분 들쭉날쭉하다. 특정 기간에만 촬영하고, 공연하고 딴 날엔 파리 날리기 쉽다. 이렇게 일이 없을 때 적절한 실업수당을 주는 게 ‘엥테르미탕’이다.

 얼마나 부러운 제도인가. 하지만 간과해선 안될 게 있다. 이토록 제도가 잘 돼 있다고 해서 파리의 예술가들 모두가 여유로운 건 아니라는 거다. 예술행위만으로 생활을 유지하는 이는 파리 오페라 발레단 정단원이나 국공립 예술단체 주역 등 10% 미만이다. 나머지 90% 이상은 부업을 한다. 패스트푸드점에서 서빙을 하는 게 가장 흔하다고 한다. 부업을 하는 걸 이상하게도, 부끄럽게도 생각하지 않는다. 최근 한국에 들어온 프랑스인 무용가 셀린 바케는 “한국은 사교육 시장이 발달돼 개인 레슨을 많이 하지 않나. 차라리 프랑스보다 한국의 생활 여건이 낫다”라고까지 했다.

 뮤지컬 배우로 유명한 송용진씨는 “내 본래 직업은 인디 뮤지션이다. 뮤지컬 배우는 가욋일”이라고 한다. 그는 “인디 음악만으로 먹고 살기 힘든 거 맞다. 하지만 세상에 불평을 늘어놓는다고 달라지는가. 자신이 하고 싶은 걸 하려 한다면, 별도의 생계활동을 하는 건 당연하다”고 말한다.

 이런 예술가가 많아지는 게 진정 건강한 예술 생태계 아닐까. 예술가들은 지금 “국가와 사회는 우리에게 무엇을 해주었나”라고 외치고 있지만, 예술가가 아닌 평범한 시민들은 “그렇다면 예술가는 정작 우리에게 무엇을 선사하고 있나”라고 되묻고 있다.

최민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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