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얼리스토리 5 프러포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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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극적이며 로맨틱한 이벤트를 꼽는다면 단연 프러포즈가 아닐까. 이 때쯤이면 밸런타인데이에 초콜릿을 받은 답례로 한 달 뒤 화이트데이에 로맨틱한 프러포즈를 계획하는 남자들이 꽤 있다.

프러포즈는 드라마나 영화·소설 등의 단골 소재이기도 한다. 그 때마다 빠지지 않는 게 프러포즈 주얼리다. 많은 이들이 청혼 반지를 건네며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는 로맨틱한 순간을 꿈꾸지만 사실 프러포즈 주얼리를 고르는 일이 그리 만만하진 않다. 프러포즈를 앞두고 남자는 여자가 뭘 원하는지 고민하게 되는데, 주얼리 디자이너로서의 경험을 되짚어본다면 여자들이 대개 받고 싶어하는 주얼리는 다이아몬드다.

이러한 속마음을 꿰뚫은 남자는 백화점 보석 코너나 주얼리 매장을 찾아가 예산을 염두에 두고 직원의 조언을 얻어가며 반지나 목걸이를 구입한다. 그런데 고심 끝에 고른 제품이 정작 여자의 마음에 들지 않거나 사이즈가 맞지 않는다면 난감한 일이다.

이러한 실수는 주얼리 정보나 지식이 적은 남자라면 흔히 할 수 있다. 그렇다고 포기할 필요는 없다. 최근에는 소비자의 욕구를 반영한 오더메이드 주얼리가 프러포즈 주얼리의 강자로 떠오르고 있다.

오더메이드는 소비자의 주문에 따라 만들어진 제품을 말한다. 남자가 가늠하기 어려운 여자의 취향과 직업, 옷 입는 스타일과 성격을 감안해 다자인 하므로 여자의 마음을 훔칠 수 있는 프러포즈 주얼리가 된다. 디자이너와 상담할 때 원하는 스타일을 꼼꼼히 전달하면 이것이 디자인에 반영된다.

감성이나 취향이 다양한 요즘 시대에는 디자인이나 제품의 품질도 중요하지만, 자신만의 특별한 디자인에 더 가치를 두는 이들이 많다. 이 때문에 오더메이드 업체들은 소비자의 요청에 최대한 맞춰 주얼리를 제작한다. 다양한 방식으로 프러포즈 이벤트를 지원하는 업체도 있다.

오르시아도 오더메이드를 하는데, 솔직히 말하면 시간이나 노력에 비해 이윤이 남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더메이드를 고집하는 이유는 고객 만족 때문이다. 한번은 매장으로 한 통의 전화가 왔다. 경상도 남자의 말투였다. 그는 “거리가 멀어 직접 찾아갈 수는 없고 전화로도 프러포즈 반지를 주문할 수 있는지”를 물어왔다. 쉽지 않은 일이지만 기꺼이 제작을 맡았고, 그날부터 거의 한 달여간 서로 메일을 주고받으며 상담했다.

주문을 한 남자와 그의 여자친구는 4년 동안 만나고 있었다. 둘은 멀리 떨어져 지내는 까닭에 처음 1년간 친구처럼 편지만 주고 받았다. 이듬해엔 전화 통화를 하면서 사랑을 싹 틔웠다. 그 다음 해에 드디어 본격적인 데이트를 했다. 그리고 4년째인 지금 ‘사랑을 확인하는 프러포즈’를 하고 싶어했다.

반지는 두 사람의 이야기를 담은 디자인으로 결정했다. 결혼을 뜻하는 데이지꽃을 형상화한 디자인이었다. 그들이 만난 햇수는 4장의 데이지 꽃잎으로 표현했다. 그리고 4개의 프롱(다이아몬드를 지탱하는 다리)이 다이아몬드를 감싸는 모양을 선택했다.

주문한 반지를 남자에게 보내면서 내심 걱정이 앞섰다. 완성품을 보고 주문한 게 아니어서 마음에 들지 않을 수도 있었다. 며칠 후 그 남자는 전화를 걸어와 “4년간의 만남과 반지에 담긴 두 사람의 추억을 설명하니 여자친구가 감동을 받아 펑펑 울었다”며 “결혼식 때 꼭 초대하고 싶다”고 말했다.

오더메이드 주얼리의 매력은 여기에 있다. 아주 개인적인 사연을 담아 제작하기 때문에 받는 사람은 물론, 준비하는 사람 역시 감동을 받는다. 주얼리 디자이너로서 애착이 갈 수 밖에 없다.

만약 특별한 프러포즈를 생각하고 있지만 준비할 시간이 넉넉지 않거나 여자친구의 취향을 잘 모르겠다면 주얼리 속에 추억을 담아보는 것은 어떨까. 여자들은 자신만을 위한 무언가에 감동을 받는다는 것을 잊지 말자. 그것이 주얼리라면 감동의 크기는 기대 이상이다.

◈주얼리 디자이너 한영진=주얼리 브랜드 오르시아의 대표로, 2007 국제 귀금속 장신구대전에서 수상했다. 2008년 뉴욕 국제 주얼리 박람회 자문위원을 맡았고, 같은해 지식경제부 주최 주얼리 디자인 부문 최우수상을 수상했다. 2009년 드라마 ‘천추태후’의 봉관 제작기술을 자문했으며, 여러 차례 TV 드라마와 영화 제작·협찬을 했다. 지난해 4월에는 제21회 전국귀금속 디자인 공모전 특별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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