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바라크 별장 바로 옆 공항 … 여차하면 몇 분 내 망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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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일 오후(현지시간) 이집트 시나이반도 남단의 휴양도시 샤름 엘 셰이크에 있는 호스니 무바라크(Hosni Mubarak) 전 대통령의 별장 진입로. 무바라크가 은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이곳에선 총을 든 경찰들이 바리케이드를 치고 삼엄한 경비를 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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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름 엘 셰이크는 정상회담이 자주 열리는 곳이다. 2003년 중동 정상회담을 위해 모인 당시 무바라크 대통령, 미국의 조지 W 부시 대통령, 사우디의 압둘라 국왕, 요르단의 압둘라 2세 국왕(오른쪽부터). [AFP=연합뉴스]

 기자라고 밝히고 진입로에 접근하자 경찰들은 “정부의 출입 허가증을 가져오라”고 요구했다. 사진기를 꺼내자 경찰들은 눈을 부라리며 당장에라도 체포할 듯이 덤볐다. 별장으로 이어지는 또 다른 진입로 3곳에도 바리케이드가 쳐져 있었다. 이 때문에 무바라크의 소재를 눈으로 직접 확인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주민들은 1차 바리케이드를 지나쳐도 이중, 삼중으로 또 다른 검문소가 있다고 전했다.

 무바라크 별장은 ‘졸리 빌 골프 리조트’ 안에 위치해 있다. 주민들에 따르면 리조트 안 무바라크의 별장 주변에는 별도의 벽이 둘러싸고 있다. 언론의 보도대로 무바라크가 퇴진을 선언한 11일 밤에 이곳으로 헬기를 타고 날아왔다면 자신을 겹겹의 벽에 스스로 가둔 셈이다.

1967년 6월 이스라엘은 시나이반도 등을 점령하고 6일 만에 승리를 거뒀다. 사진은 진격 중인 이스라엘 탱크.

 이 도시에서 무바라크의 존재 여부를 묻는 것은 금기였다. 지역 경비는 이웃 도시 하다바의 경찰서가 맡고 있었다. 하다바 경찰서장에게 무바라크에 대해 묻자 “영어를 못한다”고 답변했다. 직전까지 자신의 이름을 ‘켈리드’라고 소개하며 유창한 영어를 구사했던 그가 무바라크에 대해 질문하자 말을 돌린 것이다. 공항 직원들도“무바라크는 잊고 편하게 쉬다 돌아가라”며 직답을 피했다.

 무바라크의 별장에서 샤름 엘 셰이크 공항까지의 직선거리는 2㎞에 불과하다. 차량을 타고 몇 분이면 비행기 탑승이 가능하다. 이 때문에 무바라크의 망명설이 끊이지 않고 있다. 이집트 군부는 무바라크가 샤름 엘 셰이크에 머무르고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군부의 허가만 떨어지면 무바라크는 당장에라도 망명길에 오를 수 있는 상황이다. 이집트 일부 언론은 그가 망명했을 수 있다는 보도를 이미 내보내고 있다. 무바라크가 중병에 걸렸다는 소문도 나돈다. 그러나 현재까지 확인된 것은 아무것도 없다. 이 지역을 포함한 시나이반도 전체는 67년 3차 중동전쟁(6일 전쟁) 뒤 이스라엘에 점령됐다가 79년 중동평화협정에 따라 82년 이집트에 반환됐다. 이 지역은 그 뒤 이집트군이 주둔하지 못하는 완충지대로 남았는데, 이번 시위 사태로 이스라엘의 양해를 받아 경비병력이 일부 진입했다.

샤름 엘 셰이크=이상언 특파원

▶샤름 엘 셰이크(Sharm el Sheikh)=이집트 최고의 휴양지로 무바라크가 공들여 조성했다. 그가 개발 과정에서 특혜를 주고 뒷돈을 챙겼다는 소문도 있다. 도시 이름은 시나이반도 원주민인 베두인들이 붙인 것으로 샤름은 ‘만(灣)’, 엘 셰이크는 ‘지도자’라는 뜻이다. 2004년 당시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가 신년 휴가를 이곳에서 보내는 등 세계적인 명사들이 찾는 곳으로도 이름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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